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움직임의 세계 속으로
하얀 벚꽃이 활짝 피어있는 풍경을 보고 있다.
만개한 꽃이 바람과 햇빛 속에서 춤을 춘다.
오, 찬란하다.
광합성으로 저장해 두었던 에너지를
꽃을 피우는데 모두 소진하고
열매를 맺을 준비를 하며 다시 햇빛을 쬐고 있다.
오오오, 풍요롭다.
어라? 그런데 지금 왜 벚꽃이 피어있지?
분명 가을이 시작되고 있었는데……
감탄과 동시에 의심이 싹튼 순간 꿈의 세계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꿈은 봄의 생동감으로 가득 찼지만 역설적이게도 잠은 고요했다.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침대에 똑바로 누워 있다. 아, 꿈이었다. 그래, 지금은 가을 아침이로군. 눈을 감고 잠에서 빠져나오기를 기다렸다. 때마침 알람이 침대 사이드 테이블을 울려대고 있다. 진동을 동반한 알람소리에 5초 만에 알람해제 버튼을 누르고 침대에서 벗어나 창가로 향했다. 좋은 꿈이다. 꿈을 조금씩 곱씹어보며 아파트 공사 현장을 내려다보았다. 어떤 작업을 진행 중인지 루틴처럼 공정을 확인하곤 한다. 매일매일의 변화의 기척은 느끼지 못하더라도 세상은 아주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공사현장만큼 그 변화를 잘 알 수 있는 장소도 없다. 기본적으로 공정표에 따라 현장이 돌아가기 때문에 단계를 밟아나가며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콘크리트 덩어리 같던 건물이 어느새 집의 형태로 변모되어 가고 있다. 아, 그런데 꿈이 뭔가를 상징하는 걸까? 오늘 하루종일 꿈의 암시를 추측해보고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현장의 모습을 보다가 문득 세상이 정지되었던 팬데믹 시기의 거리 풍경이 떠올랐다. 그때와는 너무 달라진 지금. 이런, 어느새 또 잊고 있었다. 가까운 과거도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우리는 망각의 동물인 게 틀림없다.
모든 흔적이 지워진 듯 도시는 움직임을 멈춘 듯하다. 택배 차가 몇 번 왔다간 것을 제외하면 길거리에 아무도 없다. 눈을 감았다 뜨면, 모퉁이를 돌면 누군가 나타날 법도 한데 정말 아무도 없다. 현실인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무음 상태의 골목길에 내 발자국 소리가 유난히 선명하게 울려 퍼져 오히려 그 기묘한 상황을 부채질하고 있다. 거기에 미세먼지로 멀리 인왕산의 풍경도 흐릿하기까지 해 분위기가 정말 다크 하다. 여러모로 감염된 도시 속을 걷다 보니 마스크 안에서 들숨과 날숨의 리듬이 불규칙해진다. 숨이 차고 얼굴이 끈적거린다. 불쾌함, 답답함, 두려움. 안 좋은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마음속을 휘져었다. 디스토피아를 그린 영화의 한 장면이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걸까? 훨씬 더 미래의 일이라 생각했었는데 우리가 벌써 그곳에 와 있나 보다. 어쩌다 운이 없어 만난 것이 아닌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다.
병 그 자체보다 두려움과 충격이 우리를 강타했을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몸을 웅크리고 살았다. 그래서일 지도 모르겠다.
폐쇄와 멈춤 뒤의 움직임에서
그 어느 때보다
나는 자유를 느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으로 움직이는 것들을 쫓고 몸을 움직이며 탐험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움직임에 관한 탐험이다.
소설 [어둠의 속도]에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앓고 있는 주인공이 의사와 면담하는 장면이 있다. 몸을 앞뒤로 흔들고 있는 그는 방금 전 책 표지에 비친 빛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자 몸을 흔들어 빛을 찾아내려 하고 있다. 몸을 움직이자 빛이 다시 반짝인다. 그 행동을 반복하며 주인공은 즐거웠고, 의사는 부정적인 문장을 보고서에 덧붙였다. 빛의 움직임은 우리 눈으로 관찰할 수도 있고 직접 몸을 움직여 찾아낼 수도 있을 테니까.
