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장소를 찾아다니는 것을 좋아하지만, 반복해서 찾는 곳들도 있다. 내게는 그중 하나가 남산 소월길이다. 이곳에 서면 다이내믹한 지형 위에 펼쳐진 이태원동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남산 중턱을 따라 이어지는 이 길의 조망을 가능하게 한 것은 고도 제한 덕분이다. 그래서 서울 한복판에서 도시를 근경에서 원경까지 모두 조망할 수 있다. 햇빛과 바람을 맞으며 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생각이 깊어진다. 한 장소를 반복해서 찾는 이유에 특별한 무엇이 필요할까. 그저 이곳에서 사유가 깊어지고 감각이 열린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겨울이던 소월길의 풍경은 봄이 되어 있다. 온 도시가 봄이라는 계절의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은 듯하다. 숨어 있던 세상의 색깔들이 드러나고, 잠깐 지나가는 햇빛에도 찬란하고 반짝이는 풍경에 눈이 부시다. 뺨을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을 맞으며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오늘은 버스를 탐험해볼 참이다.
버스라는 공간을.
버스라는 공간에서 바라본 도시를.
여느 때처럼 402번 버스를 탈 생각이다. 남산 중턱의 도로를 따라 곡선을 그리며 버스가 정류장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버스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는다.
버스는 목적지가 있고, 경로가 정해져 있다. 소월길에서 출발해 한남동을 거쳐 한강을 지나 강남으로 향하는 버스다. 고도 98미터의 소월길에서 출발해 한강 다리를 건너, 고도 15미터의 강남역까지 가는 여정. 남산 중턱에서 한강에 이르는 이 여정이 거의 산 반만큼 내려오는 일이라는 걸 서울 지형도를 보고서야 깨달았다. 한강 주변에서 시작된 마을이 점점 넓어져 남산 소월길 턱밑까지 올라온 것이겠지. 한강을 건넌 이후부터는 약간의 오르내림이 있을 뿐, 비교적 평평하다.
자, 이제 출발. 탐험의 시작이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안경은 깨끗하게 닦였고, 카메라 메모리는 초기화된 상태로 준비 완료다. 미세먼지 수치를 알리는 전광판에는 ‘좋음’이 표시되어 있다. 아침에 창문을 열었을 때 ‘탐험하기 딱 좋은 날이구나’ 싶었는데, 예감이 적중했다. 모든 것이 어긋나 시작부터 탐험을 망치는 날도 있지만, 이처럼 완벽한 날도 있기 마련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엔진의 진동이 발바닥과 의자를 통해 전해져 온다. 버스는 엔진의 동력으로 네 개의 바퀴가 도로 노면을 뒤로 밀며 앞으로 나아간다. 움직이기 위한 엔진과 바퀴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버스의 몸체다.
밖에서 바라보는 버스와 안에서 경험하는 버스는 다르다. 우리가 버스에 타는 순간부터 경험하는 것은 바로 ‘버스라는 하나의 공간’이다. 평일 오후의 느슨한 밀도 덕분에 내부 공간 역시 자연스럽게 인식되기 시작한다. 맨 뒤 좌석에 앉아 버스 내부를 내려다보며, 눈길이 닿는 곳마다 둘러본다. 네 방향의 입면을 따라 창이 길게 이어져 있어, 원하기만 하면 어느 방향으로든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 이곳에서 건축적 장치로서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창’에 있다.
공간적으로는 엔진과 운전석의 위치에 따라 세 부분으로 나뉜다. 엔진이 있는 뒷부분은 바닥이 몇 단 높아져 있어, 앉았을 때 시야가 넓어 공간 전체를 바라보기에 좋다. 운전석은 칸막이로 승객 공간과 구분되어 있으며, 문을 향해 반쯤 열려 있다. 두 개의 문은 각각 입구(앞문)와 출구(뒷문)로 나뉘어 작동한다. 출퇴근처럼 혼잡한 시간대에 효율적으로 승하차할 수 있도록 설계된 구조다.
버스의 핵심 공간은 승객들이 앉는 좌석과 손잡이를 잡고 서 있는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노선에 따라 그 비율이 다른데, 먼 거리를 이동하는 버스일수록 좌석 비중이 크고, 단거리나 출퇴근 전용 노선일수록 서 있는 공간이 더 크다. 이 비율에 따라 공간의 밀도와 느낌이 달라진다.
