걔? 취집 했잖아~
전업주부에 대한 질투와 혐오 사이
취집을 보는 시선, 질투
취집은, 별도의 소득 활동이 없거나 남성 배우자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의 소득 활동을 영위하는 여성이 결혼해서 전업주부가 되는 행위를 얕잡아 이르는 말이다. 이 용어는 여성을 타깃으로 만들어졌지만, 남자와 여자 모두 사용하고 있다.
취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남자들은 대체로 집안 재산이나 자신의 직업이 남들 기준으로 봤을 때 딱히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 돈 많고 집안 좋은 남자들이 예쁜 여자랑 결혼하는 것이 정말 부럽고 시샘이 나지만 자신은 그럴 능력이 없다. 자신의 능력 부족을 탓하기는 가슴이 아프기 때문에, 오히려 그 여자들을 별 것 아닌 존재로 비하하는 신포도 전략으로 정신 승리를 시전 한다.
취집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전업 주부를 무시하는 여자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해서 직접 소득을 창출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가정 바깥에서 직업을 가진 여성 모두가 이렇게 생각한다는 뜻이 아니니 오해 없길 바란다.) 자신은 이렇게 아등바등 열심히 사는데, 쟤들은 별다른 노력 없이 외모 하나로 남자 하나 잘 물어서 편하게 사는 것 같아 열 받는다. 경쟁에 밀릴까 걱정해야 하는 불안에서 해방된 것이 정말 부럽다. 역시 그 여자들을 시대에 뒤떨어지고 남성에 의존하는 구시대적 존재로 비하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취집은 폄하되지만, 취집녀를 진정 하찮게 본다면 애초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 위의 남성과 여성은 모두 자신은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한 끝에 차라리 혐오하는 것을 택했다.
취집이 좋은 이유
취집을 비난하는 논리를 수용한다면, 능력 있는 사람끼리 혹은 부유한 집안끼리 통혼해야 한다. 우리가 말하는 능력이라는 것은 계발되기까지 그 사람이 자라온 가정이 보유한 자본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있는 집안끼리만 통혼하게 되면 사회 양극화는 더 심화되고 그에 따른 갈등 및 소모적 비용 또한 확대될 것이다.
반면 취집은 사회적으로 매우 좋은 효과를 제공한다. 한 여성이 취집을 했다는 평가를 듣는다는 것은, 그의 직업 활동에 따른 소득이 배우자에 비해 낮은 편일 뿐만 아니라 여성의 출신 집안 역시 경제적 수준이 그렇게 탄탄하지 않다는 것을 포함한다. 사장님 딸은 직업이 없어도 결혼할 때 취집 했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취집은 높은 계층 구성원과 낮은 계층 구성원이 결합하여 사회의 양극화를 해소하는 데 기여한다.
결혼, 언제부터 시장이 되었나
언제부턴가 결혼은 서로 간 수준을 맞춰 가진 것을 교환하는 시장이 되었다. 집안과 직업 수준을 맞추고, 조금 균형이 안 맞는 부분이 있으면 외모 수준 혹은 나이 차이를 넣어 맞춘다. 본인이 당사자인 결혼에 이런 평가를 듣는다면 상당히 불쾌할 것이다. 그런데 남들 결혼에는 그런 평가를 마구 해댄다.
남들 눈에 아무리 외모와 돈이 교환되었다고 보여도, 그리고 그것이 일정 부분 사실이라 해도 당사자들 사이에 최소한의 인격적 교류와 신뢰 관계, 애정이 형성되지 않으면 결혼은 이루어질 수 없다. 결혼은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하는 행위이다. 가장 이상적 의미의 사랑은, 상대방의 직업이나 소득 수준을 따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경제적 능력에 차이가 있는 사람들이 만나 결혼하는 것이 비하의 대상이 되고 있을까.
경제적 파이의 남성 쏠림이 초래한 취집 혐오
이는 취집으로 불리는 결혼의 형태가 부유한 남성, 그렇지 못한 여성의 조합으로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유한 여성과 그렇지 못한 남성의 조합이 비슷한 비중으로 형성된다면 취집은 더 이상 돋보이는 현상이 아닐 것이다.
취집이 일방향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사회의 경제적 파이가 남성에게 쏠려 있는 구조 때문이다. 국가 부도 위기 이전 한국 사회는 남들보다 잘 벌지 못하는 평범한 회사원과 전업주부의 부부 구성이 전혀 특별하지 않았고 취집이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나마 이제는 극심한 경쟁 속에 같은 남성이라도 대다수는 그 파이를 나눠먹기가 힘들어졌고, 남성 중에서도 일부만 전업 주부와 경제적으로 안정된 가정을 꾸리는 것이 가능해졌다.
사실 취집이 자꾸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그만큼 결혼 중에서 비율이 낮은 사례이기 때문이다. 양극화와 부의 쏠림, 동일 계층 간 통혼이 심화되면서, 여성 입장에서 취집 대상으로 고려할 만한 남성은 그렇게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그 숫자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다수의 여성이 취집 하고 있다면 앞서 언급한 것처럼 취집이라는 용어를 써가며 별도로 언급될 사안도 아니다. 대다수의 여성들은 평범한 우연으로 경제적 수준이 평범한 남자를 만나 관계를 쌓고 결혼해,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다. 오히려 가족 부양 능력이 없거나 그러할 의지가 없는 남편을 대신해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있는 여성들이 취집 한 여성보다 더 많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전업주부, 나쁜 거 아닙니다
취집은 기본적으로 전업 주부의 길을 선택한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이다. 그런데, 페미니즘을 비롯해 여성의 평등한 기회 보장을 강조하는 여러 주장 역시 자칫하면 전업 주부 여성들을 소외시킬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가정 밖으로의 진출을 강조하다 보니 가정생활 및 주부의 역할을 중시하는 여성에게 자기 비하를 강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사노동과 육아에 가장 큰 무게중심을 두는 것도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선택이다. 지금까지의 현실은 그것이 완전한 선택이 아니라 강요되었던 것이 문제일 뿐이다. 여성의 권리 향상에 대한 논의는, 주부로서의 정체성이 차별을 느끼지 않는 사회를 전제하고 주부와 그 밖의 직장 선택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남성 전업주부가 여성 전업주부와 비슷한 비율로 존재하고 전혀 특별하지 않게 느껴지는 사회이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