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에서는 미국 전시정보국 49번 보고서를 다룬다. 이 자료는 연합군에게 포로로 잡힌 피해자 20명과 업주 부부 2명에 대한 미군의 심문 기록이다. 그들은 이 기록을 근거로 피해자들이 매춘부였으며 꽤 괜찮은 생활을 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심문 기록을 너무 심각하게 가위질하고 짜깁기했기에 차근차근 뜯어보아야 한다.
그들의 의도적인 자료 편집과 자의적 번역
그들은 49번 보고서의 내용 중 일부를 증거로 제시한다. 그들이 제시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위안부란 일본군에 부속된 직업적 창녀들이다. 그녀들은 남자들을 가지고 노는 방법을 알고 있다. 개인 별로 독방에서 생활하고 영업하였다. 식사는 위안소의 업주가 제공하였다. 그녀들의 생활은 비교적 사치스러웠다. 식료와 물자를 구입할 수 있는 충분한 돈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녀들의 생활은 좋았다."
이 내용만 보면 피해자들이 매춘부였다고 믿을 여지가 있다. 하지만 이 인용문은, 한 문단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 아니라 몇 군데에서 뽑은 문장을 합쳐서 마치 한 문단인 것처럼 꾸민 것이며, 문장도 원문 그대로가 아니라 앞뒤가 잘린 채 각색된 것이다. 원문과 비교해서 살펴보자.
원문1) "'위안부'란 병사들이 이용하도록 일본군에 부속된 창녀 혹은 '직업적 종군자'에 불과하다. '위안부'라는 용어는 일본인 특유의 것이다...이 보고는 일본인에 의해서 동원되어 버마(당시 미얀마의 국호)의 일본군에 부속된 조선인 '위안부'에 관해서만 다룰 것이다."
원문1)의 내용을 보면, 미군은 '위안부'를 일본인 특유의 단어임을 인지했으며 이 단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창녀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따옴표를 붙이고 있다. '위안부'라는 호칭과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그대로 수용한 것이 아니다. 일본인들이 이 용어를 쓰고 있으니 일단 언급한다는 뜻이다. 내가 시리즈를 작성하면서 '위안부'를 언급할 때는 위안부가 아니라 '위안부'라고 굳이 따옴표를 붙여가며 귀찮은 짓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은 따옴표를 의도적으로 삭제하고 미군이 피해자들을 그대로 위안부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처럼 조작했다.
심문 기록 전체에서 창녀라는 용어는 서문에 단 1회 사용되었고 다른 모든 기록에서는 '위안부' 또는 그녀들이라고 지칭했다. 원문1)의 밑줄 친 부분을 통해 미군은 일본인 매춘부들과 조선인으로서 '위안부'로 불린 피해자들을 구분해서 지칭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미군이 보아도 조선인 '위안부'들을 자발적으로 성매매에 나섰다고 보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부분이 많이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원문2) "그녀의 태도는 모르는 사람 앞에서는 조용하고 얌전하지만 그녀는 '여자의 간계'를 알고 있다."
그들은 "그녀들은 남자들을 가지고 노는 방법을 알고 있다."라고 번역한 부분이다. 원문1)과 원문2)의 내용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들은 의도적으로 원문1)의 내용과 원문2)의 내용을 합쳤다. 원문1)과 원문2)에서 밑줄 친 부분은 매춘부 몰이에 방해가 되니 삭제했다. 이렇게 가위질하고 오려 붙여서, 미군 심문관이 조선인 '위안부'를 노련한 매춘부로 인식했던 것처럼 조작했다.
남자를 가지고 노는 방법이라고 번역된 부분의 원문은 "the wiles of a woman"인데 이는 '여자의 간계' 혹은 '여자의 기술'로 번역해야 하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하지 않다. 원문에는 큰 따옴표로 역시 인용 표시가 되어 있지만, 역시 그들은 미군이 직접 이 용어를 사용한 것처럼 따옴표를 삭제하는 조작을 했다.
피해자들이 군인들을 상대할 때 더 심각한 피해를 당하지 않기 위해 자신이 가진 매력을 활용했을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강간을 당하는 것은 기정 사실인 상황에서 주먹질과 발길질, 칼부림까지 당하지 않으려면 고분고분하고 말을 잘 들으며 군인의 비위를 맞추는 게 낫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마치 피해자들이 군인들에 대해 우위의 입장에서 편안하게 성판매를 한 것처럼 조작했다.
원문3) "미치나에서 그 여자들은 개인별 독방이 갖추어져 있는 2층 짜리 대규모 가옥에 배치됐다. 그녀들은 각자 거기서 생활하고 잠자고 영업했다. 마치나에서 그녀들은 일본군으로부터 규칙적인 배급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위안소 업주'가 제공하는 음식을 사먹었다.", "버마에서 그녀들의 생활은 다른 곳과 비교하면 사치스러울 정도였다."
원문3)을 보자. 밑줄 친 부분을 삭제하고 읽으면, 식사는 업주가 무료로 제공했고 생활 수준이 좋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원문에서는 배급을 받지 못했고 업주가 제공하는 음식은 사먹어야 했으며, 생활이 나은 부분은 훨씬 열악했던 다른 '위안소'와 비교하며 언급한 부분이지만 그들은 이 모든 사항을 삭제하고 왜곡했다. 그밖에 병원에서 부상병을 치료하는 일로 알고 지원했거나, 사기에 속에 선불금을 받은 것이 빚이 되어 예속되었다는 내용도 있지만 역시 의도적으로 다루지 않았다. 일본인 업자들이 '위안 서비스'를 할 조선 여성을 '모집'할 목적으로 조선에 방문한 사실에는 의도적으로 "조선인 주선업자와 접촉했다."는 내용을 창작해 덧붙였다.
