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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연대기는 끝나지 않았다

by 귀리

집은 어디로부터 왔는가? 질문에 답하기 위해 먼 과거를 떠올린다.

집을 이루는 작은 부품에서부터 설비, 공간에 이르기까지, 그것들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들. 작은 단초가 되었던 순간들. 변화에 의지를 품은 사람들. 사소하지만 중요한 지혜들. 그 조각들이 먼 과거로부터 하나씩 모여드는 이미지를 상상한다. 집 속에 떠다니는 이야기의 조각들을 따라가 본다.


시간을 거꾸로 돌려, 동굴을 거주지 삼아 살아가던 선사시대 사람들에게로 가 보자. 살아가는 모습이 많이 다르지만, 우리는 그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아니, 그들을 거쳐 수많은 진화를 지나 지금에 이르렀다.

이곳 동굴에 변화의 시기가 도래했다. 어느 날, 동굴을 뒤로하고 용감하게 그곳을 걸어 나온 한 사람이 있었다. 동굴은 특별히 뭔가를 더하지 않아도 살기에 적당하고, 안전한 환경이 보장되었기에 굳이 나올 이유가 없었다. 머무는 것이 훨씬 합리적일 터였다. 하지만 그는, 아니 그들 중 몇몇은, 좀 더 쾌적한 환경에서 살고 싶었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모험이 필요했다. 습하고 어두운 동굴대신 밝고 따뜻한 바깥세상을 선택했다. 동굴을 등지고 밖으로 나섰다. 눈부시게 하얀 세상. 설렘과 두려움이 그들이 지나간 발자국에 묻어나왔다.

이제, 선택 뒤에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남아 있었다. 날씨와 온갖 위험으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있는 공간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그것도 숨거나 기댈 만한 곳이 없는 이 허허벌판에서.

그들은 고민했다. 그리고 그 고민은 곧 모두의 것이 되었다. 강과 숲을 누비고 다니며 공간을 만들 재료를 찾아다녔다. 가까운 곳에서 구하는 것이 운반에 드는 시간과 노력을 줄일 수 있었다. 재료를 다듬어 공간을 만들 도구도 필요했다. 일상에서 꼭 필요한 도구들은 끈기와 절실함 끝에 만들어진다. 가장 쉽고 단순한 디테일이 마지막까지 살아남는다. 건축 역사를 보면, 재료의 선택과 도구의 발전은 늘 함께해 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재료와 도구들이 갖춰져 갔다. 이제, 진화의 속도를 높여야 할 타이밍이다. 잘만 하면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의 보금자리를.


‘집’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이야기다. 동굴에서 용기있게 박차고 나왔던 ‘그’가 이룬 발전 같지만, 사실은 그로부터 몇 대에 걸친 이야기다. 발전은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 뒤에야 비로소 눈에 보인다.

처음엔 비와 눈, 그리고 강렬한 햇빛을 피할 지붕이 필요했다. 떠받쳐 줄 기둥만 있다면, 어디에서나 지붕을 펼칠 수 있으니까.

곧, 추위와 바람을 막아줄 벽도 필요했다. 바닥과 지붕 사이에 돌을 쌓아 올려 벽을 만들어 나갔다. 바람이 멈췄고, 추위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평온함과 안전함이다. 소리마저도 사라져 적막하다. 나는 그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곧 우리는 그 안에 젖어들었다.

아직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일상을 밝혀줄 빛이 들어올 수 있는 창이 필요했다. 벽에 구멍을 뚫어 빛이 나아갈 수 있는 길을 하나씩 만들어 나갔다. 빛이 사방에서 쏟아져 들어왔다. 어떤 빛은 약하거나 강했다. 혹은 짧거나 길었다. 거칠거나 부드럽기도 했다. 매일 빛이 집 안에 들어왔다가 나가기를 반복하며, 우리는 그 밝음에 익숙해져 갔다. 늘 밖에서 보았던 익숙한 빛이 창을 통해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경이로웠다. 지낼수록 만족스러움이 커져 갔다.

하지만, 계속 머물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들이 있었다. 언제든 자유롭게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문, 다시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문. 그러면서도 안전한 문이 필요했다. 벽에 구멍을 뚫고, 안팎을 넘나들 수 있는 문을 만들어 나갔다. 처음엔 갈대를 엮어, 그 이후엔 좀 더 단단한 나무로. 여기와 저기, 그리고 작게 크게—용도에 맞게. 이로써 원하는 대로, 안과 밖 어디든 머물고 싶은 곳에 있을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되었다. 문을 통해 누군가 오고 갈 수도 있게 되면서, 이웃과의 관계에도 미세한 변화가 찾아왔다.

