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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하남 Apr 01. 2022

여자가 능력 있으면 안 되나요?

드라마 <신사와 아가씨>가 보여주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

KBS 주말드라마 <신사와 아가씨>는 매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30%가 넘는 시청률을 안정적으로 유지했으며 2회 연장 방송까지 했다. 관심이 있던 드라마는 아니었지만 양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과정에서 드문드문 시청하게 되었는데, 캐릭터 설정부터 내용 전개 방식 등 여러 측면에서 이 작품이 2022년 작품이라는 것에 매우 큰 불편함을 느꼈다. 드라마를 시청한 독자가 아니라면 방송사에서 제공하는 인물관계도와 기본 설정을 본 후 이 글을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드라마 전체를 온전히 시청하고 쓰는 글은 아니기에, 내가 지적한 부분들이 드라마 전개 상 그것을 상쇄할 수 있는 내용을 제공했을 수 있으며, 내가 미처 확인하지 못한 다른 문제들을 언급하지 않았을 수 있다.


조실장과 여주댁 : 가사노동에 대한 차별적 인식

극 중에서 조사라(박하나 분)은 재벌가 가정의 회계를 담당했고, 여주댁(윤지숙 분)은 전업으로 해당 가족의 식사 및 기타 가사노동을 담당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조사라는 조 실장으로 불리면 반면, 여주댁은 그냥 여주댁이다. 인물 소개를 봐도, 드라마를 봐도 여주댁의 이름을 확인할 수 없었다. 여주댁은 그냥 여주 출신 아낙이라는 뜻이다. ~댁이라는 표현은, 전근대 사회에서 여성은 가정 이외의 장소에서 활동하지 않으니 이름을 알 필요가 없다고 간주되며 사용된 방식이다. 여자는 결혼해서 시부모와 남편, 아들만 받들며 살고 외부 활동을 하지 않으니 어디 출신 여자라더라 이상의 언급은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 같은 여성인 조사라는 왜 이름도 부여받고 실장으로 불릴 수 있는 걸까. 이는 담당 직무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조사라가 맡은 직무는 재정관리인 반면, 여주댁은 그냥 집안일을 한다. 이는 비교적 남성의 영역인 회계 업무를 하는 인물은 대우를 받고, 여성의 영역으로 간주되는 가사노동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현실을 반영한다. 같은 장소(재벌집 가정)에서 근무를 하더라도 구성원들의 월급을 관리하면 전문직이고 마트에서 장 보고 밥 하고 설거지하면 허드렛일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조 실장은 항상 세련된 패션을 선보이지만 여주댁은 항상 앞치마 차림에 촌스럽다. 가사노동을 하는 사람은 왜 항상 허름한 복장을 하고 있어야 할까. 재벌집 가정에서 일한다면 주변 환경과 이질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오히려 더 고급스러운 복장을 갖추도록 배려해야 하는 것 아닐까. 재벌가의 구성원들도 두 인물을 대하는 방식에 뭔가 차이가 있다고 느껴졌다. 조 실장에 대해서는 거의 존댓말을 쓰고 심지어 대립하는 상황에서도 최소한의 품격(?)은 유지했다. 반면 여주댁을 대할 때는 반말 위주의 화법으로 그다지 상대를 동등한 어른으로 존중하지 않는 인상을 주었다. 두 인물에 대한 작명과 묘사는 전업주부를 놀고먹으며 할 줄 아는 것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한국 사회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조사라와 박단단 : 능력 있는 여성에 대한 편견

비교적 능력 있는 인물로 인정받은 조사라이지만, 그 역시 성차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조사라는 항상 불안에 시달리며 시기심을 부리고, 남자 주인공의 선택을 받지 못할 상황에 처하자 범죄에 가까운 온갖 권모술수를 부린다. (현실에서는 남성이 데이트 폭력과 스토킹을 훨씬 더 높은 비율로 저지르지만 드라마에서는 선택받지 못한 여성을 이런 식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 젠더 문제를 연구하고 있는 나미수의 분석에 따르면, 드라마 속 여성들은 조사라처럼 (남자들이 인정하는) 전문적 능력을 갖추고 있을 경우 성적 매력이 부족하거나 성격적 결함이 있는 인물로 그려지는 경향이 짙다.


이는 특권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남성의 불안을 반영한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전통적으로 남성들이 장악해온 영역에 진출하는 여성들이 증가하고 있다. 안정적으로 특권을 유지하려면, 여성들이 내 자리를 빼앗지 못하도록 막는 것을 정당화할 핑계가 필요하다. 일부 자리를 결국 빼앗기더라도, 여성들이 아무 문제없이 남성의 역할을 대체하고 있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으니 성격이라도 걸고넘어지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똑같이 사회경제적으로 성공해도 남자는 능력 있는 사람으로 평가받는 반면, 여자는 독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상사의 성격이 이상한 경우, 남자 상사는 그냥 이상한 사람인데 여자 상사는 여자인 게 꼭 이유가 된다.


