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귀리 Apr 19. 2022

버스 안의 세계

반복해서 찾게 되는 장소들이 있다. 나는 종종 남산 소월 길을 향한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겨울이었던 소월 길의 풍경이 봄이 되어 있다. 온 도시가 봄이라는 계절의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은 듯하다. 숨어있던 세상의 색깔들이 드러나 잠깐 지나가는 햇빛에도 찬란함과 반짝임에 눈이 부시다. 뺨을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을 맞으며 잠시 길을 따라 걷다가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오늘은 버스를 탐험해 볼 참이다.

버스라는 공간을.

버스라는 공간에서 바라본 도시를.


여느 때처럼 402번 버스를 탈 것이다. 남산 중턱의 도로를 따라 버스가 곡선을 그리며 정류장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문이 열리고 버스에 올라타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버스는 기본적으로 목적지가 있고 경로가 정해져 있다. 이제 한강의 남쪽, 강남을 향해 갈 것이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버스를 탔을 때 안경에 서린 김이 빠지길 기다려야 했는데 지금은 시야가 탁 트여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하고, 안경은 잘 닦여져 있고, 카메라 메모리는 초기화해 준비 완료된 상태고, 미세먼지 수치를 알려주는 전광판은 좋음을 가리키고 있다. 오늘 아침 창문을 열어보고 탐험하기 더할 나위 없는 날이다 싶었는데 예감은 적중했다. 모든 것이 어긋나 시작부터 탐험을 망치는 날도 있지만 이처럼 완벽한 날도 있기 마련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엔진의 진동이 발바닥과 의자에서부터 전해져 왔다. 버스는 엔진을 동력으로 네 개의 바퀴가 도로 노면을 뒤로 밀며 앞으로 나아가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움직이는 기능을 위한 엔진과 바퀴를 제외하면 그 나머지는 버스의 몸체다. 밖에서 바라보는 것과 안에서 경험하는 버스는 다르다. 우리가 버스에 타면서부터 경험하게 되는 것은 버스라는 하나의 공간인 셈이다. 평일 오후의 느슨한 밀도 덕에 버스 내부 역시 공간이라는 인식이 머릿속에서 자연스레 피어나고 있는 중이다.

맨 뒤 좌석에 앉아 공간 전체를 내려다보며 눈길이 닿는 모든 곳을 둘러보았다. 네 개의 입면을 따라 창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원하기만 하면 모든 방향의 풍경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건축 장치로서 가장 큰 매력은 창에 있다.

공간적으로는 엔진의 위치와 운전석에 의해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엔진이 위치한 차체의 뒤쪽 바닥은 몇 단 올라가 있어 의자에 앉았을 때의 시선이 높아 공간 전체를 바라보기에 가장 좋은 위치다. 운전석은 칸막이로 승객들의 공간과 구분되어 있으며 문을 향해 반쯤 열려 있다. 두 개의 문은 서로 다른 목적으로 작동된다. 앞 문이 입구, 뒤 문이 출구다. 출퇴근과 같은 피크 시간대에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위함이다. 버스의 가장 핵심적인 공간은 승객들이 앉는 좌석과 손잡이를 잡고 서 있는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노선에 따라 다른 유형의 배치를 발견할 수 있는데, 먼 거리를 이동할수록 좌석의 비율이 크고, 출퇴근 시간에 몰리는 노선일수록 서 있는 공간의 비율이 크다. 그 비율에 따라 공간의 느낌은 달라진다.

이곳이 버스가 아닌 공간이라고 생각해 봤을 때 조금 독특한 특징이 있다. 오로지 앞을 향해있는 좌석들. 영화관이나 극장은 스크린과 무대라는 공간을 마주 보고 있기 때문에 그 방향성이 타당하지만, 버스는 중심이 되는 공간 없이 그저 한 방향, 앞을 향해 있다. 운전하는 주체가 아님에도 모든 의자가 앞을 향해 있는 이유는 움직이는 공간 안에서 우리가 전진이 아닌 후진, 역방향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움직이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같은 방향을 보고 함께 공간을 공유하는 만큼 우리는 차 안에 있는 동안에는 잠시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누군가 통화하는 내용이 원치 않아도 공유되고, 어떤 이의 민폐가 공간 안에 있는 사람들의 하루를 좌우하기도 한다. 이곳에는 지금 민폐 캐릭터가 딱히 없다. 모두 제각기 바빠 다양한 모습으로 이곳에 함께 있을 뿐이다. 그렇다. 버스는 개인 소유의 승용차와는 다른 공적인 공간인 것이다.


