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이 사랑하는 시
한편의 시 같은 산문을 읽고 마음이 젖었다. 그 글에서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라는 문장을 만났다. 허수경 시인의 ‘탈상’에 나오는 시구절이었다. 그 문장이 완벽하게 들어앉은 글을 읽다 보니 시가 읽고 싶어졌다.
김용택 시인이 애정하는 시들을 담은 <시가 내게로 왔다>를 몇 년만에 꺼내들었다.
누군가가 시를 좋아하냐고 물어올 때면 흠칫 고개를 젓곤 한다. 감상적인 시, 추상적인 시, 난해한 시. 시의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학창시절의 그 어렵고 지겨웠던 시의 세계 속에 여전히 갇혀 있나 보다.
저 시인이 내가 좋아하는 시인이다, 저 시가 내가 애정하는 시다, 나는 왜 말을 못했던가. 시의 주제와 상징을 묻는 문제에서 매번 오답을 제시했기 때문이었다. 저 세계는 도무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세계, 라고 생각했다.
그걸 극복하게 했던 첫 시가 ‘승무’였고, 첫 시인이 이생진 님이었다.
하지만 그건 예외적인 일. 시를 생각하면 이다지도 쪼그라드는 마음이라니, 이 꼴로는 아직도 시를 좋아한다고 대놓고 말하지 못하겠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시가 몇 있다고만 말할 수밖에. 대개는 일상적인 언어로 감정을 뒤흔드는 시들이다. 가령, 이런 시.
묵화(墨畵) - 김종삼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이문재 그는 이따금 홀로 술 마시다 섬진강으로 전화를 한다. 그의 외로움이 내게 닿을 때 나도 외로워서 강으로 간다."
이문재 시인의 시와 나란히 놓인 김용택 시인의 단상을 읽는데 미소가 지어졌다. 박준 시인의 에세이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에 실린 이문재 시인의 글이 떠올라서였다.
“슬퍼서 전화했다. 가장 슬픈 일은 장소가 없어지는 일이다. 그러면 어디에 가도 그곳을 찾을 수 없다. 너는 어디 가지 말아라. 어디 가지 말고 종로 청진옥으로 와라. 지금 와라.”
.
이문재 시인은 슬프면 박준 시인을 종로 청진옥으로 불러내고, 홀로 술을 마시다 외로우면 멀리 김용택 시인에게 전화하고, 그의 외로움을 나누다 외로워져서 김 시인은 섬진강으로 가고... 슬프고 외로운 독자는 슬프고 외로운 시인들이 써낸 시들을 찾아가는가. 그들의 슬픔과 외로움에 기대 나의 슬픔과 외로움을 견뎌내는가.
이 시집을 펼쳐든 날, 피에르 바야르의 말을 빌리자면, “다른 세상이었다면, 선택된 그 행복한 책 대신 선택될 수도 있었을 다른" 책들이 있었다.
하나는 이성복 시인의 <무한화서>.
세 권으로 구성된 시론집 중 하나였다. ‘시심’이란 게 궁금한데, 그걸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시를 더 깊이 더 넓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일단 시를 읽고 싶고 이런 날은 드물게 찾아오니 오늘은 시를 읽겠다, 그런 생각으로 책 제목만 기록했다.
또 하나는 전순예 작가의 <강원도의 맛>.
작가는 글을 너무 쓰고 싶어서 환갑 넘어 글쓰기 교실을 다녔다고 한다. 나라면 못할 일. 젊은 문청들 사이에서 너무 쪼그라들 것 같은데. 그녀는 자신을 천덕꾸러기로만 여기지 않고 ‘에라, 그냥 내 식대로 쓰자,’ 해서 썼고, 한겨레21에 칼럼까지 연재하게 됐고, 책으로 묶이기까지 계속 썼다.
그렇게 나온 책이 <강원도의 맛>이다.
한 편을 그 자리에서 읽어치웠다. 이렇게 편한 글이라니. 소박한 문장이라니. 문장도 이야기도 멋 하나 부리지 않는다. 후루룩 넘어가는 이 맛이 바로 강원도의 맛일까, 했다. 젊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맛이었다.
이 책도 나중으로 미뤘다. 신경이 더할나위 없이 날카로워져서 누군가의 평온한 목소리가 절실할 때, 그때 읽어보자.
더 좋은 만남을 위해 여기 기록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