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tranger Nov 18. 2015

기차 타고 출근하기

3. 일상 관찰기

14.02.12. Di.


그래도 이제는 제법 출근 길에 익숙해졌다. 중앙역에서도 지하철로 10여분 떨어진 우리 집에서 회사까지 S반을 타고, 중앙역에서는 기차를 타는 것이 가장 빠른 출근 길임을 터득했다. 출근길 기차인 RE를 우리나라 기차에 굳이 비유하면 무궁화호쯤에 해당하려나? 그런데 주를 벗어나 멀리 가는 기차가 아니라서 무궁화호라고 하기는 좀 어렵다. 좌석도 딱딱한 편이고 기차 치고는 1호선 용산 급행 만큼 자주 정차한다. 내가 사는 Stuttgart에서 일하는 곳이 30km 정도 떨어져있어서 차를 타도 꽤 먼 거리이다. (얼마나 먼 곳인지 정확히 숫자를 쓰는 내 모습이 독일스러워 진 것 같아서 놀랐다.) 빨간 기차 덕분에 중앙역에서부터 30분 정도만에 회사에 도착할 수 있다.

2층일 때 뭔가 더 기분 좋은 빨간 기차,RE

기차를 타고 출근하면서 몇 가지 재밌는 점이 있다.


지금 Stuttgart중앙역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해서 곧 헤그위드(해리포터의 부엉이)가 날아올  것처럼 오래되었다. 이 역을 신축하는 것으로 10년 넘게 싸우고 있는 것이 이 동네의 큰 이슈이다. 어쨌건, 오래된 역에서 빨간 기차를 타면서 처음 몇 번은 호그와트로 가는 기분이 들어서 혼자 괜히 좋아했다. 이 기분은 이제 거의 사라졌지만, 해리포터 팬으로서는 행복한 기분이었다.


여기서는 지하철과 기차 모두 4명이 마주 보는 구조이다. 그래서 의도치 않게 타인을 쳐다보게 될 일이 많다. 물론, 내가 외국인이니 구경당하는(?) 경우가 더 많다. 출근 길에 지하철에서 아침을 먹는 사람들도 있다. 주로 집에서 락앤락ㅋㅋ에 담아온 샌드위치를 먹거나, 빵집에서 산 빵을 먹거나 물론 커피를 마시는 사람도 있다. 기차에는 자리마다 아주 작은 휴지통도 창 측에 배치되어있다. 심지어는 soup으로 보이는 것을 도시락에 싸와서 떠먹는 사람도 봤다. 지하철에서는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 에티켓(?)인 나라에서 온 나는 신기하기만 하다. 그래서 요즘은 나도 거의 매일 중앙역의 맛있는 빵집에서 크로와상이나 브레쩰을 사서 기차에서 먹고 있다.

Brezel

기차는 원래 지하철보다 널널하고, 2층 기차를 타게 되면 앉을 자리 걱정이 더 없어진다. 사람들은 계단을 오르기 귀찮아 2층에 안타는 경향도 있는데, 나는 아직도 2층 기차가 재미나서 일부러 2층으로 간다. 한 번은 텅 빈 2층에 혼자 앉아서 빵을 먹다가 갑자기 혼자라는 게 무서워져서 1층으로 내려왔다. 아침 출근길에 무서움을 느끼다니 집 떠난 지 오래됐나 보다.


요즘 가장 인상 깊었던 출근 길의 한 장면은 작별 키스였다. 문제의 마주 보는 좌석에 3명의 엄마,아빠,초딩쯤으로 보이는 아이 그리고 외국인인 내가 함께 앉았다. 나는 남의 가족의 출근 길에 함께한 셈이다. 가족끼리 독어를 하는데 난 못 알아들으니까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부모님이 나란히 앉고, 아이가 내 옆에 앉았다. 엄마가 가장 먼저 내렸는데, 아빠와 굿바이 키스를 사랑스럽게 했다. 나는 예상치 못했던 광경이라 꽤 당황했는데, 옆에 애 표정을 보니 이게 아침마다 있던 일이었나 보다 별 관심도 없다. 다음 차례로 그 애와 엄마도 굿바이 키스를 하고 엄마가 내렸다. 다음은 아빠가 회사에 가느라 내리는 모양이었는데, 아빠 역시 인사로 아들에게 키스를 잊지 않았다. 이 곳에 온 뒤로 공공장소에서의 키스 장면은 일상다반사 이다. 가까운 사이의 인사이며,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과의 스킨십이기도 한데 나는 외국인이라서 아직도 가끔씩 당황한다.


오늘 본 그 모습은 여태 내가 본 키스 중에 가장 아름다웠다. 그리고 사랑스러웠다. 사랑을 표현하는 일에 인색한 문화에서 살다 온 나는 가끔 이들이 부럽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사랑을 표현해주는 모습이 자꾸 보니까 예쁘고 자연스럽다. 생각해보니 사랑하면 안 될 불륜 같은 사이도 아니고, 사랑이 넘쳐야 좋을 엄마와 아빠, 부모님과 아이, 젊은 커플들이 사랑을 표현하는 게 부끄럽거나 부자연스럽다고 느꼈던 게 더 이상하다.



15.11.18 수


요즈음엔 지하철에서도 소소한 애정표현을 하는 커플들이 꽤 보인다. 물론 이를 두고 의견이 제각각이라는 것도 재밌는 사실이다. 돌아와서는 그때의 아름다운 가족끼리의 굿모닝 키스같은 장면을 목격한 적은 없다.(당연한건가?;;)

그 때나 지금이나 장거리 출퇴근과 인연  악연으로 나는  그때보다 먼 거리를 빨간 버스를 타며 통학하고 있다. 매번 어플로 남은 좌석을 확인하는 데, 편리하면서도 지긋지긋하다. 좌석버스 입석금지라는 탁상행정은 해프닝으로 끝났고, 아무 문제도 해결 못한 채 운 나쁘면 서서 다니고 있다.


아참, 그리고 한국에 온 뒤로는 지하철에서 뭔가를 먹은 적은 없다. 근데도 아직 빵을 먹던 자유는 그립다.


매거진의 이전글 눈이 오는 날의 첫 출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