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를 대하는 자세
별일 아닌 일에 별안간 맥시멈 분노를 쏟아내는 동료들을 본다.
그 중에는 이름 석자만으로도 모두를 긴장하게 하는 '분노조절장애 빌런' 타이틀을 따낸 이들도 있지만, 비교적 온순한 모습을 보여왔던 사람들에게서도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 흔히 이들을 보며 본 모습이 드러났다며 다중인격을 의심하지만 그에 앞서 누군가 '발작 버튼'을 눌렀기에 일어난 일이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듯 분노를 느끼는 이유도 제각각이다. 이대리는 무시당했을 때, 김부장은 무례한 말투에, 이차장은 자신의 의견을 반대하는 목소리에, 박과장은 업무 성과를 가로채기 당했을 때, 김사원은 퇴근 시간 5분 전에 주어지는 업무에 폭발한다.
발작 버튼의 형성 과정은 이렇다. 김사원은 지난 금요일 즐겁게 하루를 시작했다. 몇 시간 뒤면 무려 석 달을 기다려 온 콘서트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김사원은 칼퇴근을 하기 위해 온종일 혼신의 힘을 다해 모든 할일을 해치웠다.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퇴근을 준비하고 있는데 김부장이 씩씩거리며 다가왔다. 김부장은 업무를 이따위로 해놓고 자신보고 마무리 지으라는 거냐며 버럭 고함을 쳤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공격에 김사원은 혼이 나갔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개념 없는 후배라며 공개처형을 당했다.
결국 김사원은 다시 노트북의 전원을 켰고 그토록 기다려온 공연을 가지 못 했다. 평생 한국에서 다시는 볼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았다. 웃돈을 주고 어렵사리 구한 티켓을 갈기갈기 찢어 쓰레기통에 처박고 나니 엉엉 울음이 터져 나왔다.
인스타그램에는 사람들이 떼창을 하는 모습이 계속해서 올라왔다. 김사원도 그곳에 있어야 했다. 무려 세 달 동안이나 모든 곡 가사를 외우겠다며 출퇴근 길에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던 기억이 떠오르자 분노가 치밀었다.
다가온 월요일에도 김부장은 김사원에게 커뮤니케이션을 이상하게 한다며 망신을 줬다. 김사원은 억울함을 넘어 자신이 부당한 공격을 받고 있다고 느꼈다. 주변 사람들도 김사원이 뭔가를 잘못했겠거니 하며 웅성댔다.
김사원 생각에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었다. 김사원 역할은 데이터를 추출해 팀내 공유하는 것 까지였다. 필요한 데이터를 가공해 사용하는 건 김부장 역할이었다.
이 일은 김사원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첫 번째 발작 버튼을 만들어 냈다. 김사원 뇌는 그 후로 비슷해 보이는 상황이 닥칠 때마다 사이렌을 울리며 경계태세를 발동시켰다.
이런 에피소드를 모르는 이대리는 김사원에게 데이터와 관련한 질문을 했다가 봉변을 당했다. 김사원은 날카로운 눈을 뜨며 자신은 데이터를 공유하는 업무를 할 뿐이니 활용은 알아서 하시라며 쏘아붙였다.
이대리는 자신이 김사원의 발작 버튼을 눌렀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 했다. 생각할수록 화가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김사원이 자신을 경력직이라고 무시한다는 결론 외에는 답을 내릴 수 없었다. 그러고보니 낮에 박과장도 텃새를 부리는듯한 말투를 썼던 것 같다.
이대리는 이제 몇 번의 유사한 경험만 더해진다면 곧 '공채', '경력', '무시'라는 조건값에 반응하는 발작 버튼을 갖게 될 참이다.
발작 버튼은 이처럼 개인이 겪은 부당함, 억울함, 모멸감, 피해의식, 열등감 등 부정적인 요소들과 스트레스가 버무려져 생겨나곤 한다.
김사원의 발작 버튼은 이제 막 한 개가 생겨났을 뿐이지만, 이를 자각하지 못한 채로 김대리로 진급하고 김과장이 되어갈수록 점차 많은 버튼을 갖게 될 가능성이 높다. 회사를 다닌 기간에 비례해 유쾌하지 않은 경험도 하나 둘 쌓여갈테니 말이다.
사무실에서 언성을 높이고 신경질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연차가 높은 이들이 많은 이유다. 여기에 더해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차 후배들이 많아지니 말에 거침이 없어지고 감정을 더 쉽게 드러내게 된다. 점차 조그마한 자극에도 발작 버튼이 쉽게 눌리게 된다.
만약 발작 버튼이 눌려 폭주하는 상대와 마주한다면, 언행을 이해하기 어렵더라도 "아 버튼이 눌렸나 보다"하고 일단 자리를 피해 스스로 가라앉도록 내버려 두는 편이 좋다.
이성이 작동하지 않는 상대를 향해 굳이 즉각적으로 맞서거나 비판을 하면 선을 넘게 만들 수도 있다.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니 논리적으로 꺾어 버리겠다는 시도를 하다가는 자칫 당신이라는 사람 자체에 반응하는 발작 버튼을 만들 수도 있다.
사람을 향한 발작은 십중팔구 혐오로 향한다. 이 단계가 되면 나아지기 어렵다. 누군가의 주적이 된다는건 매우 피곤한 일이다. 한 번의 무의미한 승리를 거두는 것 보다 스스로를 지키는게 훨씬 낫다.
분노를 조절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흔히들 감정을 다스리라고 말하지만 부처같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현실적으로 감정을 통제하는 건 매우 어렵다. 이보다는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행동할지를 선택하는 과정에 노력을 기울이는 편이 더 쉽다.
예를 들어 운전을 하다가 갑자기 끼어드는 옆차와 교차로에서 꼬리물기를 하는 차량을 보면 반사적으로 경적을 짓이기며 쌍라이트를 켜면서 창문을 내리고 욕을 내뱉는 모든 일을 동시에 할 수도 있지만, 화를 내봐야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는걸 인식에 잘 심어둔다면 짜증스러운 감정을 지나보낼 수도 있다. 치미는 감정에도 '저 차 때문에 내가 순간적으로 화가 났구나. 급하면 저렇게 운전할 수도 있지'라고 읊조리고 넘어갈 수도 있다.
분노가 정 가라앉지 않는다면 이를 직접적으로 표출하는 대신 블랙박스 영상으로 신고하는 방법도 있다. 스스로 보복하거나 처벌하지 않고도 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하라는 말이다.
화를 내고나면 기분이 풀리기는 커녕 부정적인 기분에 잠식되고 만다. 남이 잘못을 했는데 왜 내가 나쁜 감정을 떠안고 기분을 망쳐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면, 전혀 그럴 가치가 없다는 이야기다. 참고 넘어가란 의미가 아니라 나를 위해 나은 일을 선택하라는 말이다.
감정에 지배되면 반드시 후회할 일이 생긴다. 열받는다고 앞차를 쫓아가 가로막으면 피해자에서 한순간에 보복운전 가해자가 되버리듯 말이다.
또한 감정에 지배된 자가 만들어내는 폭풍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상대를 먼저 침몰시킬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 나 또한 침몰하거나 큰 피해를 입는다.
분노는 순간적이다. 아주 짧은 찰나만 무시하고 넘기면 의외로 쉽게 벗어날 수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