그래. 움직임을 탐험할 수 있는 장소를 직접 찾아보는 것도 좋겠지. 음…… 가장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본다면…… 그건 사람의 몸속이 아닐까? 직접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어렴풋이 감지할 수는 있다. 시선을 내 몸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몸 안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에 귀 기울였다.
물이 꿀렁꿀렁 내려간다.
지끈지끈 통증들이 비명을 지른다.
근질근질 자리를 바꿔가며 가렵다.
움직일 때마다 뚝뚝 관절에서 소리가 난다.
쿵쿵 심장에서 박동이 느껴진다.
맥박이 미세하게 팔딱거린다.
소름 돋은 살갗과 솜털에서 긴장감이 배어 나온다.
원인 모를 작은 경련이 일어나고 있다.
세포가 생성 소멸되고 물과 음식물이 에너지로 바뀌고 다시 소비되는 끝없는 순환이 일어나는 몸은 하나의 살아있는 공간이다. 그 움직임이 우리를 살아있게 한다. 그리고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멈추게 되면 그 상태가 죽음으로 이어지게 된다.
최근에 몸 이곳저곳에서 찌릿찌릿 저림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위험의 알림이 진동을 보내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을 발견한 시점에 건강과 운동에 대한 지식들을 속성으로 습득해 나갔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하던 중에 맨발 걷기를 시작했다. 처음 땅 위에 발을 내디뎠던 순간을 기억한다. 땅 밑에서 발을 타고 올라오는 시원한 기운, 작은 돌을 밟을 때의 따끔거리는 자극, 마르고 바스러진 잎의 포근함, 잘 다져진 흙의 부드러운 촉감.
‘마침내 땅과 연결되었다.’
이 문장이 떠올랐다.
지구의 일부가 된 느낌.
뭔가를 잃어버렸다가 되찾은 것처럼
마음에 평온이 깃들었다.
한참을 땅을 보며 걷는 행위에 집중하다 보니 몸에 열이 나고 땀이 맺혔다. 몸 안에서 정체되어 있던 흐름이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한 걸까?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몸 안에서 끊임없이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확실히 알 것 같다. 만약 신발 없이 맨발로 흙을 밟으며 살아가도록 진화되었다면 삶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우리는 좀 더 몸에 귀 기울이며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도시는 그에 맞는 재료와 디자인으로 설계되어 지금과는 다른 풍경이었을 것이다. 우리 몸에 닿는 면적이 넓어졌을 테고 재료를 선택함에 신중했을 것이다. 아쉽지만 그렇다고 진화를 되돌릴 수는 없다. 나는 그저 좀 더 ‘자연’스럽게 살고 싶을 뿐이다.
세상은 의식하지 못하는 곳에서조차 움직임으로 가득 차있다. 멈춰있던 세계 뒤에 비로소 움직임의 가치를 깨닫는다.
02. 공간 속에서 움직이다
팔과 다리에 힘을 빼고 몸을 움직여본다. 우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행동 패턴을 살펴보는 것도 좋겠다. 가늠하기 쉽게 가로 2미터에 세로 1.65미터의 공간을 떠올려보자. 1 평에 해당되는 면적이다. 이곳에서 어떤 행위를 할 수 있을까? 눕거나 앉거나 서 있을 수 있고, 책을 읽고 가벼운 스트레칭을 할 수 있다. 벽에 기대고 바닥에 눕거나 서서 근력 운동을 할 수도 있고 춤을 출 수도 있다. 가구없이 공간만 비어있다면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볼 수 있지만 오래 있을만한 공간은 아니다.
그럼 이제 좀 더 크기를 넓혀 작은 방을 떠올려보자.