그들이 이처럼 심각하게 원문을 편집하고 조작한 것은, 역설적으로 원문이 담고 있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면 자신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기 어렵다고 느꼈기 때문임을 드러낼 뿐이다. 이렇게 조작된 자료를 가지고 어떤 주장을 하는 것은 학문이 아니다.
작성자 알렉스 요리치의 정체성과 보고서 작성 과정의 문제
미국 서부의 일본 이주민들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적대 세력으로 분류되어 강제 수용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주민 2세들은 자신이 미국 시민임을 증명하기 위해 군인으로 자원하여 참전하기도 했다. 유럽 전선에서는 직접 전투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태평양 전쟁은 일본군을 상대해야 했기에 주로 심리전이나 포로심문 등에 투입되었다. 알렉스 요리치(이하 요리치)도 이러한 경우에 해당된다.
이들은 모국과 현 거주국 사이의 전쟁으로 모순적인 상황에 처했다. 미군에 입대한 것은 일단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향한 것이지만, '위안부'들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드러나는 측면이 없지 않은 것은, 요리치가 미국과의 적대 문제가 아니라면 일본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의 보고서는 객관적 사실만 반영해서 작성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어떤 사료를 분석할 때는 작성자가 누구이며, 어떤 의도로, 어떤 상황에서 해당 자료를 작성했는지 분석하는 사료비판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언어 소통 문제로 인해 위안소 업주의 의견이 주로 보고서에 반영이 된 것도 고려해야 한다. 요리치는 일본어와 영어에는 능통했지만 한국어는 전혀 몰랐고, 어린 피해자들은 일본어에 서툴렀을 가능성이 높다. 보고서에 따르면 19~31세 사이의 피해자들은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고 무지했고, 이들의 이름은 소리나는 대로 받아적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심문은 결국 위안소 업주들을 통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고, 업주인 기타무라 부부가 이들의 통역 겸 대변인 역할을 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유괴범에게 아이를 사서 앵벌이를 시킨 인신매매범에게 아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물어본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으로, 주관적 평가가 담긴 기록의 신뢰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후 동남아시아번역심문센터(SEATIC)는 같은 인원을 대상으로 다시 심문을 실시하고 새 보고서를 작성했다.(심문회보 제2호) 새로운 보고서는 사실 관계 중심으로 건조하게 서술되었고 '위안소' 생활을 미화하는 구절은 모두 삭제했다. 이는 기존 보고서인 49호 보고서에서 앞서 말한 바와 같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기에 다시 조사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위안소' 상황에 대한 인식의 문제
보고서에는, 의심스런 맥락은 있지만 어찌됐건 '위안부'들이 물질적으로 버틸 만한 상황이었고 각종 사교나 오락 행사에 참석했다는 내용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피해자들이 노예적 상황에 처해있지 않았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전근대의 공식 노예들도 안정적 노동력 확보를 위해 기본적인 의식주는 제공받았다. 더 큰 이익과 욕망을 위해 노예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조치를 한 것에 대해 노예를 대등한 인간으로 대했다는 증거로 보는 사람은 없다.
그들은 강제 동원되어 신체를 유린당하고 있으면 아무 여흥도 찾지 말고 우울한 마음으로 방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어야 한다고 믿는 모양인데 이는 '피해자 다움'을 강요하는 2차 가해에 불과한 것임은 누차 강조했다. '위안소' 생활을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잠깐의 숨 쉴 기회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생존에 도움이 되니, 사교행사와 오락행사가 있다면 나가는 것이 합리적이다. '위안부'가 항상 기아에 허덕인 것이 아니라고 해서, 24시간 내내 침대에 묶여 강간 당한 것은 아니라고 해서 그것이 '위안소' 제도의 비인간성과 고통을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49번 보고서는 피해자들이 매춘부였다는 증거로 볼 수 없다.
걱정되어 덧붙이는 말
논의 과정에서 미군 측의 호칭 문제와 관련하여 일본인 매춘부를 언급했으며,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한 일본인 여성에 대해서는 창녀라고 불리는 것이 문제가 없다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어 사족을 남긴다. 개인적으로 이 논의에서 '매춘부'라는 용어를 계속 쓰고 있는 것도 매우 불편하지만 그들의 논의에 반박하는 과정에서 계속 사용하고 있는 형편이다.
일본인 여성이었고, 매춘에 종사하게 되는 과정에서 직접적 강제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일본에서 살아갈 때 그러한 길을 걷게 된 과정 역시 진정한 의미에서 자발적이었을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들 역시 남성 중심으로 이어진, 성적 대상화 및 인신매매와 사실상의 강제력을 동반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매춘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회 내의 뒤틀린 구조 속에서 만들어진 불평등과 차별을, 한 국가와 다른 국가 간의 관계 속에서 발생한 대규모의 납치와 강간살인 사건과 함께 동일한 범주에서 논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에 불가피하게 일본인 여성과 조선인 여성의 경우를 구분지어 논의를 전개했다. 대상이 누구든 창녀라고 지칭되는 것은 옳지 않으며 성판매 종사자였다고 하더라도 그 선택에는 수많은 사회적 압력이 작용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