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피해자들이 충분이 좋은 대우를 받은 고소득자라고 주장한다. 그 근거는 역시 문옥주의 증언이다. 그들에 따르면 문옥주는 일본군을 '위안'하는데 최선을 다했으며, 덕분에 인기가 매우 좋았고 심지어 야마다 이치로라는 애인까지 있었다. 랑군(전쟁 당시 일본군이 점령한 미얀마 도시로, '양곤'으로도 표기한다)에서는 장교 클럽에 불려가며 짭짤한 부수입까지 챙겼다. 그들이 제시한 내용 중 일부는 사실이다.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위안' 노동을 했으며 인기도 좋았고 애인도 있었다. 그러나 이는 여전히 해결되고 있지 않은, 성폭력 범죄를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 중심으로 다루고 피해자를 탓하는 사회적 인식을 그대로 반영하는 논리이다.
적극적 저항을 강조하는 가해자 중심 논리
성폭력 범죄에 대한 재판 결과를 다룬 뉴스를 보면 속이 갑갑해질 때가 많다. 가해자가 직접적으로 물리력을 어느 정도로 행사했는지의 여부, 그리고 역시 피해자가 어느 정도로 물리력을 총동원해 저항했는지의 여부를 따지며 죄의 경중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신체 조건과 완력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피해자 여성이, 물리적으로 저항했을 때 더 심한 피해를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제대로 의사표현을 하지 못하는 입장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그들이 '위안부' 피해자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다르지 않다. 피해자들은 의지할 곳 없는 곳에 끌려와 강제로 군인들을 상대해야 했다. 섣불리 저항하면 욕설을 듣고, 주먹질과 발길질을 당했으며, 흉기를 휘두르는 군인에 의해 생명을 잃었다. 고분고분하게 누워 있도록 강제로 마약을 먹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겪고 지켜보는 상황에서는, 절대적으로 암울한 결과가 확실한 저항에 나서기보다는 차라리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강간 이외의 다른 피해를 예방하는 것이 최선일 수밖에 없다.
일상적으로 강간을 당하는 상황에서 해당 장소를 벗어날 방법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시중을 들며 강간 당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면 누구라도 환영할 것이다. 피해자들이 위안소에서 저항하지 않았다 해도, 일부의 장면에서 '적극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자발적 매춘이었다고 볼 수 없는 이유다. 이와 더불어, 그들은 강제 동원된 상황이면 삶에 대한 의지를 잃고 처연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이는 성폭력 피해자에게 '피해자 다움'을 강요하며 2차 가해를 일삼는 무리들과 동일한 인식 수준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줄 뿐이다.
예외적 사례의 일반화와 선택적 의미 부여
어떤 주장을 할 때 왜곡을 일삼는 무리들의 특징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극소수의 사례는 과대평가하거나 일반화하고, 자신의 주장을 부정할 수 있는 대다수의 사례는 과소평가하거나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들 역시 마찬가지 모습을 보인다. 위안소를 둘러싼 일본군과 피해자들의 전반적인 모습을 고려하기보다는, 자신들이 다루고 싶은 사례만 찾아 그 안에서도 일부의 파편만 맥락을 제거해 동원한다.
야마다 이치로가 문옥주와 특별한 관계를 형성하면서 일종의 방패막이 역할을 해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강제로 끌려온 상황에서 운 좋게 조금 잘해주는 사람들,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만났다고 해서 강제동원된 본질이 변하지는 않는다. 식민지배 하에서도 우정을 나누거나 도움을 주고 받아 은인 관계였던 한국인과 일본인의 사례가 일부 존재하지만, 그것이 식민지배의 잔혹함을 부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는 않는 것처럼 말이다.
역사 속의 수많은 노예들 가운데 극히 일부는 상대적으로 괜찮은 주인을 만나 고생을 덜하거나 심지어 출세하기도 했지만, 그들의 생명이 존중받지 못하는 노예였다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미국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흑인노예와 서로 사랑하는 내연 관계를 유지하며 8명의 자녀까지 두었지만 그 여성이 노예였던 본질은 변하지 않으며, 비인간적 취급을 받았던 대다수 흑인노예들의 처지를 가려주지 않는다.
문옥주가 위안소에서 계속 안전하게 지냈던 것도 아니다. 그들은 문옥주의 회고 가운게 그나마 괜찮았던 예외적 소수와의 접촉만 강조한 반면 그가 군인의 칼에 죽을 뻔한 사실은 별 것 아닌 해프닝으로 간주했다. 비인간적 대우만 당한 것을 증언한 다른 수많은 피해자들의 호소는 의도적으로 다루지 않았다. 200명 가량의 생존자 가운데 문옥주 1명의 부분적 기억만 선택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월경 때조자 '위안'을 강요하고 군인과 관리인의 폭력이 자행되었다는 등의 증언은 그들에겐 들리지 않았다. 문옥주는 실제로 자신이 꽤 괜찮은 수준의 소득을 얻고 있었다고 믿었는데, 이는 당시 미얀마의 하이퍼인플레이션 상황(이어지는 다른 글에서 다룰 것이다)을 이해하지 못하고 기만당한 것이지만 그들은 이를 마치 사실인 것처럼 말한다.
인간성에 대한 믿음이 없는 그들
문옥주는 가족과 고향을 그리워하며 힘들어하는 일본군에 대한 연민을 드러내기도 했는데, 이 역시 그들에게는 문옥주가 자발적 매춘부였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로만 인식된다. 문옥주의 경우 특별한 정서적 관계를 형성한 야마다 이치로, 귀국 시도에 도움을 준 군의관 등 예외적으로 호의적인 인물들이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심리적 여유를 가질 수 있었고 그러한 상황에서 연민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피해자 대다수는 그러한 작은 행운을 누리지 못했기에 일본군에 대한 분노와 슬픔만 드러냈지만 그들은 역시 이를 무시한다. 하지만 이 내용은 오히려 그만큼 일제의 침략 전쟁이 자국민들에게도 공감을 얻지 못하고 고통만 더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귀한 증언이다. 전쟁 피해자였으면 가해자 집단에 악의적 분노만 쏟아내야 한다는 논리는, 인간성에 대한 그들의 미약한 믿음만 보여주는 것이다.
피해자들은 최소한의 신체적 안전조차 보장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노력했을 뿐이다. 그들은 좋은 대우를 받은 매춘부가 아니라 강제동원된 피해자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