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도경완은 KBS 공채 아나운서 출신으로 자타공인 최고의 트로트 가수인 장윤정과 결혼했다. 그는 프리랜서로 전향한 이후 각종 예능에 출연하며 활동 폭을 넓히고 있는데, 그가 하는 토크 주제는 항상 같다. 부인인 장윤정의 유명세에 가려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줄 수 없고, 길을 가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거나 알아봐도 장윤정의 남편으로만 대한다는 하소연이다. 방송인으로서 당연한 고민이지만, 이 주제로 이야기가 반복될수록 고민은 해결되는 것과 더욱 멀어질 것이란 점은 역설적이다.
방송가에서는 연예인 부부가 많다. 만나게 된 사연은 제각각이고, 결혼 전 둘 사이의 소위 체급은 항상 같지는 않았다. 대체적으로 남성이 더 유명세가 있거나 최소한 여성과 대등한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도경완의 사례처럼 남성이 더 낮은 급수의 상태로 결혼까지 도달한 사례는 극히 예외적이다. 여성 연예인이 유명하지 않은 일반인과 결혼한 경우, 유명세가 없는 것을 커버할 수 있는 재력을 갖춘 경우도 찾기 쉽다. 걸그룹 씨스타가 한창 활동하던 시절, 소속사 사장은 기본적으로 연애를 금지했지만 'S급 연예인'과의 연애는 허용했다고 한다. 국민영웅 김연아는 한때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선수와 연애를 했는데 국민 여론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남자의 체급이 김연아에 비해 낮기 때문에 김연아가 아깝다는 이유였다. 반면 소지섭은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매우 생소한 게임방송 아나운서와 결혼했는데, 이때는 딱히 논란이 없었다. 이처럼 한국 사회는 남편이 아내보다 잘 나가는 게 보기 좋다는 분위기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
그래도 도경완의 사례처럼 남성 연예인이 부인의 유명세에 가린 경우도 있겠지만, 반대의 경우도 존재할 것이다. 그런데 남성이 더 유명하거나 잘 나가는 커플은 여성이 그 명성에 가리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이야기를 접한 적이 없다. 그런 사례가 없는 걸까, 아니면 있어도 그런 말을 못 하는 걸까. 여성 연예인은 결혼하는 순간 가정에 집중한다며 잘 나가던 커리어도 모두 버리고 방송가에서 사라지는 경우를 쉽게 찾을 수 있는 반면, 남성 연예인이 그런 경우는 찾기 어렵다. 이는 결국 사회적 압력이 각 성별에게 서로 다르게 적용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남편의 커리어를 위한 희생을 일방적으로 강요받는 아내들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는, 그래도 제법 젠더 감수성을 어느 정도 갖춘 남자 주인공이 아내의 커리어 재시작을 위해 육아휴직을 결정한다. 하지만 들뜬 마음도 잠시, 이 소식을 접한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아들의 앞길을 막는다며 노발대발하며 아내의 들뜬 마음을 박살 낸다. 아내는 잘 나가던 직장 여성이었지만 육아를 하면서 퇴직하고, 이미 상당기간을 남편을 위해 희생했다. 그런데 이제 바통 터치를 하려고 하니 갑자기 이기적이고 남편의 발목을 잡는 못돼 먹은 여자가 되고 말았다. 부부 사이는 분명 동등한데, 남편은 아내의 커리어를 희생시켜도 되고 아내는 안된다는 차별이 행해진 것이다. 이는 남성의 출세 및 사회적 지위 유지가 여성의 그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고정관념이 사회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여성 위주의 경력단절 및 육아휴직을 강요하는 사회적 압력
현실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은 국가 부도 위기를 맞았을 때 대부분의 회사가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사내 커플 출신 부부 사원의 경우, 둘 중 한 명이 퇴직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역시나 그러한 의무는 여성에게 부과되었다. 내가 몸 담고 있는 교직 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부부교사의 경우 어느 한쪽만 승진 준비를 하는 경우 거의 남교사에 해당하며 여교사는 뒷바라지 및 육아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부부 사이에 합의를 했을 것이고 부인 역시 그것이 자신의 선택이라 여기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순수한 개인의 선택이라면 부부교사 중 여교사가 승진하는 경우가 비슷하게 나와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는 결국 같은 업계에서 아내는 승진했는데 남편은 그렇지 못하다면 주변에서 보기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회적 압력이 부부 교사에게 내면화되었다고 보는 게 적절하다.
육아휴직에서도 이러한 측면은 명확하게 드러난다. 교직 사회는 본인의 의지만 확고하다면 남교사들이 육아휴직을 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역시 대체로 여교사들 위주로 휴직을 하고 있으며 남교사는 휴직 없이 일하는 경우가 여전히 대부분이다. 육아는 아무래도 엄마가 주로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 남편을 휴직시키고 아내가 일할 때 아내에게 쏟아지는 주변의 눈총, (사회적 압력으로 엄마에게만 학습된) 아이를 직접 돌보지 않은 경우 느끼는 죄책감 등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가부장적 가치관을 벗어나지 못한 남성들은, 아내보다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확보하지 못하면 자신의 남성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고 느낀다. 이러한 태도를 가진 남편이 실직하고 여성은 여전히 커리어를 쌓고 있는 경우, 자격지심에 시달린 남편은 자존감 유지를 위해 폭력을 행사하거나 바람을 피우는 경우를 꽤 찾을 수 있다. 폭력을 통해 아내보다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고, 자신을 우러러 봐주는 다른 여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직 시 주어지는 전업주부라는 자리를 수용하지 못하는 모습에는 가사노동을 천시하는 구시대적 관념도 담겨 있다.
잘 나가는 아내는 자랑스럽고 든든한 존재
남성들은 가부장적 가치관의 수혜자 같지만, 사실 피해자이기도 하다. 가부장의 지위는 안정된 경제적 능력을 바탕으로 가족 구성원의 생계를 전적으로 책임질 수 있을 때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부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너무 험난해지고 빈부격차는 극심히 확대되고 있으며, 능력 있다는 평가를 받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평생직장도 보장되지 않고 집도 살 수 없는 시대에 남성의 대부분은 본인의 절대적 능력치와 관계없이 승자의 입장에 서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의 고정관념처럼 잘 나가는 남편과 그를 내조하는 아내라는 단일한 구조만 원한다면 남성은 배우자를 찾을 수 없다.
생각을 바꾸어보자. 아내가 잘 나가고 남편이 그를 내조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사회가 되었다고 상상해 보는 것이다. 그러면 남성들은 그동안 그렇게 부러워했던 여성들의 입장이 될 수 있다. 딱히 경제적 능력이 없고 취직을 하지 못했어도, 인간적 매력으로 능력 있는 여성과 연애해서 취집 해도 부끄럽지 않을 수 있다. 직장에서 승진하지 못해도 아내가 승진하면 기쁘게 축하할 수 있으니 굳이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도 없다. 바깥의 경쟁에 치여 너무 힘든데 마침 아내가 잘 나가면 과감하게 휴직해서 재충전하거나 아예 퇴직하고 전업주부를 할 수도 있다.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부장의 지위는 독이 든 성배일 뿐이다. 이제 그만 집착을 내려놓고 잘 나가는 아내들을 응원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