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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싸이트 May 15. 2023

혼자서 하드캐리 하고 있다는 착각

그런 거 이제 그만하셔야 돼요

회사원들은 늘 바쁘다. 특히 일이 몰리는 시즌에는 업무를 처리하는 속도보다 쌓이는 속도가 빨라진다. 팀 전체에 일이 누적되기 시작하면 새롭게 생겨난 일은 촘촘한 업무분장 경계 사이에 툭 박혀버린다. 모두가 인지했지만 바쁘기 때문에 누구도 나서지 않는다.


간혹 이런 상황에서 술래를 자처하고 나서는 이가 있다. 내가 안 하면 누가 하냐는 듯 한 표정으로 짧은 한숨을 푹 내쉬며 경계선에 떨어진 메일을 더블 클릭해 해체를 시작한다. 해체를 알리는 메일을 받은 팀원들은 그 혹은 그녀를 보며 맘에도 없는 찬사로 귀를 현혹시킨다. 역시 김대리라는 선배부터, 김대리님 덕분에 저희 팀이 굴러간다는 후배들의 아첨이 이어진다. 이것에 우쭐해지면 당신은 영웅놀이에 빠져 대가를 치르게 된다.


바쁜 와중에 스스로 일을 맡았다는 것은 그 일이 익숙하다는 말이다.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너무 잘 알고 있어서 큰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조금 귀찮긴 하지만 스스로 처리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 일을 집어든 이유가 조직을 위한 희생정신이든, 책임감이든, 능동적인 태도든, 존재가치 어필이든, 개인적인 만족이든 관계없다. 그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이미 익숙한 일이고, 능력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자처해서는 안 된다. 할 줄 아는 일을 숙련공처럼 계속 도맡아 하는 것은 오퍼레이터 이상의 의미가 없다.


조직장 관점에서는 팀 내에 능숙한 오퍼레이터가 생기는 것은 당장은 좋은 일일 수도 있다. 누군가가 능숙하게 루틴한 일을 처리해 주면 실수를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나머지 사람들에게 운신의 폭이 생긴다. 더 중요한 일들을 하는데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 그러면 단기적인 팀 성과를 내기에 효과적이다. 팀 성적 측면에서는 적절한 판단이다. 하지만 팬 입장에서 손흥민에게 수비 역할을 맡기는 감독을 나쁘다고 할 수 있다면, 이런 팀장도 나쁘다.


당신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주력도 슈팅력도 떨어지는 남들이 더욱 전방에서 승패를 가르는 고차원적인 일을 하고 있을 때 당신은 여전히 빠른 발을 가지고도 중요하지 않은 공을 쫓아 여기저기를 누비며 오퍼레이팅에 쓰고 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다른 이들도 단순한 잡일을 한다한들 당신마저 그러고 있을 이유는 없다. 장기적으로 보면 회사도 어중간한 업무를 잘 처리하는 당신의 헌신은 인정해 줄지라도, 핵심 인재로 생각해 줄 가능성은 낮다.


당장은 이런 일을 많이 처리하는 게 능력처럼 느껴지고 우월한 기분을 느낄 수도 있다. 적당히 쉬운 일을 많이 처리해서 설령 혼자서 두 명 몫을 한다고 칭찬을 받더라도 본질을 오판해서는 안 된다.


노동력으로 두 명 몫을 하는 것도 물론 뛰어난 퍼포먼스임에 틀림없지만, 그것이 질적인 수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양적인 이야기라면 경쟁력과는 조금 다른 의미가 된다. 팀원이 4명일 때 5명 분량의 업무를 해낸다면 잉여 퍼포먼스를 낸 것이 맞지만, 조금 큰 그룹 단위에서 보면  100명이서 101명 몫을 해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혼자서 오버클럭을 돌려서 뽑아내는 다량의 질 낮은 퍼포먼스는 회사 단위에서 바라보면 파급력이 크지 않다.


이런 일은 아직 그 일을 처리하는 노하우나 숙련도가 부족한 후배에게 넘겨야 한다. 후배가 일을 처리하는 속도가 더디거나, 일 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검토하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고 직접 처리하지 말았으면 한다. 일단 다들 바쁘니 내가 처리하겠다는 희생정신은 높이 사지만, 후배들이 그 일을 배워 능력치를 올릴 기회는 계속해서 지연된다. 중장기적으로 바라보면 조직 단위에서도 손실이다.


소수 인원에게 의존하는 조직은 당장은 퍼포먼스가 좋을지 몰라도 언젠가 해당 인원이 다른 조직으로 가거나 퇴사를 하면 업무가 정체되어 버린다. 회사 관점에서는 업무 공백이 생기고, 일을 대신해야 할 후배들은 성장의 기회를 놓친 채 연차만 쌓여있게 된다. 당신 역시 불필요한 일에 시간을 쏟느라 발전하기 위한 더 중요한 일을 하지 못해 정체된다.


혹시라도 일을 남에게 넘기지 않는 이유가 그 일을 당신의 고과로 남기고 싶거나, 당신의 상사로부터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길 바라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사람들을 심심찮게 목격한다. 그들은 지금이 정점일 가능성이 높다. 혹시라도 아끼는 후배가 이러고 있다면 진심 어린 충고를 해줘도 좋다. 당장은 잘 나가는 듯 한 기분에 취해 들으려 하지 않겠지만 가스불에 달궈진 뚝배기가 잔열로 끓고 있을 뿐 곧 하락세를 맞이할 것이다.


사무실에 앉아 있는 동안 노는 것처럼 비치지 않기 위해서, 계속해서 일하는 척을 하기 위해 쉽고 잡다한 일을 찾아다녀서는 안 된다. 쉽게 해치울 수 있는 가벼운 일을 여러 개 해 놓고 오늘도 일을 많이 했다거나 알차게 하루를 보냈다며 뿌듯해하지 말기 바란다. 그런 일을 하고서 팀장을 쳐다보며 노고를 알아달라는 미소를 보내지 말기 바란다. 업무처리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온갖 사람들을 참조에 걸어 메일을 보내고는 우쭐해하지 말기 바란다.


차리리 멍 때리고 회사 주변을 산책하면서 근본적으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일,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발상 하나를 찾아내는데 시간을 쏟는 편이 더 낫다. 우리는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일, 원하는 일, 보다 어렵고 가치 있는 일을 향해 가야 한다. 우리의 시간은 소중하다. 특히 직장인들은 나의 시간을 고용주에게 팔아 월급을 받고 있기 때문에 온전히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다. 때문에 회사에서의 시간도 스스로를 위해 귀하게 사용해야 한다. 시간을 귀하게 사용한다는 것은 질적으로 내 가치를 더 높이는 활동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팀에서 전혀 하고 있지 않은 일이지만 새롭게 도입했을 때 혁신적인 퍼포먼스를 낼 수 있을 만한 일을 기획한다던지, 우리 회사에서는 아직 도입하고 있지 않지만 업계에서 떠오르는 툴을 도입해 본다던지 하는 일이다. 이런 일을 생각해 내고 시도하는 게 혼자서 5명의 효과를 내는 방법이고 100명의 업무 효율을 높이는 방법이다. 결과적으로 그런 시도는 회사의 밸류를 높여줄 뿐 아니라 회사에 당신이 필요한 이유와 정말로 대체 불가능한 이유를 더해준다. 그런 성공 경험은 당신만의 사업을 펼치는데도 밑거름이 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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