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2018 올해의 문제소설>
슬픔의 한복판에서 저녁이면 마냥 걷는 사람들의 이야기
오랜만에 김연수 작가의 단편을 읽었다.
<저녁이면 마냥 걸었다>
2018 올해의 문제소설 수록작이다.
"나는 그 이야기가 좋았다. 어떤 남자가 심야의 가로등 아래에서 용서라는 단어가 나오는지 확인하기 위해 잡지를 꼼꼼히 읽어보는 장면. 하지만 나는 막상 잡지를 무릎에 펼쳐놓고서는 길 건너 봉긋하게 솟은 무덤만 하염없이 바라봤다."
주인공은 팔복서점에서 천마총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팔복서점의 벽에는 윤동주의 육필 원고가 실크스크린으로 인쇄돼 있다.
八福.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시인은 같은 문장을 여덟 번 반복한 뒤 마지막 문장을 두고 망설인다.
“저희가 슬플 것이오.”
시인은 문장을 지우고 다시 쓴다.
“저희가 위로함을 받을 것이오.”
다시 지운다.
“저희가 오래 슬플 것이오”라고 쓴다.
이번에는 ‘오래’를 지운다.
‘영원히’라고 쓴다.
오래 전, 경주 수학여행길에 아들을 잃은 한 여자가 어느 아름다운 달밤에 탄성 지르고 웃음 터트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눈물 흘리며 길을 걷는다. 여자는 10년을 기다려 그 자리에 팔복서점을 연다. 해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같이 책을 읽고 “저녁이면 마냥” 걷는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고 ‘가정假定의 지옥’에 빠져 ‘고통의 하구’를 지나 ‘죄책감의 바다'에 도달한 이들. 가장 견딜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는 건 자신이다. 주인공도 “그 바다의 한복판에서 표류 중이며” 결코 답을 얻을 수 없는 질문을 고통스럽게 묻는다. “너는 죽었는데 왜 나는 살아 있는가?”
밤은 여전히 깊어 ‘용서’라는 단어는 보이질 않는데, 천년 전에도 어둠을 밝힌 달이 오늘도 다시 떠올라 천마를 타고 승천한 이들의 무덤들을 비춘다. 그리고 그 사이를 걷는 이들. 마냥 걷는 이들.
나는 아래의 삽화가 좋았다. 그 모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을 말하는 장면. 팔복서점의 주인이 “그래도 됩니다,” 씩씩하게 건네는 말을 하염없이 곱씹었다.
“배낭여행 와서는 이 풍광에 반해 매일 들판에 앉아 종일 고분군만 바라보던 독일 청년이 화제였던 적도 있었죠”라고 서지희 씨가 말했다. “그 청년에게도 슬픈 일이 있었던 걸까요?”라고 내가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웃으며 “그게 아니라 그 독일 청년은 너무 아름다워서, 그 아름다움에 지칠 때까지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네요.”라고 말했다. “누군가의 무덤을 두고 아름답다니, 그래도 되나요?”라고 내가 물었고 “그럼요, 그래도 됩니다”라고 그녀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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