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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하남 Mar 28. 2022

너도 페미냐?

여자를 쉽게 얻고 싶은 남자들

너도 페미냐?

위의 질문은, 여성의 권리를 존중하거나 남성의 차별적 행위를 비판하는 이야기를 조금만 하면 인터넷 상에서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성평등 사회가 실현되었다고 굳게 믿고 있는 남자들은 손가락 모양, 작은 언행, 개인 SNS의 사소한 이야기 등 온갖 것들을 구실로 페미라는 의혹을 제기하며 엄마를, 여자 친구를, 선생님을 압박하고 게임에 참여한 성우를 몰아낸다. 여성들에게만 할인쿠폰을 줬다는 이유로 쇼핑몰 대표를 사퇴시키기도 한다. <82년생 김지영>을 읽는다고 하면 발작을 일으킨다. 여성학 강의를 듣는 여자 친구에게 헤어지든지 강의를 듣지 말라고 강요한다.


남성의 기득권을 그대로 드러내는 남성 인권 투사들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남자들은 더 이상 남성 우월 사회가 아니고 남성 권력이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들이 누리며 보여주는 권력 자체가 성 불평등의 증거이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나와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의 입을 닫게 하고, 사회경제적으로 실질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례가 (자칭이든 타칭이든) 페미니스트를 비난하는 남성 연대이다.


이들은 페미니스트들과 논쟁할 생각이 없다. 차근차근 논리적으로 토론하면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국이 여전히 가부장제 사회임을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다. 무지는 권력이다. 몰라도 되니까 모르는 것이다.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고 했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목소리가 큰 사람은 남성이다. 논리가 없어도, 토론이 없어도 그냥 남자들이 목소리를 크게 내며 몰이사냥을 해댄다. 이들에게 맞설 준비가 되어 있는 페미니스트들은 당당히 나서지만 남자들만큼 미디어의 주목과 이해를 받지 못한다. 미디어도 남자들이 사장이기 때문이다.


남성 유명인이 시대착오적인 성차별 발언을 했을 때는 대체로 대중이 잘 모르고 넘어간다. 거의 보도가 되지 않으며, 보도가 되고 욕을 먹더라도 단발성 이슈로 머리 한 번 긁적이고 사과하면 끝나기 때문이다. 반면 여성 유명인이 페미니스트라는 의혹을 받으면 온갖 해명해서 겨우 생존하거나 일자리를 상실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미녀들의 수다>에서 키 작은 남자가 싫다고 했다가 지탄을 받은 일반인 여성은 도마 위에 올라 횟감이 됐고, 온갖 여성비하 개그를 일삼았던 남성 개그맨은 여전히 순탄하게 연예계 생활을 누리고 있다.


아직 맞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여성들은 자신이 페미니스트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들은 자신이 이런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부당한 줄 알지만 후폭풍이 두려울 수도 있고, 차별당하는 삶을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정말 오해를 받기 싫어서 일 수도 있다. 단어 하나, 몸짓 하나만으로 그 사람의 가치관을 단정 짓고 심판하려는 가해 행위는 전혀 미디어에서 비판받지 않는다. 몰이사냥은 실시간 보도로 중계되고 피해자인 여성은 자신이 그러한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는 증명을 눈물겹게 해내야 한다. 사냥꾼들은 자신들이 정의를 실현했다는 만족감을 느끼며 차별을 행하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페미니즘 혐오의 본질

세상에 이런 식으로 근본 없는 린치를 가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가 현대 사회에 어디 있을까. 다른 생각을 가지지 않았다고 증명을 해야 하는 것은 사상 독재다. 남성 권력은 페미니즘을 검열하고 있고, 그 자체로 그들이 권력자임을 증명하고 있다. 페미니즘의 사고방식은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없고, 여성 우월주의를 지향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남성 투사들은 악마의 편집을 통해 페미니즘을 여성 우위를 지향하는 내로남불 사상으로 왜곡하고 있다.


중국 황제들은 글자 하나에서 온갖 의미를 억지로 끄집어내 학자들을 탄압하며 군기를 잡았다. 혹여나 자유로운 학문이 전개되면 자신에 대한 비판이 활성화되고 권력 기반이 흔들릴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현대 한국사회 남성들의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남성 권력은 여성들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활동하며 가부장제의 불합리성을 인식하고 이에 대해 저항하려는 움직임이 커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를 막기 위해 아예 여성들이 자기 검열을 하고 사소한 언행에도 오해받지 않도록 조심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페미니즘이 가져올 변화가 두려운 남자들

남자들이 현대사회가 정말 성평등이 실천되고 있다고 증명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미친 여자들이 뭐라고 하든 떠들게 하고, 적극적으로 그들과의 논쟁에 임하는 것이다. 여성들이 헛소리를 마음껏 해댈 수 있다면 그 자체가 성평등 사회의 증거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페미니즘을 공격하는 것은 불안해서다. 그동안 여성들은 자신들이 착취당하는 줄 모르고 살아왔다. 그런데 페미니즘은 현실을 일깨워주고 남성과 동등한 입장에 서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 이러한 생각이 대중적으로 퍼지면 남자들은 굉장히 피곤해진다.


자신의 권리에 눈뜬 여성의 숫자가 늘어나는 만큼, 남자들은 여자 친구를 사귀기 어려워질 것이고 사귀어도 섹스를 하는 사이로 발전하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훨씬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야동에서 본 판타지를 충족시켜줄 가능성도 매우 낮아진다. 이미 결혼한 남성들은 아내와 딸들이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현실을 마주하기 싫고, 여전히 자신의 투정과 폭력을 고분고분 받아주길 바란다. 결혼해서 육아를 시키면서도 맞벌이도 시키고 싶고 자기는 슬쩍 빠지고 싶은데 그럴 가능성도 낮아진다. 몸의 소중함을 깨달으면서 성매매 여성도 줄어들 테니 그만큼 공급은 줄어들 것이고 쾌락을 사는 비용도 높아질 것이다. 능력이 없어도 기둥서방 노릇하며 방구석 여포 행세하기도 어려워진다.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여성들이 싫으면, 그냥 그 여성들을 상대하지 않고 무시하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이 마녀사냥을 하며 날뛰는 것은, 아직 본격적으로 성평등 의식에 눈뜨지 못한(혹은 생각은 하고 있지만 드러내지는 못하고 있는) 여성들에게 이러한 불온한 사상들이 영향을 미치는 것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욕은 페미들에게 하지만 그들이 의도하는 진짜 청중은 가만히 있는 대다수 여성들이다. 권리에 눈을 돌리기라도 하면 여전히 굳건한 남성 권력이 짓밟을 것이니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세상 모든 여성이 페미이고 싫다면, 남성들은 그냥 독신으로 늙으면 된다. 하지만 그들은 어떻게든 페미가 퍼지기 전에 막으려든다. 그들은 여자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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