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는 제국에 대한 소속감이 있었는가

by 레퍼런스

'위안부'는 자유롭게 귀국할 수 있었는가

그들은 피해자들이 고소득자였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 해당 사료들을 검토하면서 피해자의 재정 상황을 고려하면 설득력이 없다고 여긴 모양이다. 이에 그들은 궁색한 변명 거리를 늘어놓는다. '위안부'들이 채무에 묶여있는 경우도 있었으나, 전차금을 상환하면 조선으로 귀국하거나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에 따르면, 문옥주는 1944년 여름 전차금을 상환하고 계약기간이 만료되어 귀국길에 올랐다가, 스스로 귀국을 보류하고 '위안부' 생활을 지속했다.


여기서 그들이 자료를 왜곡하고 선택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이 다시 한 번 나타난다. 문옥주는 전차금 상환 및 계약 만료로 인해 귀국을 결정했다고 증언한 적이 없다. 이 내용은 그들이 순수하게 창작한 내용인데 마치 사실인 것처럼 언급됐다.


문옥주에 따르면, 자신은 조선으로 돌아가고 싶었으나 일본인들이 보내주지 않았고, 대신 자신에게 호의적인 군의관과 상의하여 폐병 진단서를 발급받았다. 폐병은 군인들에게 전염되어 전투력 손실을 초래할 수 있기에 귀국 사유가 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군의관은 거짓 진단서를 써준 것이 드러나면 자신의 목이 달아날 것이라며 입단속을 시켰다. 이렇게 속임수를 써야 했다는 것은 피해자들이 '위안부' 생활을 자유 의사로 거부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문옥주 이외에도 '위안소'를 떠날 수 있었던 경우는 탈출, 성병 감염, 가까웠던 장교의 도움에 의한 증명서 발급 등 예외적인 사항 뿐이다.


문옥주가 귀국하는 선박을 타기 직전 포기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졸다가 아버지의 환영이 나타나서 위험하니 그냥 돌아가라고 했기 때문이라고 회고했음을 밝혔으며, 군인들을 '위안'하고 싶다거나 제국 신민으로서의 사명감을 발휘한 것도, 돈을 벌고 싶다는 것도 아니었다. 실제로 문옥주가 타려고 했던 선박은 미군 잠수함의 공격으로 침몰했다.


'위안부'는 일본 제국 소속으로서 자의식이 있었다?

그들은 '위안부'들이 일본 제국 신민으로서의 소속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문옥주는 술에 취해 칼을 휘두르는 병사의 칼을 빼앗아 정당방위를 하는 과정에서 그를 살해하게 되었는데, 그들은 해당 사건에 대한 재판 과정에서 문옥주가 말한 내용에 주목했다. 문옥주는 "우리도 일본인이기는 마찬가지다."라며 "천황 폐하가 내린 칼을 일본군을 위안하러 온 위안부를 향해 겨누는 것은 잘한 일인가"라며 자신을 변호했다.


그들은 이것이 문옥주의 제국에 대한 소속감을 증명한다고 주장한다. 정당한 대우를 받는 노동자였다면 손님이 칼을 휘두르는 상황을 맞이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부터 해야 하지만 그들에겐 너무 높은 기대를 하면 안될 것이다. 문옥주가 위와 같은 이야기를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재판 전 살아남기 위해 고민한 끝에 내뱉은 말에 불과하다.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일본 군인을 죽인 사건에서 정당 방위를 인정받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문옥주는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조선인인 내가 일본 군인을 죽였으니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넘어가지 않을 것은 불을 보듯 훤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면 되지, 아무리 열심히 생각해도 좋은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감옥 안에서 그저 이것저것 되는대로 계속 빌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위의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문옥주가 일본 제국 신민이 아니라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조선인에 대한 일본 정부의 차별을 인식하고 있었고 공정하지 않은 재판 결과에 따른 처벌의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는 것 뿐이다. 식민지 조선인으로서 살아가는 일상에서, '위안소'에서 강간당하는 일상에서 끊임없이 보고 듣고 경험했기에 재판을 앞두고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문옥주의 해당 진술은 생명과 안전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진술이다. 이는 제국에 대한 소속감이 아니라, 일제의 조선인에 대한 핍박의 단면을 보여주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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