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각또각 계단을 오른다.
높이 176cm에 너비 270cm의 단 위에 발을 내딛는다.
다시 같은 높이와 너비의 단을 오른다.
그리고 또 하나 또 하나......
반복적인 움직임으로 계단의 단을 하나씩 차례대로 밟아가다 보면 어느새 6층에서 7층, 7층에서 8층에 다다른다.
마치 몸 안에
이 과정을 이식해 넣듯이
규칙적인 리듬감에
우리는 금세 익숙해지게 된다.
드디어 13층에 도착했다. 이로써 계단이 품고 있는 잠재적 행위를 이뤄낸 셈이다. ‘계단의 존재 이유가 증명되었다’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지만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증명해야만 속이 풀리는 인간인 나의 본성이 계단을 바라보는 동안 투영된 것이다.
계단은 계단이다. 계단일 뿐이다. 필요에 의해 태어난 하나의 도구. 우리는 끊임없이 뭔가를 만들고 만들어진 것을 사용하고 실행하며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수많은 발명과 진화 속에 계단이 있다.
지형이 다양한 리스본과 같은 도시는 온갖 종류의 계단으로 가득 차 있다. 도시에서 멀어질수록 계단의 형태는 좀 더 자연스럽고 거칠고 경계가 모호할 때가 많다. 도시는 겉으로 드러난 모든 땅을 이용하려 하기 때문에 특히 지형의 변화가 다양한 곳엔 계단이 지형을 극복하는 장치가 된다.
오랜 시간 진화의 과정 속에
서서히 만들어져 갔을
계단의 탄생 덕에
우리는 산을 오르는 방식보다
좀 더 쉽게 도시의 지형을 극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계단이 세상에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계기가 되는 어떤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우연과 필연 속에 태어난 계단 위를 걸으며 오늘의 탐험을 이어나간다.
고개를 젖히고 계단을 올려다보았다. 지그재그로 반복되는 선들이 위로 갈수록 점점 작아진다. 거푸집을 설치하고 철근을 배근하고 콘크리트를 부어 한 층 한 층 올려나갔을 과정들을 떠올려보았다. 그 시작이 문득 궁금했다. 계단은 어디에서부터 왔을까? 어느 날 갑자기 뚝딱하고 나타난 도구와 장치는 없을 테니까.
그렇다면 계단이 아직 태어나지 않았던 때를 상상해 보자.
땅은 울퉁불퉁하고, 오르락내리락 지형이 춤을 추고 있다. 깎이거나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산 자락들. 산은 혼자 우뚝 서 있지 않고 평평한 지형과 만나는 경계선이 어디인지 모호하다. 여러 이미지들이 조합되고 나니 지각 변동과 비, 바람에 의해 만들어진 지형으로 가득한 아주 오래된 풍경이 머릿속에 펼쳐졌다.
혈거생활을 거쳐 유목생활을 하던 우리 조상들은 정착 생활을 시작하며 농사짓기에 편한 평지에 자리를 잡고 살아가기 시작했다. 평평함은 땅에 발을 디디고 서는데 안정감을 주기 때문에 힘을 실어 뭔가를 하는데 유리한 지점을 차지했다. 게다가 농사와 식수에 필요한 물이 가까이에 있었다. 강과 평야로 사람들은 모여들었고, 그중 어떤 이들은 상대적으로 비어있는 완만한 산자락과 산비탈로 이동해 정착해 살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나갔다. 비스듬한 땅을 크게 단을 만들어 평평한 땅으로 바꿔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으로 만들었다(지금의 계단식 논이다). 산자락의 경계가 조금씩 사람들의 흔적들로 지워져 갔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생활하며 자연스레 계단과 비슷한 것을 고안해 나갔을 것이다.
자연 속에서 생활하며 건축과 도시에 대한 영감을 축적해 나갔다. 계단에 대한 영감 또한 그곳에서 왔을 것이다. 수렵 채집으로 식량을 조달하기 위해 자연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게 중요했다. 덩굴 식물을 타고 오르거나 나무 표면에 홈을 내어 타고 올라가 열매를 따먹으며 본능적으로 보폭에 맞고 발을 딛기 쉬운 조건과 최적의 경로를 찾으려 했을 것이다. 그곳에 계단에 대한 씨앗이 심어져 있었던 셈이다. 덩굴로 된 밧줄로 외줄 사다리를 만들었던 것이 지금의 사다리의 시초일지도 모른다. 디딤돌을 놓고 높은 곳에 오르던 것이 지금의 계단의 시초일지도 모른다. 어떤 결정적인 순간이 아니라 그런 순간들의 합이 지금의 계단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건물에 계단이 등장한 건 언제였을까?