고개를 돌려 창 밖의 움직이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앞을 향하고 있는 배치일지라도 창은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창이 아닌 창을 포함한 차가 움직이는 것이지만 풍경이 움직이는 것처럼 인식되는 것이다. 풍경은 그 자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의 주파수가 차의 진동과 리듬에 맞춰져 가만히 서 있거나 걸을 때, 앉아 있을 때와는 다르게 흘러간다. 버스의 속도감에 저절로 움직이는 풍경의 조합이 만들어낸 결과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계속 달라지는 풍경을 눈에 담고 또 담는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풍경의 변주가 이어지고 있다.

세상의 모든 창 가운데
가장 다이내믹한 ‘움직이는 창’이다.


밀폐된 동시에 움직이는 공간에서 창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버스 안에 흐르는 동적인 에너지가 창으로부터 흘러 들어오기 때문이다. 겨울의 버스 안을 생각해 보면, 버스 안과 밖의 온도 차이에 유리 창이 모두 안갯속에 싸여있는 듯 김이 서려 풍경이 보이지 않아 답답하다.

문득 이른 아침 잠든 사람들 틈에서 버스 유리에 뭔가를 그리거나 끄적이던 기억이 떠올랐다. 가려진 풍경을 드러내고 싶은 충동은 이 공간이 본래 갖고 있는 동적인 에너지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손으로 뿌연 유리창을 지우면 사라졌던 풍경들이 눈앞에서 갑자기 나타나 휙휙 지나갔다. 그 반전의 느낌이 좋아 모두가 잠든 버스 안에서 깨어있곤 했다.


버스 창을 통해 바라보는 풍경은 어떤 공간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함이 있다. 두 발로 걸으며 도심 산책을 할 때는 볼 수 없는 고가도로나 다리와 같은 도시 하부 구조들의 감춰진 부분들을 볼 수 있다. 외곽 순환도로의 밑이나 강변도로 위는 차를 타고 있을 때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도로변 건물들의 입면과 도시의 풍경을 버스 높이에서 파노라마처럼 볼 수도 있다. 이럴 땐 마치 로드무비의 한 장면 같기도 하다. 바로 옆을 달리는 자동차를 내려다보며 그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의 시선과 나의 시선을 통해 보이는 풍경이 얼마나 다를지 상상해 보면서 이곳에서 즐길 수 있는 풍경들을 즐기기로 한다.

버스가 달리는 만큼, 풍경도 같이 달린다. 실제로 버스는 앞으로 나아가고 풍경은 그 자리에 남겨질 뿐인데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두고 온 풍경을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일이 어째선지 늘 재미있게 느껴진다.

그래서 가끔은 아무 일없이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갔다 오곤 한다. 더할 나위 없는 탐험이 된다.


다시 고개를 돌려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누군가는 의자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스마트폰 게임을 하고, 누군가는 업데이트된 소셜 미디어를 앉아서 산책하고 있다. 못다 한 아침잠을 이어서 자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서로를 모른 척하면서도 관심을 갖고 곁눈질로 지켜본다는 것이다. 공적이지만 밀폐된 공간으로 인해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노력하고, 그러면서도 서로를 인식하며 직 간접적으로 소통하기도 한다.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버스는 기본적으로 퍼블릭 스페이스다. 다만 움직이는, 밀폐된, 각자의 목적지가 있을 뿐이다. 바로 이 특성이 길이나 광장과 차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멍하니 사람들을 관찰하는 동안 주의를 끌지 못한 채 창 밖 풍경은 홀로 쓸쓸히 지나쳐 가고 있다.

그래, 창 밖의 풍경을 감상해 보자. 버스는 남산 중턱에서 내려와 한남대로에 접어들고 있다.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이 점점 내려가고 있다. 남산에서 한강으로 향하고 있으니 그 높이만큼의 시선이 내려온 것이다. 오른쪽 창 밖을 바라보니 남산 1호 터널을 지나 고가도로를 타고 내려온 차들이 조금씩 차이를 줄이며 차례차례 한남대로에 합류하고 있다.