만약 이곳을 ‘버스가 아닌 공간’으로 상상해보면 한 가지 독특한 특징이 떠오른다. 좌석이 모두 앞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관이나 극장은 스크린이나 무대라는 중심을 마주하므로 그 방향성이 자연스럽지만, 버스는 중심없이 그저 ‘앞으로’ 향해 있다. 우리는 운전자가 아님에도 좌석이 모두 앞을 바라보는 이유는, 움직이는 공간 안에서 ‘후진’이나 ‘역방향’에는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버스는 ‘움직이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두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공간을 공유하는 동안, 우리는 잠시나마 연결되어 있다. 누군가의 통화 내용이 원치 않아도 들려오고, 한 사람의 민폐가 공간 전체의 분위기를 좌우하기도 한다. 다행히 오늘은 그런 민폐 캐릭터가 딱히 보이지 않는다. 모두 제각기 바쁘게, 다양한 모습으로 이 공간에 머물고 있다. 그렇다. 버스는 개인 소유의 승용차와는 다른, 공적인 공간이다.
고개를 돌려 사람들을 둘러본다. 어떤 이는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 게임을 하고 있고, 어떤 이는 업데이트된 소셜 미디어를 산책하듯 훑고 있다. 못다 한 아침잠을 이어 자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실은, 모른 척하면서도 서로에게 관심을 두고 곁눈질로 지켜본다. 밀폐된 공적 공간 안에서 우리는 피해를 주지 않으려 노력하면서도, 서로를 인식하고 직·간접적으로 소통한다. 불특정 다수가 함께하는 이곳은 기본적으로 퍼블릭 스페이스다. 단지 움직이고, 밀폐돼 있고, 각자의 목적지가 있을 뿐. 바로 이 점이 길이나 광장과는 다른 지점이다.
앞을 향해 앉아 있지만, 시선은 자연스럽게 창으로 향한다. 창 밖의 움직이는 풍경이 눈길을 잡아끈다. 실은 우리가 움직이고 있는 것인데도, 풍경이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풍경은 제자리에 그대로 있는데도 말이다.
버스라는 움직이는 공간 안에 앉아 저절로 움직이는 풍경을 바라보는 순간, 아주 특별한 감각이 시작된다.
신호등에서 잠시 멈췄다가 다시 출발하고, 정류장에서 사람들을 내려주고 태운 뒤 다시 출발한다. 반복과 변주가 리듬처럼 오간다. 차의 진동과 속도감에 생각의 주파수가 맞춰진다. 가만히 앉거나 걷고 있을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이 흐른다. 버스의 속도와 함께 움직이는 풍경의 조합이 만들어낸 결과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계속 달라지는 풍경.
끝도 없이 이어지는 풍경의 변주.
생각이 그곳에서 춤을 춘다.
세상의 모든 창 가운데,
가장 다이내믹한 ‘움직이는 창’이다.
밀폐된 동시에 움직이는 공간 안에서, 창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버스 안에 흐르는 동적인 에너지는 바로 그 창으로부터 흘러들어온다.
겨울의 버스를 떠올려보면, 안팎의 온도 차로 인해 유리창에 김이 서려 풍경이 보이지 않아 답답해진다. 문득 오래전 기억이 떠오른다. 이른 아침, 잠든 사람들 틈에서 유리에 뭔가를 그리거나 끄적이던 기억.
가려진 풍경을 드러내고 싶은 충동은, 본래 있어야 할 동적인 에너지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손으로 뿌연 유리를 닦아낼 때마다 갑자기 나타나 휙휙 지나가는 풍경. 그 반전의 느낌이 좋아, 모두가 잠든 버스 안에서도 나는 깨어 있곤 했다.
버스 창을 통해 바라보는 풍경은 그 어떤 공간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함이 있다.
두 발로 도시를 걷다 보면 보지 못하는 고가도로나 다리와 같은 도시의 하부 구조들을 볼 수 있다. 외곽순환도로의 밑이나 강변도로 위의 풍경은 차를 탈 때만 가능한 시점이다. 도로변 건물들의 입면과 도시의 스케일이 버스 높이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기도 한다. 마치 로드무비의 한 장면 같다.
옆 차선을 달리는 자동차 안 사람의 시선과 내 시선이 얼마나 다를지를 상상해 본다. 버스가 달리는 만큼, 풍경도 같이 달린다. 실제로는 버스가 앞으로 나아가고 풍경은 그 자리에 남겨지는 것이지만, 우리의 감각은 그 반대로 인식한다.
그래서인지, 지나쳐온 풍경을 고개 돌려 바라보는 일은 늘 재미있게 느껴진다.
가끔 아무 일 없이 종점까지 갔다 오곤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 자체로 더할 나위 없는 탐험이 된다.
