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소' 관리인의 일기 뜯어보기

by 레퍼런스

그들이 다루는 핵심 자료 중 하나인 문옥주의 증언은, 피해자들을 매춘부로 몰아세우는 근거가 될 수 없음을 앞의 글들을 통해 논박하였다. 그들이 내세우는 문헌 근거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위안소' 관리인으로 근무한 박치근의 일기이며, 다른 하나는 미국 전시정보국의 49번 보고서 기록이다. 이 글에서는 먼저 박치근의 일기에 대해 다룰 것이다.


<일본인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의 실체

이 문서는, 1940년대 말 미얀마와 싱가포르에서 '위안소' 관리인으로 근무했던 박치근이 2년 간 기록한 일기이다. 우선 그들은 이 기록을 근거로 '위안부'들은 열심히 돈을 모아 본가에 송금하거나 저축했다고 말한다.


박치근이 피해자들을 대신해 저금 또는 송금을 행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실체는 극히 부실하거나 의도적으로 부풀려졌다. 우선, 박치근은 미얀마에서 1943년 1월, 그리고 6월~9월에 이르는 4개월 동안 근무했는데 해당 기간 동안 '위안부' 2명의 저금을 대행했다는 기록 그 자체밖에 없다. 싱가포르에서는 1943년 9월부터 1944년 12월까지 근무하면서 '위안부'의 돈을 저금한 것이 8차례, 송금한 것이 11차례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누가 어느 정도의 금액을 저금했는지의 내용은 없다. 송금 기록은 모두 폐업했거나 폐업이 결정된 '위안부'들의 부탁으로 본인 계좌 혹은 그 가족에게 송금했다. '위안부' 생활 중 그때그때 돈을 저축해 송금한 사람은 없다는 점에서, 실질적으로 피해자들이 안정적인 소득을 지속적으로 창출했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송금한 11건 중 5건에 대해서는 송금 허가 신청서를 제출해야 했고, 그나마 송금한 금액은 일본 정부의 금융 규제로 인해 실질적으로 인출할 수 없었다는 것은 앞의 글에서 확인했다. 박치근이 근무하는 동안 고향으로 돌아간 14명 가운데 7명만 송금을 부탁했는데, 이는 나머지 7명은 그나마 송금할 최소한의 푼돈조차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송금한 7명 가운데 2명도 매우 소액이다. 그들은 한 차례의 송금액이 1만 1000엔에 달했던 사례를 강조하지만, 송금한 날짜인 1944년 12월 기준으로 싱가포르 물가지수는 1941년 12월에 비해 10766배에 달했고, 해당 금액이 도쿄에서 가지는 가치는 132엔에 불과했다. 그들은 박치근의 송금이 30차례라고 말하며 마치 '위안부'들의 금융 활동이 매우 활발했던 것처럼 말하지만, 이는 '위안소' 업주의 자금과 박치근 자신의 자금을 송금한 12차례를 포함한 것이며 그나마 30건이 아니라 23건이다.


그들은 또한 계약기간 완료 시 '위안부'가 전차금을 상환하면 자유롭게 폐업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박치근이 근무하던 1944년 1년 동안 14명의 '위안부'가 폐업하고 귀국한 것이 그 증거라고 한다. 명목상 피해자들이 전차금과 원리금 등을 갚으면 귀국할 수 있다는 규정 자체는 있었다. 하지만 전쟁 상황에서 떠나는 것은 거의 허용되지 않았고, 문옥주가 거짓 증명서라도 목숨 걸고 써야 했던 것이 그러한 상황을 반영함은 앞의 글에서 언급했다. 싱가포르의 경우 후방 지역으로 그나마 폐업이 종종 이루어진 예외적인 사례에 불과하다. 그들은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한 피해자들 대다수가 귀국하지 못하고 현지에서 비극적으로 사망한 것은 무시하고 예외적 사례에만 집착한다. 그들에게는 고통 속에 죽음을 맞이한 피해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 감정보다 눈앞의 이익이 더 소중한 모양이다.


이처럼 해당 기록들은 구체성이 매우 부족하고 피해자들이 제대로 된 소득을 얻었다고 볼 수 있는 근거가 없지만, 그들은 이 자료를 조작하고 가위질하고 특정 부분만 과장하여 왜곡된 주장을 펴는 데 이용하였다. 그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핵심 근거인, 일본 정부의 인출 제한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하지 않는다. 박치근의 일기는 피해자들이 돈 잘버는 매춘부였다는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더욱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었음을 보여주는 자료다.


학문이 아니라 조작범죄를 일삼는 그들

사실 해당 자료는 이미 그러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박치근 일기 번역본의 해제에서는, "위안부 동원이 전시동원체제의 일환으로 이루어"졌으며 '위안부'는 "성적 노예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의견이 제시되어 있다. 심지어 일기를 주도적으로 번역한 사람 중 한명은 역시 그들 중 한명인 안병직이고, 현재 가장 열심히 역사부정에 나서고 있는 이영훈도 관여했다. 모두 이들이 변절하기 이전에 행한 작업들이다.


어떤 자료를 활용할 때는, 해당 문건이 드러내고 있는 사고방식과 결론을 존중해야 한다. 자료를 발췌하는 과정에서 정반대의 주장 근거로 삼기 위해 편집하여 활용한다면 이것은 정당한 인용이 아니라 조작이고 왜곡이다. 그들은 이런 식의 자료 조작을 통해 변조한 내용을 마치 사실처럼 말하는 방식을 끊임없이 구사하고 있다. 문옥주의 증언, 박치근의 일기 모두 이런 식으로 악용됐다. 이런 건 학문도, 연구도 아니다. 범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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