박단단(이세희 분)은 남자 주인공과 이어지는 여자 주인공이다. 박단단은 조사라에 비해 흠잡을 곳 없는 성격이다. 밝고 명랑하며 심지어 정의감까지 강하다. 사랑하는 남자라면 어떤 문제가 생겨도 다 이해하고 어떻게든 품어준다. 그런데 박단단의 직업은 가정교사이다. 왜 여자 가정교사는 여자 실장보다 성격이 좋을까.(성이 좋다는 표현보다는 남자에게 순종적인 모습이 긍정적으로 묘사된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한 것 같기도 하다.) 가정교사는 남성의 기득권을 위협하지 않기 때문이다. 양육과 교육은 관습적으로 여성의 영역이었으며 남성은 관여하지 않았다. 상당한 수준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충분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대우 수준도 주류 남성의 직업에 비해 매우 낮은 편이다. 남성의 자리를 위협하지 않으니 문제없고 괜찮은 인물로 묘사되는 것이다.


이세련과 박대범 : 연상연하의 의미

이세련은 재벌가 비혼 여성이고 박대범은 박단단 일가의 평범한 남성인데 둘은 커플이다. 그런데 이 둘의 사랑을 방해하는 요소는 여성의 나이가 더 많다는 점이다. 둘이 엮인 과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집안 어른들은 이세련의 혼삿길이 막힐 것을 걱정하는 장면이 있다. 자신보다 어린 남성과 연애를 했다는 과거가 여성의 미래를 발목 잡는다는 인식이 지금 방송될 수 있다는 게 참신하기 짝이 없다. 여성이 결혼을 하지 않으면 실패한 인생이라는 인식도 한심하다.


박대범은 사랑의 진정성을 의심받기도 하는데, 이는 그가 경제적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는 멀쩡한 남자라면 한참 나이가 많은 여성에게 접근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나이가 많은 여성은 성적 매력이 부족하니 남성의 사랑을 받을 리 없다는 것이다. 현실에서도 다르지 않다. 남자가 더 나이가 많은 커플은 여성이 이성적 매력을 활용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여성의 나이가 더 많은 커플인 경우 사람들은 여자의 경제적 능력이 관계 구축에 더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측한다. 나이가 많은 여성은 이성에게 성적 매력을 발휘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연상연하라는 표현의 의미를 생각해보자. 아무런 부가 설명이 없는데도 우리는 모두 여성의 나이가 더 많은 이성애 커플이라는 의미로 이해한다. 그럼 남자의 나이가 더 많은 커플, 나이 차이가 있는 동성애 커플은 연상연하가 아니라는 말인가. 이 용어가 지극히 한정된 의미로 문제없이 쓰일 수 있는 것은, 남자의 나이가 더 많은 이성애 커플이 표준이고 다른 경우는 표준에서 벗어난 특이한 경우라는 인식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이 만든, 여성이 소비하는 드라마 : 치유되지 않은 상처의 대물림

이 작품은 위에서 언급한 점 이외에도 지적할 부분들이 넘쳐난다. 아버지의 딸에 대한 감금과 휴대폰 압수 등 폭력적 통제는 있을 법한 정상적인 갈등으로 묘사된다. 아버지는 책임감 있는 가장으로 묘사되고 어머니는 생각이 짧은 푼수로 그려지기도 한다. 아버지 쪽 친척들은 다 능력 있고 아량도 넓은데 이상하게 어머니 쪽 친척들은 대체로 하자가 있고 아버지 쪽의 대가 없는 도움을 바라는 등 염치도 없다. 국가 부도 위기 속에서 실업자의 70%가량이 여성이었음에도 가정을 버리고 노숙자가 된 사람 대부분 남성이지만, 미디어는 이러한 현실을 공정한 비율로 묘사하지 않는다.


이런 드라마가 공영방송 황금 시간대에 방영되고 있다는 점 이상으로 안타까운 것은 이 드라마의 주 시청층이 여성이고 심지어 작품을 구상하고 집필한 작가조차 여성이라는 점이다. 젊은 시절 가부장적 남편과 시부모에게 착취당했던 여성이, 며느리에게 그 시절의 아픔을 공감해주기보다는 당했던 방식의 갑질을 그대로 대물림하고 있는 모습과 겹쳐 보이는 것은 지나친 걸까. 이런 작품이 지속적으로 히트한다면 여성들이 차별당하는 현실을 개선하는 시점이 더욱 늦춰질 뿐이다. 미디어 생태계를 장악하고 있는 남성들의 반성도 중요하지만, 피해 당사자인 여성들이 시대에 뒤떨어진 작품을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소비하지 않는 연대를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빠르게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은 돈의 힘이며, 현대의 여성들은 재화의 생산자이자 소비자로서 그러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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