층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시기의 집을 상상해 보자.
방금 막 결혼한 젊은 커플이 있다. 더도 덜도 말고 그들에게 필요한 면적의 아늑한 집을 마련했다. 낡았지만 뼈대가 튼튼한 1층짜리 벽돌집이다. 어느덧 결혼 생활 5년 차가 되며 아이가 태어났다. 가족이 늘어감에 따라 공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터였다. 아무리 가족이라 해도 한 사람당 필요한 최소 거주 면적이 있는 법이니까.
집 주변에 비어있는 땅으로 공간을 확장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옆으로는 더 나아갈 수 없어 위로 확장할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획기적으로 넓은 집이 될 수 있을 터였다. 1층 면적만큼의 2층이 갑자기 주어지는 것이니까. 그러기 위해선 둘을 연결할 장치가 필요했다. 바로 그 순간 계단이 건축 안으로 들어왔다.
밖에 있던 사다리나 계단보다 좀 더 정교하게 만들어질 필요가 있었다. 벽에 기대어 세워두는 사다리보다 경사도를 낮춰 완만하게 만들었다. 사다리와 디딤돌 사이 어딘가의 형태로 변형해 나갔다. 발 디딤판을 사람의 발 크기에 맞추고 인체의 특성에 맞는 계단의 치수들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난간을 세워 일어날 수 있는 위험들에 대비했다. 공간과 용도에 따라 형태를 바꿔가며 원형, 나선형, 중정형, 정방형으로 변신해 나갔다. 그렇게 조금씩 계단이 태어나고 발전되어 갔다.
계단의 등장으로 2층의 공간을 확보하게 되었고 창을 통해 바라보는 풍경도 달라졌다. 집주인에게는 신세계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이런 바람들이 시스템으로 다듬어지며 건축 구조의 토대가 되었다. 사람들은 더 나아가 꿈을 꾸기 시작했다. 건물을 점점 높게 쌓는 것에 대해. 그리고 기술은 높게 쌓는 것에 포커스를 맞춰 건축 재료와 시공 방식을 발전시켜 나갔다. 이것이 우리를 지금 보는 세상으로 이끌었다.
열두 번의 계단을 반복하며 마침내 1층에서 출발해 13층에 도착했다. 후…… 호흡을 가다듬는다. 계단 오르기를 마치고 이만큼 올라온 게 아깝지만 탐험을 위해 다시 엘리베이터를 탔다. 1층 버튼을 누르고 한 층 한 층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보며 계단으로 걸어 올라왔을 때에 비해 너무 쉽고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단 이후에 나타난 혁명적인 장치가 엘리베이터인 것을 생각하면 비교체감은 당연한 일이다. 밖으로 나와 계단실을 아래에서부터 위까지 눈으로 쭉 훑어보았다. 만약 계단이 없었다면 이 건물은 존재할 수 없을 터였다.
다른 관점에서 계단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다. 계단이 모두에게 편리한 장치는 아닐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획기적인 일이 또 다른 이들에게는 관심 밖이었을 수도 있고, 위험한 일이 되기도 했다. 건물을 높이 쌓아 올려 고층이 되어 갈수록 건축은 ‘공간 약자’들에게 불편해져 갔다. 계단은 편리함을 목적으로 태어났지만 모두에게 적합하지는 않았다. 계단을 오를 수 없는 휠체어는 엘리베이터 없이 위로 올라가지 못한 채 발이 꽁꽁 묶였고, 아무리 낮은 곳이더라도 휠체어 바퀴가 넘지 못하면 경사로 없이 나아갈 수 없었다. 나이가 들면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게 되어 계단은 장애물이 된다.
이런 차별과 불균형을 규제할 법이 필요했다. 그렇게 계단과 난간, 경사로, 엘리베이터에 관한 건축법규가 태어났다. 공간 이동에 있어 최소한의 권리 정도일 것이다. 자유는 여전히 제한적이겠지만.