버스는 남산 중턱에서 내려와 한남대로에 접어들고 있다.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남산에서 한강으로 향하고 있으니, 그 높이만큼 시선이 내려온 것이다.
오른쪽 창밖을 바라보니, 남산 1호 터널을 지나 고가도로에서 내려온 차들이 차례차례 한남대로로 합류하고 있다. 여러 방향의 길이 만나는 왕복 10차선의 한남대로. 육교 하나를 건너는 데만도 50미터 가까이 걸린다.
도로 양쪽이 모두 한남동에 속해 있지만,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왼편은 오래전부터 대사관들이 자리 잡고 있는 동네로, 고급 빌라와 카페, 미술관이 들어서 있다. 반면 오른편은 오래된 아파트 단지와 비교적 작은 건물들이 모여 있으며, 이태원 방향으로 오르막을 이루고 있다. 왼쪽과 오른쪽을 번갈아 바라보며, 동네의 스케일과 지형, 특성이 얼마나 다른지 체감한다.
도시를 다양한 높이에서, 움직이는 상태로 바라보기에 402번 버스는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선택이었다.
이제 버스는 한강을 건너기 직전, 코앞에 다다라 있다. 한남대교 진입을 위해 도로는 점점 오르막을 따라 다리를 향한다. 이 순간부터 이미 한남대교는 시작된 셈이다.
보통 다리를 말할 때는 강 바로 위의 구조물만 떠올리지만, 다리와 연결된 도로와 진입부까지 포함해 생각해야 한다. 강북과 강남이라는 땅과 다리 사이의 연결지점들 역시 다리의 일부다.
그 연결고리를 지나, 드디어 땅이 아닌 강의 위, 진짜 한남대교에 우리는 도달했다.
창문을 조금 열어 버스 안에 고인 공기를 내보내고, 한강의 신선한 공기를 들여온다.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는 일이 우리에게 당연한 것처럼, 버스도 공기의 순환이 필요할 테니까.
강 위로 들어서자, 각자 다른 모습으로 앉아 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본다.
한강은 서울에 사는 이들에게 여백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집중하던 일에서 잠깐 눈을 돌릴 만큼의 여백.
세계 도시들을 탐험하며 이토록 넓은 도심 속 강을 본 기억은 거의 없다.
문득, 강에서 불어오는 물 냄새에 바다에서 부는 바람을 떠올리고 싶은 마음이 인다.
바다에서 날아온 갈매기, 하늘 위를 가로지르며 흔적을 남긴 비행운, 햇살에 반짝이는 강물의 표면.
창밖을 바라보며 떠오르는 짧은 문장들, 그 조합만으로도 즐거움은 배가 된다.
버스는 이제 한강을 건너, 올림픽대로 위를 횡단하고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는 차량 행렬을 바라보다 눈의 초점이 흐려진다.
졸음이 살짝 몰려와 창문을 더 열어 바람을 맞는다.
아, 햇빛은 따뜻하고 바람은 상쾌하다.
버스 맨 뒤 좌석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고 있자니,
공간이 전과는 다르게 눈에 들어온다.
이곳을 거쳐간
수많은 사람들과 에피소드들이
겹겹이 쌓여 있겠지.
그렇다면 이곳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특별한 장소성을 가진 곳이다.
이제 버스는 한강 남단의 고가 도로를 내려와 강남 대로에 합류한다.
전형적인 강남의 도시 풍경 속으로 우리는 들어가고 있다.
평평한 길을 따라가다 보니, 문득 강남역 뉴욕제과 앞에서 했던 수많은 약속들이 떠오른다.
이제는 이곳에 올 일이 거의 없지만,
오랜만에 교보문고에서 책을 읽다 가는 것도 좋겠다.
정차 버튼을 누르고, 교통카드를 찍은 뒤 버스에서 내린다.
짧은 시간 동안 함께했던 모두와 무심한 작별을 나눈다.
걷지 않고 의자에 앉아,
버스의 안과 밖을 탐험했다.
남산 소월길에서 멈춘 발걸음은
버스를 타고 공간을 이동해,
강남역 정류장에서 다시 이어지고 있다.
평범하게, 여느 때처럼 버스를 타고 내렸을 뿐이지만,
탐험은 결국 장소와 풍경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느냐에 달린 것이다.
버스 안팎의 경계를 넘나들며
한 편의 영화를 보듯
움직이는 풍경을 감상한다.
저절로 나아가는 걸음을 걷는다.
버스라는 공간의 특별한 분위기에 취해
잠시 낯선 곳을 탐험한 듯 새롭다.
문득, 탐험할 장소가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면
버스를 타야겠다.
그곳에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흘러가는 풍경을 바라본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