여러 방향의 길이 만나는 왕복 10차선의 한남대로는 육교로 횡단하는 데만 50미터 가까이 걸어야 된다. 그래서 도로 양 쪽이 한남동에 같이 묶여 있어도 분위기는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왼 편은 오래전부터 대사관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동네로 고급 빌라 단지와 카페, 미술관이 들어서 있다. 오른편은 오래된 아파트 단지와 상대적으로 작은 건물들이 길가에 줄지어 서 있고 이태원 방향으로 오르막 지형을 이루고 있는 동네다. 오른쪽과 왼쪽을 번갈아 바라보며 동네의 스케일과 지형, 특성이 전혀 다름을 체감한다.


도시를 다양한 높이에서, 움직이는 상태로 바라보는 경험을 하기에 402번 버스는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었다. 이제 버스는 한강을 건너기 바로 직전, 코 앞에 와 있다. 한남대교 진입을 위한 도로는 한남대로로부터 갈라져 점점 다리를 향해 오르고 있다. 이미 한남대교의 시작이나 다름없다. 강 위에 놓인 다리를 말할 때 보통은 강 바로 위에 놓인 부분만을 말하지만 다리와 관련된 주변 공간들도 다리의 일부라고 하는 게 맞다. 강북과 강남이라는 땅과 다리 사이를 연결하는 부분까지도 말이다. 그 연결고리를 지나 이제 드디어 땅이 아닌 강의 위, 진짜 한남대교에 나는 우리는 있다. 창을 조금 열어 버스에 고인 공기를 내보내고 한강의 신선한 공기를 버스로 들여왔다.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는 일이 우리에게 당연한 것처럼 버스도 공기의 순환이 필요할 테니까.

한강 바로 위에 들어서니 모두 다른 모습으로 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 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한강은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여백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집중하고 있던 것에서 눈을 돌릴 만큼의 잠깐의 여백 같은. 세계의 도시들을 탐험하며 한강만큼 넓은 도심 속 강을 본 적이 없다. 문득 강으로부터 흘러 들어온 물 냄새가 바다에서 불어오는 듯 착각하고 싶은 마음이 작동하고 있다. 바다로부터 날아온 갈매기, 하늘 위에 길게 흔적을 남기고 간 비행운, 강물 위의 반짝임. 눈으로 바라보는 동시에 머릿속으로 짧은 문장들을 떠올려보니 즐거움이 배가 되는 듯하다.


이제 버스는 한강의 끝에 다다라 올림픽 도로 위를 횡단하고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는 차들을 바라보다 눈에 초점이 흐려졌다. 졸음이 살짝 몰려와 창문을 조금 더 열어 바람을 맞았다. 아, 햇빛은 따뜻하고 바람은 상쾌하구나.

버스 맨 뒤 좌석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고 있자니 버스의 공간들이 하나씩 다르게 눈으로 들어왔다.


이곳을 거쳐간
수많은 사람들과 에피소드들이
겹겹이 쌓여있겠지.
그렇다면 이곳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특별한 장소성을 가진 곳이다.


이제 한강 남단의 고가 도로에서 내려와 강남 대로에 합류하며 전형적인 강남의 도시 풍경 속으로 나는 우리는 들어가고 있다. 문득 강남역 뉴욕제과 앞에서 했던 수많은 약속들이 떠올랐다. 이제는 이곳에 올 일이 거의 없다. 뭐 그렇다면 교보 문고에서 책을 읽다 가는 것도 좋겠지. 정차 버튼을 누르고 교통 카드를 찍고 버스에서 내린다. 짧은 시간 동안 함께 했던 모두와 무심한 작별을 한다.


남산 소월 길에서 멈춘 발걸음은

버스로 공간 이동을 해

강남 역 버스 정류장에서 다시 이어지고 있었다.


버스가 달리는 만큼, 풍경도 같이 달리네._ BGM # You’re so very far away | Clem Leek
이전 06화 움직임은 살아있음을 증명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