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는 좋은 대우를 받은 고소득자인가(2)

by 레퍼런스

앞의 글에서는 피해자들이 처한 환경을 고려할 때 좋은 대우를 받았다고 볼 수 없음을 밝혔다. 이 글에서는 피해자들이 받은 임금의 실체를 다루고, 결코 피해자들은 고소득을 얻지 못하고 기만당했을 뿐임을 논증할 것이다.


문옥주가 기억한 수입의 실상

그들은 피해자들이 매우 높은 수준의 소득을 올렸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제시하는 사실에 따르면, 문옥주는 실제로 랑군 시내에서 악어 가죽 가방, 레인코트, 다이아몬드 등의 사치품을 구매하는 등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했으며 고향에 5000엔을 송금하고 자신을 위한 저금도 했다. 1945년 9월 기준으로 문옥주의 저금액은 2만 6551엔이며, 이는 현재 가치로 8억 3000만원 가량에 해당되는 엄청난 금액이다. 이는 당시 일본군 육군 중장의 4년 6개월치 월급에 해당한다.


그들이 제시한 내용들은 일단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은 당시 이 금액이 실제로 어떤 가치를 지녔는지에 대한 맥락을 제거하고 단순 금액만 제시함으로써 사실을 왜곡한다. 당시 미얀마는 일본 정부의 화폐 남발로 인한 살인적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통용되는 화폐들은 현금 가치를 상실한 상황이었다. 1941년 12월 기준으로 1945년 8월 당시 물가는 무려 1856배로 폭등했다. 문옥주의 저금액은 2만 65551엔에 당시의 인플레이션을 적용하면 일본에서 해당 금액이 보유했던 실제 가치는 22엔에 불과하다.


문옥주는 일단 명목상으로는 큰 금액의 팁을 받으면서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고 믿었지만, 팁을 준 장교들은 가진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주었을 뿐이다. 그나마 위안소 관리인은 피해자들이 건네주는 군표(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 별첨된 설명 참조)를 받기만 하고 실제로 피해자들에게 현금을 쥐어준 적은 없다고 증언했다. 그나마 문옥주가 저금한 돈은, 그가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엔화가 아니라 현지에서 발행된 루피였다. 화폐에는 엔화라는 표시도 없었고 일본인들이 엔이라고 불렀을 뿐이다.


문옥주의 저금은 1943년 3월 시작되었는데, 본격적인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기 전인 1944년까지는 매회 저금액이 1000엔이 되지 않는다. 그러다 하이퍼 인플레이션 발생 이후인 1945년 4월 이후 회당 5천~1만 엔으로 급증했고 1945년의 저금액이 전체 저금액의 79%에 달한다. 말이 되지 않는 수준으로 물가가 폭등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저금이기에 문옥주의 실질 소득 및 저축은 의미가 없는 수준이다.


피해자들의 수입에 대한 저금, 송금, 인출 제한

엔화와 루피화는 고정환율제로 1:1의 교환 비율이 유지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점령지에서 무차별적으로 발행되어 저축 및 송금된 금액이 그대로 일본 본토의 실물 경제에 뿌려진다면 일본 경제는 순식간에 붕괴됐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시기 도쿄의 불가상승은 1.56배에 그쳤다. 이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점령지로부터 송금된 금액들은 정부에서 각종 제한을 걸어두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흘러넘치는 악화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송금액을 제한하고 가급적 현지에 예금할 것을 강제했으며, 송금액의 일정 비율은 징수하고 그나마 예금한 돈을 인출하는 것조차 제한했다. 피해자들이 송금한 돈도 이러한 제한에 걸려 조선과 일본에 있는 수령인은 매월 조금밖에 인출할 수 없었다. 운좋게 귀국한 피해자가 군표를 일본은행권이나 조선은행권으로 교환하는 경우 제한액 이상은 강제로 예금시켰다. 현지에 남아있던 피해자가 가지고 있던 군표는 일제 패망 후 연합군이 통용 무효를 선언하고 소각 명령을 내리면서 가치를 상실했다. 그나마 서류 상 입금되어 있었던 돈도 만져보지 못했다.


기타 경제적 상황에 대한 이야기

피해자들은 생필품을 중개업자들을 통해 구입해야 했고, 그 가격조차 매우 비싸서 생활이 녹록치 않았다. 다만 그들이 제시한 구입 물품 목록에서 알 수 있듯이 사치품 구입에는 큰 지장이 없었는데, 전시 또는 무정부 상황에서 기본적으로 생필품 가치는 높아지고 사치품 가격은 폭락하며 패전이 가까울 때 해당 진영에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는 전형적 현상이다. 역시 패전을 앞두고 있던 나치 통치 하의 독일에서는 보석과 빵을 교환하는 사례도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종전 후 경제적으로 윤택한 삶을 살았던 피해자를 찾을 수 없다. 제대로 수입을 정산받아 자신의 생활에 활용한 경우도 확인된 바가 없다. 오히려 피해자들이 경제적으로 열악했으며 일본 정부에게 제대로 정산을 받지 못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는 차고 넘친다. 그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문옥주조차 1992년 일본 정부에 해당 금액에 대한 상환을 요구했으나 끝내 돌려받지 못했다. 물론 그들은 이런 사실들은 쏙 빼놓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처럼 피해자들은 '위안소'에서 지내는 기간 전혀 제대로 된 경제적 보상을 받지 못했다. 그들은 하이퍼인플레이션과 일본 정부의 각종 금융 제한을 반영하지 않고 자료의 파편을 의도적으로 왜곡하여 활용했을 뿐이다. 피해자들이 고소득자였다는 주장은 명백히 허구다.


*군표 : 점령지에서 군인들에게 화폐 대용으로 지급한 것이다. 위안소를 이용하는 군인들은 명목상 '위안부' 이용 시 요금 또는 팁으로 군표를 주었다. 군부대에 억류되어 탈출할 수 있다는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 피해자들은 명목상 주어지는 수입이라도 저축해 후일을 대비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눈에는 이것이 자발적 노동을 통한 임금 수령으로 보이지만.




keyword
이전 03화'위안부'는 좋은 대우를 받은 고소득자인가(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