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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하남 Apr 09. 2022

까방권은 없다

과거의 영광으로 헤쳐먹기는 이제 그만

까임방지권의 나라

나는 한동안 야구팬이었다. 지금은 롯데 자이언츠의 잇따른 부진, 3시간 이상 집중해야 하는 콘텐츠에 대한 피로감 등으로 거의 관심을 끊었지만 한때는 저녁 6시 30분에 야구중계를 켜거나 최소한 그날그날의 경기 결과는 챙겨 보았다. 로이스터 감독이 공격 야구로 롯데를 이끌던 시절 롯데에는 중간에 등판하는 투수 중 강영식이라는 선수가 있었다. 그는 들쑥날쑥한 피칭으로 팬들의 마음을 왔다갔다 하게 만들었는데, 하루는 그의 활약으로 박빙의 승부에서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그런데 그날의 베스트 댓글이 참 재미있었다.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핵심은 비록 내일은 깔지라도 오늘은 잘했다는 것이었다. 그날은 웃어넘겼지만, 한참 세월이 지나고, 요즘의 정치 문화를 보면서 이런 자세야말로 시민들에게 참 필요한 마음가짐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는 "까임방지권"이라는 특이한 권리가 존재한다. 매우 인상 깊은 성과를 도출했을 때 부여되는 권리이며, 나중에 어떤 잘못을 하더라도 비판을 받지 않고 그냥 이해받을 수 있는 매우 강력한 힘이다. 스포츠 민족주의의 나라답게, 까임방지권을 획득한 대표적인 인물로는 박지성, 김연아, 손흥민 등이 있다. 그런데 우리 국민의 상당수는 이 기준을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에게도 적용하는 경향이 짙은 것 같다. 이 부류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인물이 과거에 민주화 운동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베풀었던 선행이 있다는 이유로, 혹은 그가 추진했던 정책이 사회경제적 성과를 낸 적이 있다는 이유로 까방권을 부여한다.


정치에서 까방권이 존재하면 안되는 이유

문제는 해당하는 정치인이 이 권리를 가지면서 그의 잘못된 언행들이 그대로 용서되고, 국민 전체에게 해악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저지르는 부패는 국민의 재산과 권리를 침해하며, 제대로 된 전문성 없이 일단 저지르고 본(선한 의도였다고 하더라도) 정책의 부작용은 우리 국민 전체, 나아가 자연환경 및 국제사회에 미치고 있음에도 전반적으로 한국 사회 국민들은 해당 정치인에 대한 지지를 잘 거두지 못한다. 정책 혹은 신념에 대한 지지와 인물에 대한 지지를 구분하지 못하고 지지하는 인물의 모든 행적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의 부패와 무능력을, 정작 그 사람으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는 사람들조차 변호하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한다.


정치인은 과거가 아니라 지금의 모습으로 평가해야

이러한 양상이 나타나는 것은 자기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고, 처음 자신이 내린 판단을 그대로 밀고 나가고 싶은 인간의 보편적인 사고습관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신이 특정 정치인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것이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한국 사회는 어떤 정치인을 지지할 때 지지하는 이유를 그의 가치관, 도덕성, 전문성, 경력 등에서 찾는다. 만약 그를 포장했던 이런 것들이 거짓으로 탄로났거나, 혹은 이후 시간이 흘러 변질되었다는 것이 확인되면 지지를 철회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정치인에게 까방권을 주어서는 안된다. 어제 잘했어도 오늘 잘못하면 비판을 해야 하며 그것을 수용하고 반성 성찰 성장해야 하는 것이 정치인의 숙명이다. 그가 민주화 운동의 공로자라고 해서, 사회경제적 공헌이 있다고 해서, 과거의 방식으로 성공한 적이 있다고 해서 이후 그의 잘못된 행적이 용서받을 수는 없다. 지금 잘못하면 그에 상응하는 비판을 받아야 하며, 그 정도가 심각하면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 우리는 정치인을 지지해야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가치관과 지향을 지지해야 하며, 정치인은 그것을 드러내기 위해 우리가 선택하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도구가 상하면 고쳐 쓰거나, 고치지 못하면 버리고 새로 사야 한다. 고장난 도구를 계속 사용하면 결국 우리가 다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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