겨울이 찾아왔다. 벽만으로는 추위를 견뎌낼 수 없을 것 같았다. 따뜻하게 해 줄 온기가 필요했다. 한가운데 마른 장작을 쌓고 불을 피웠다. 따뜻함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그와 동시에 연기가 빠져나갈 구멍이 필요했다. 따뜻하지만, 질식할 것 같았으니까. 지붕 한가운데 굴뚝을 만들었다. 연기는 흰 곡선을 그리며 위를 향해 굴뚝 밖으로 빠져나갔다. 불 옆에 앉아있는 시간이 늘어갔고, 움직이는 빛과 열기에 취하면 좀처럼 불 앞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웠다. 이때부터 불의 매력이 우리를 붙들어 놓았던 게 아닐까. 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이었을 테니까. 밖에서 돌아와 몸을 데우고, 물고기를 굽고, 밤에도 밝음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밤’이라는 시간을 얻게 되었고, 우리는 그 덕분에 지금의 밤을 살고 있다. 그만큼 사색의 시간도 늘어갔다. 인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다가, 어느새 잠에 빠져들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차곡차곡 ‘집’을 만들어 나갔다. 가끔 머릿속으로 이런 시나리오를 그려 돌려보곤 한다. 집의 탄생과 성장의 과정을 계속 더듬어 가다 보면, 좋은 질문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왜 우리에게 집이 필요한지, 어떤 집이 우리에게 좋은지— 창, 문, 벽, 가구, 인테리어에 가려 그 시작과 과정이 평가절하된 ‘집’이라는 건축의 본질을 눈을 감고 다시 그려본다.

집은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상자.

갖가지 일상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집은 포근하고 따뜻한 이불.

사람을 품는 둥지다.

집은 거대한 축음기.

일상의 소리를 담아내는 공연장이다.

집은 나의 모든 것을 담아내는,

또 다른 모습의 나다.


눈을 뜨고 집을 둘러보았다. 어디에서나 볼 법한 74제곱미터의 아파트. 인터넷에서 같은 평수의 아파트를 검색해 보면, 조금씩 크기와 배치만 다를 뿐 기본 평면은 비슷하다. 사람의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이 다르기에, 같은 공간이어도 모든 집은 유니크 하다. 하지만 이곳은 나에게 맞는 집이 아니다. 집에 내 몸을 맞춰 살아야 한다고, 소리 없이 말하고 있는 듯하다. 아파트란 그런 곳이다.

집의 연대기를 여행하며 기능에 감성이 더해진 이야기들이 만들어졌던 것에 비하면, 이곳은 집 자체만으로는 이야기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

만약 현실적인 문제를 배제하고 원하는 집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신은 집이 어떤 모습이기를 바라는가? 집이 그 사람에게 어떤 곳이냐에 따라 정의될 수 있지 않을까? 그에 따라 공간이 계획되고 분위기가 디자인될 테니.

내 삶의 서사를 바탕으로 현재의 일상을 담고,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는 ‘등대’ 같은 공간으로 만들어진 집은 나의 분신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것도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의 분신. 나 자신을 바꿀 수는 없지만, 집은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처럼, 집에도 자기만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제안해 보고 싶다. 나와 집이 주인공인 소설을 써보는 건 어떨까. 모든 사람의 삶은 한 편의 소설과도 같고, 그 삶을 담아내는 집은 소설의 메인 스테이지가 되는 것이다. 어떤 해프닝이 벌어질지, 어떤 순간이 좋을지—아주 디테일하게 이야기를 만들어 가다 보면 집이 나에게 줄 즐거움을 미리 경험하게 될 것이다.


건축 역사책에 그려진 공적인 집의 연대기는 이미 지난 과거의 이야기다. 하지만 과거로의 여행 속에서 만난 그들과 나는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집의 연대기는 끝나지 않았다.

우리가 집에 대해 고민하는 한, 언제까지라도.

지금도 여전히 집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고,

미래에도 계속될 것이다.

내가, 우리가 만들어내는 ‘집’에 대한 소설과 함께,

사적인 집의 연대기 또한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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