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곳, 만질 수 없는 곳, 실제로 비물질적인 곳, 넓이를 갖는 곳, 외부에 있는 곳, 우리가 이동해 가는 도중에 있는 곳... 수많은 작은 공간 조각들이 있다.”
— 조르쥬 페렉, 『Espèces d’espaces』
우리가 이야기하지 않는 장소들이 있다.
이름없는 작은 공간들.
이름이 있지만 전혀 다른 얼굴을 가진 각각의 공간들.
첫 번째 여정에서 페렉이 말한 ‘수많은 작은 공간 조각들’을 낚아 올리려 한다. 그 조각들 사이에 내려앉은 이야기의 싹을 보았기 때문이다. 탐험의 과정에서 일상과 상상의 파편들을 만나 사유의 꽃을 피우고, 단단한 이야기의 열매를 맺을 수 있지 않을까. 감각의 세계로 나아가는 첫 번째 몸짓으로,
휘이익—
허공을 향해 낚싯대를 던진다.
나는 낚는다. 장소 위에 표표히 떠다니는 이야기들을. 발밑을 스치고 간 장소들의 사연을. 사람들의 발자국이 남기고 간 일상의 끝자락을. 이미 지나간 시간, 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래까지. 무엇이 걸릴지는 알 수 없다. 떨리는 설렘의 공기를 깨고, 손끝에 전해오는 팽팽한 감각. 예기치 못한 장소에 숨어 있던 날 것의 감각과의 조우.
나는 [ ]을 낚는다.
미지의 무엇, 그 찰나의 감각을.
문득 의문이 들었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몸과 기억으로 살아가는데, 실제 느끼는 감각의 세계는 과연 얼마나 겹쳐질 수 있을까. 장소에 대한 감상이 하나의 기준으로 수렴할 때, 개인의 특별한 감각은 너무도 쉽게 납작해진다. 우리는 고유한 감각을 품고 있음에도, 그것을 꺼내어 놓는 방식에 서툴 뿐이다. 이 글은 그 사소하고도 특별한 결을 나만의 문법으로 옮기려는 시도에서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걷기 시작했다. 목적지 없이 걷고, 떠오르면 멈추며, 다시 내딛는 고유한 리듬 속에서 흩어졌던 생각들은 비로소 단어의 형상을 갖춘다. 때로는 도시를, 때로는 집 안을, 때로는 지도 위나 냄새의 궤적을 따라 걷는다. 이 탐험은 잘 짜인 플롯보다 손끝의 떨림과 마음의 수런거림, 그 찰나의 감각을 기록하는 로드무비에 가깝다. 생각이 말이 되고, 말이 글이 되어 공간 위에 놓이는 순간 감각은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다. 내 안의 장소가 글을 통해 누군가의 공간으로 전이될 때 발생하는 거리와 울림. 그 파동이 나를 계속 걷게 한다.
이제 첫 발자국을 내딛는다. 장소 위에 떠다니는 이야기들을 낚아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건넨다. 이 방은 그렇게 시작된다.
이 방에서 장소는 단일한 경로로 드러나지 않는다. 어떤 날은 걷는 발걸음 위에 말을 걸고, 어떤 날은 가만히 머무르는 사이 스스로 모습을 바꾼다. 화면 너머 가상의 지도를 타고, 혹은 냄새처럼 보이지 않는 경로를 따라 다가오기도 한다. 장소에 다가가는 방식에 정해진 문법은 없다. 의도가 앞서기보다, 몸과 감각이 그날의 공기에 맞춰 스스로 경로를 선택할 뿐이다. 이제, 보이지 않는 네 개의 지도를 펼친다.
걷는 지도 목적지를 지우고 걷는다. 발바닥은 땅의 결을 읽고, 몸은 속도와 리듬을 기억한다. 걷는 동안 시선은 낮아지고 생각은 느슨해진다. 그 이완된 리듬 속에서 흩어졌던 감각들이 하나의 장면으로 엮이며, 도시는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서의 얼굴을 드러낸다.
머무는 지도 밖으로 나가지 않는 날, 집 안에 머문다. 너무 익숙해서 투명해졌던 공간이 정지된 시간 속에서 다른 표정을 짓는다. 소리, 냄새, 빛의 변화가 전면으로 차오를 때, 장소는 움직이지 않아도 충분히 일렁이고 있음을 알게 된다.
매개로 잇는 지도 지도를 펼치고 모니터 화면 위를 가로지른다. 직접 닿지 않아도 도시는 특유의 형태와 흐름을 남긴다. 축소된 거리와 멈춘 시간 사이, 화면 속 비어 있는 장면들은 상상의 여백이 된다. 장소는 완성되지 않았기에, 도리어 더 많은 방향으로 뻗어 나간다.
숨은 감각의 지도 냄새를 따라 길을 내고, 소리를 따라 방향을 튼다. 보이지 않지만 기억을 단번에 소환하는 감각의 힘. 장소는 이때 몸보다 먼저 도착하고, 우리는 이미 그 파동 안에 들어와 있음을 알아차린다.
이 지도들은 결코 서로를 밀어내지 않는다. 걷다 머무르고, 머물다 매개를 통해 다른 시공간으로 건너간다. 이 탐험의 핵심은 분류가 아니라 '교차'에 있다. 때로는 이 네 개의 지도를 벗어나 이름 붙일 수 없는 감각의 미로를 헤매어도 좋다. 단순히 지형을 그리는 것을 넘어, 보이지 않던 존재들까지 지도 위로 불러올 수 있다면 관념을 내려놓고 또 다른 세상을 꺼내 봐도 좋다. 결국 이 방의 이야기들은 그 경계 없는 겹침 속에서 피어났으니까.
이제, 보이지 않는 지도를 들고 장소 속으로 들어갈 타이밍이다.
각자의 리듬으로, 원하는 템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