하지만 더 나은 해결책이 필요하다. 소설 [천 개의 파랑]에서처럼 모든 장애물에 대응할 수 있는 휠체어가 나온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도 아니면 장애가 더 이상 장애가 되지 않게 할 수 있는 의학적 기술이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먼 미래에나 가능한 일이겠지만 계단으로부터 모두가 자유로워져 높이를 넘나드는 일이 즐거웠으면 하고 생각한다.
평평하고 납작한 세계에서
계단이 우리를 끌어올려
수직의 세상에서 맛볼 수 있는
짜릿함을 주었으니
이런 감각이 모두에게 공평하기를
하고 생각한다.
바람을 뒤로하고 다음 계단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로비에 있는 계단을 찾아다녔다. 홀로 존재하는 우아하고 다이내믹한 계단을 보고 싶었다. 층마다 계단이 똑같이 반복되는 곳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들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큰 규모의 건물마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한 끝에 드디어 찾고 있던 계단을 만났다.
안내 데스크 왼쪽에 우아하게 곡선을 그리며 나선형 계단이 서 있었다. 오래된 나무 손잡이의 매끈한 표면에 오른손을 얹고 계단이 이끄는 대로 그 위를 걸었다. 문득 티브이에서 탱고를 처음 배워보는 사람이 강사가 이끄는 대로 온몸을 따라가던 장면이 떠올랐다. 처음엔 어색하던 몸짓이 금세 그럴듯해져 갔다. 춤을 추듯 나선형 계단이 이끄는 대로 몸을 맡겼다. 2층에 도착해 계단을 내려다보니 주름이 시원스럽게 잡힌 드레스 같다.
몸을 돌려 다시 왼손으로 난간에 손을 얹고 1층으로 곡선을 그리며 내려왔다. 나선 방향으로 턴을 하며 계단 스텝을 밟아나갔다. 중력의 방향으로 내려올 때는 속도감까지 더해져 춤에 좀 더 힘이 더해졌다. 몇 번 반복해 오르내리고 싶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그럴 상황은 아니다. 밖으로 나와서도 한동안 그 흥에 맞춰 춤을 추듯 걸었다. 내 몸에 곡선의 움직임과 계단을 오르내리는 리듬감이 남아있었다.
계단의 모양대로
몸을 그곳에 맞춰 걷다 보면
계단과 나란히 안무에 맞춰 춤추는
파트너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왈츠도 탱고도 재즈도 아닌
계단을 닮은 춤을.
잠깐 쉬었다 가볼까?
걸음을 멈추고 놀이터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아 당을 보충했다. 어쩜 저렇게 즐거울까, 생각을 하며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구경했다. 문득 이곳에 사다리와 계단에서 비롯된 놀이기구가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다리, 계단 그리고 그 중간의 형태, 경사로, 그물 계단, 외줄 사다리, 정글짐…… 모두 계단에서 파생된 사촌들이다.
계단 위에서 춤추는 것 같다고 느꼈던 것이 기분 탓이 아니었다. 아이들에게 계단은 놀이 장치가 되고 있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놀이 기구들이 모두 운동 효과를 주고 있다. 다만 그 사실을 모른 채 아이들은 그저 노는 것에 집중할 뿐. 그 점이 중요한지도 모른다. 모르는 게 약이고,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것.
이렇게 어딜 가도 계단들이 넘쳐난다.
아주 우연의 순간, 진화의 방향이 결정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지금 이뤄낸 도시와 건축, 일상의 모습을 볼 때, 계단이 진화의 줄기에 속하지 않을 수 있다는 시나리오는 상상하기 어렵다. 대체 어떤 것이 계단을 대체할 수 있을까? 아주 먼 우주의 끝에 우리와 전혀 다른 존재들이 이뤄낸 풍경을 보면 다른 생각이 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선 계단이 가장 본능적으로 적확한 답으로 느껴진다.
계단은 올라가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내려가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일방통행이 아닌 에너지가 끊임없이 흐르는 곳이다. 힘을 소진할 것 같던 예상과는 다르게 오히려 계단 위에서 힘을 얻었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근력운동이 덤으로 따라오는 탐험이었다. 계단 위에 떠도는 이야기들이 어딘가에서 소곤대고 있겠지만 다음 탐험을 기약한다.
멀리 나오지 않았는데도 세상은 이토록 계단으로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