온다 리쿠, <빛의 제국: 도코노 이야기 첫번째>
오전 11시. 나는 전기청소기로 집안 곳곳의 먼지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어디선가 전화벨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스위치를 껐다. 집안은 고요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청소기를 돌리기 시작했다. 작은 방의 먼지를 훔쳐내고 거실로 나왔을 때였다. 이번에는 남녀가 속닥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윗집인가. 청소기의 세기를 낮췄다. 잔뜩 긴장한 등 너머로 낮은 웃음소리가 흘러내리자, 더는 참지 못하고 몸을 홱 돌렸다.
순간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아무도 없었다. 청소기만 내팽개쳐진 채 홀로 윙윙거리고 있었다. 물론 아무 일도 일어나질 않았다. 갑자기 뒤를 돌아본 탓에 등에 담이 결린 것뿐이었다. 운동 부족이야, 나는 자기반성이 섞인 신음을 흘리며 한참을 엎드려 있었다.
방바닥에 코를 묻고 진지하게 생각했다. 도대체 난 무엇을 들었던 것일까. 혹시 무엇을 듣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가. 요즘 나의 일상이 너무나 적막하여? 그 무엇이든 온몸의 털을 곧추세워 내가 살아 있는 동물임을 느끼게 할 수만 있다면야, 이따위 생각을 은연중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우리의 변연계를 자극하여 동물적 감각을 200% 일깨우는 감정은 공포이니 말이다. 이성과 합리적 사고를 하찮게 짓밟고 달려드는 맹수 앞에서 다리 가는 초식동물처럼 냅다 뛰게 하는 것.
그러니 내가 들었던 것은 나의 무탈한 일상이 온 몸을 비비꼬는 소리였는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아무도 날 찾지 않았고 나 또한 아무도 찾지 않았던,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어떤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았던 그때, 나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이라든가 SF 시리즈, 동유럽의 괴담, 환상특급 등에 심취해 있었다. 전설의 고향은 꼭 이불 한 장으로 아늑한 동굴을 만들어 놓고는 그 안에서 어린 동생들과 꼼지락거리며 보곤 했다.
온다 리쿠의 소설을 읽노라면 그 시절로 회귀하는 기분이 들곤 한다.
공포의 강도는 다소 약하나, 상상의 지평을 한 뼘 더 넓힐 수 있는 다채로운 "낯섦"으로 가득한 이 <빛의 제국>으로 어여 오시기를. 그곳에는 예스러운 평온을 꿈꾸는 도코노 일족이 시대와 장소를 넘나들며 기묘한 이야기를 당신에게 들려줄 것이다. 봄날의 동화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부터 당신도 모르게 당신의 위장과 영혼을 씹어 삼키는 괴기스러운 잡초 이야기까지 열 편의 신비스런 연작이 조각보 이불이 되어 당신 눈앞에 펼쳐져 있다. 그저 당신이 할 일이라고는 그 안에 웅크리고 들어앉아 귀 기울이면 될 뿐.
그나저나, 그날 내가 들은 건...
정말 그게 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