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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 Aug 16. 2023

소리를 공유하는 집, 아파트

지이잉. 쏴아아아. 휘이익. 스으윽. 쿵쿵쿵. 쨍그랑.

단단한 울림통을 타고 소리들이 증폭되어 나간다.

소리를 공유하는 이곳은

아파트.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가만히 있다 보면

소리들이 전해져 온다.

바닥과 천장, 벽과 창을 거치며

소리의 디테일이 조금씩 사라지고

한 덩어리로 합쳐진 채로

원래의 모습에서 변형되어 도착한다.

예리함이 뭉툭해지거나 뾰족하게,

부드러움이 둔탁하게,

작은 것이 큰 것이 되어

원래의 소리를 닮은 어중간한 복제품처럼

의도와 상관없는 소리가 된다.

비어있는 사이, 공간은 소리를 공명하고

채워져 있는 벽은 소리를 전달한다.


물소리, 진동 소리, 엘리베이터 작동하는 소리, 환기팬 돌아가는 소리,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 바람 소리……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들이 끊임없이 사방에서 튀어나온다. 아무리 소리의 근원지와 주체를 유추해 보려고 해도 알 수 없다. 그렇게 소리에 대해 생각을 하다 잠이 든다. 그리고 분명 어떤 소리에 의해 잠에서 깨어난다.


아주 오랜만에 아파트 생활을 하다 보니 신경이 예민해진다. 가만 생각해 보면, 아파트란 원래부터 그런 구조의 건축이다. 몇 채의 집을 옆으로 붙이고 위로 쌓아 올려 작은 땅에 몇 백 채의 집을 세운 것이다. 아무리 방음 대책을 마련해도 해결되지 않는 소음들이 남아있게 마련이다.

본래부터 문제를 갖고 태어났지만, 사람들이 그토록 예민해지는 이유는 또 다른 사회적 문제 때문일 지도 모른다. 아파트는 실제 공간의 질적인 측면에서 볼 때 주택에 비해 과대평가되어 있다. 상대적인 측면에서 말이다. 그런데 아파트 한 채가 주택 한 채보다 더 비싼 경우가 많다.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이 이웃 간에 갈등의 발단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많은 투자에 비해 주거 환경의 질이 받쳐주질 못하니 불만스러울 수밖에. 그래서 더더욱 사람들은 주택이 아닌데도 아파트에서의 불편함을 참기 어려워하는지도 모른다. 당연한 결과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굳이 모여 사느냐고 하면 그건 도시 정책의 문제이지 사람들의 선택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의 선택지가 다양하지 않고 적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현실은 지금 나 역시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거다. 근본적인 문제를 당장에 그리고 개인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나머지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달려있기도 하다. 그러니 내게 공동의 집, 아파트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상쇄시킬, 예민함을 반전시킬 계기가 필요하다. 늘 예민함은 독이 되어 내게로 돌아오곤 하니까.

감정의 상태를 바꾸는 데는 상상력이 도움이 된다. 자, 그럼 최대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상상해 보자. 단, 층간 소음에 참기 괴로울 만큼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임을 밝힌다. 비교도 안될 정도로 힘든 경험도 많기 때문이다.


아파트를 보고 있으면 뫼비우스 띠처럼 점에서 시작해 점으로 끝나는 원라인 드로잉이 떠오른다. 벽과 바닥, 천정이 서로 하나로 이어져 모든 것이 전달되는 하나의 집에 살고 있는 것이다. 몇 세대가 모여 사는 다세대 주택의 스케일이 커져 몇십, 몇 백 세대가 모여 사는 커다란 집이 아파트다.


‘와아아아!’하고 승리의 탄성을 지르면 벽을 타고 윗집으로 기쁨의 소리가 전달된다.

[오늘 축구 경기하는 날이었나?]

‘아아아아…’하고 한숨을 내쉬면 벽을 타고 아랫집으로 아쉬움이 전달된다.

[골이 빗나갔나? …… 오늘은 졌나 보네.]

뭐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


컵이 깨지며 ‘쨍그랑’하고 바닥에 떨어지면 바닥을 타고 아랫집으로 충격의 소리가 전달된다.

[아끼는 물건이면 진짜 속상하겠다!…… 그래도 사고 싶었던 컵을 주문할 명분이 생긴 거잖아.]

‘나’라면 그렇겠다 감정 이입을 할 수도 있겠지.


갑자기 10대 아이들의 함성이 툭 터져 나왔다. 또래 아이들과 배구라도 하는 건지 …… 좀 시끄럽다…… 그런데

계속 듣다 보니 얼마나 즐거우면 저런 소리를 낼까, 그런 생각이 든다…… 어색하게 따라 웃어본다……

[아하하하 아하하하…… ]

같이 살다 보면 어느새 소리를 닮게 된다.


‘웅웅’ 거리는 정체 모를 소리가 건물을 이리저리 떠돌아다닌다.

[혹시 건물이 살아있는 건 아닐까? 전원을 꺼버리면 사라질 테지만 어쨌든 지금은 거대한 생명체나 다름없네.]

이런 상상을 할 수도 있겠지.


엘리베이터를 공유하는 세대만 계산해 봐도 60세대에 가까운 가족의 삶이 이곳에 있다. 온갖 소리와 냄새와 사람과 삶이 섞여 든다. 그것도 매 순간 달라진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다 보면 소리들이 삶처럼 느껴진다. 아파트에 둥둥 떠다니는 소리의 말들이 각색을 거쳐 이야기가 된다.


그래.
서로의 삶이, 소리가 섞여 드는
8월의 여름밤이다.


입 밖으로 내뱉으니 시적인 감성이 떠오른다.

이제 예민함을 조금 접어두고 즐거운 상상을 하며 잠을 청해볼까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예민함은 언젠가 둥글게 다듬어지지 않을까, 아파트의 공동의 삶이 좀 더 편안해지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희망한다.


예외 없이 똑같은 구조를 한 집들이

가로 세로 행렬처럼 늘어서 있다.

하지만 같은 그릇 안에 담긴 다른 일상들.


내 머리 위로 층층이 쌓여있는 사람들.

집들. 그 안의 이야기들.


내 발 밑으로 층층이 쌓여있는 사람들.

집들. 그 안의 이야기들.


위 아래 좌 우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 다른 삶이다.

그 어마어마한 것들이 모두 이곳에 있다니

아파트의 밀도는 여러모로 놀랍게 촘촘하다.


삶의 모든 것들이 지층처럼 켜켜이 쌓여간다.

벌써 딱 1년만큼의 지층이

공동의 집

아파트

우리 집에 쌓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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