가로 2.7미터, 세로 3.3미터의 공간.
책장과 책상으로 배치된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있다. 가끔 스트레칭을 하다가 일어나서 방을 서성이며 생각에 잠긴다. 문득 재미있는 문장이 떠올랐다.
침대와 암체어가 놓인 침실에서 자기 전에 소설책을 읽고 있다. 어떤 책을 읽느냐에 따라 꿈의 내용이 달라지곤 한다. 오늘은 SF소설을 읽다가 우주로 떠나볼 생각이다.
식재료의 보관을 위해 만든 팬트리에서 요리를 하기 전 준비를 하고 있다. 시들어가는 채소들을 꺼내 계획에 없는 반찬을 만들어도 좋을 듯하다.
옷을 보관하기 위해 만든 드레스룸에서 셔츠와 스커트를 골라 입고 귀걸이를 한 다음 스카프로 외출준비를 마쳤다. 날씨를 확인해 보다가 재킷하나를 꺼내 팔에 걸쳤다.
벽 전체에 스크린을 설치한 방이다. 좋아하는 영화를 열 번째 보는 중이다. 같은 장면에서 울고 또 웃고 있다. 내가 여전하다고 위로를 하기 위해 하는 루틴일지도 모르겠다.
작지만 이곳에서 새로운 세계를 만든다. 우리는 공간에 맞춰서 행동 범위와 패턴을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다.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섬처럼 독립적이었던 방이 모두 연결되어 집으로 공간이 확장되었다. 그럼으로써 행동 방식이 좀 더 다양해졌다. 그리고 ‘나’는 ‘우리’가 되었다.
샤워를 하고 세탁기를 돌린 뒤 나는 우리는 요리를 시작했다. 사과와 바나나, 무화과를 먹은 뒤 오늘 점심 메뉴로 가지와 버섯을 넣은 샌드위치를 준비했다. 원두 두 가지를 섞어 커피를 내리고 식탁을 차렸다.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한 편을 틀어놓고 브런치를 즐겼다.
식탁을 정리하고 소파에 앉아 남은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창밖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공간을 훑고 지나갔다. 창가로 다가가 산을 바라보니 숲 사이사이에 갈색으로 물든 점들이 보이는 듯하다. 마음속에서 가을을 이미 받아들였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방에서 집으로 공간이 확장되며 정적이었던 움직임들이 좀 더 다이내믹해졌다. 혼자가 아닌 둘의 움직임이 교차되어 집안의 공기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냄새, 소리, 맛, 색, 촉감…… 잠들어있던 감각도 깨어나고 있었다.
03. 도시 속에서 움직이다
이제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볼까? 한정된 공간에 머무는 대신 길 위를 걸어보는 거다. 우리를 구속하는 공간적 제약이 줄어들면서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는 확률이 더 높아질 테니까.
눈앞에 무엇이 보이는가?
도로 위에 점멸하는 신호등 불빛이 낮이지만 다소 어두운 톤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초록불을 기다리는 동안 자동차 엔진 소리가 귀를 사로잡았다. 움직임을 극대화해 만든 기계가 엔진이다. 더 빠르게 더 멀리 어디든 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신호가 바뀌며 버스와 차들이 바로 옆을 스쳐 지나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제까지의 움직임에 비해 속도가 빨라졌다.
하천을 건너는 중이다. 며칠 동안 내린 비에 물의 양이 많아져 다리를 건널 때 느꼈던 평소의 소리와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충분한 햇빛과 비 때문인지 물가의 풀들이 야생의 모습처럼 서로 뒤엉켜 흔들거리고 있다. 움직임이라는 게 우리에겐 의식적인 일이지만 자연은 좀 더 자유롭고 유연한 것 같다. 뭐든 당연한 것은 없다는 듯이 자연스럽다. 매콤한 풀 냄새가 바람을 타고 와 후각을 자극했다.
산책로를 따라 걷는데 야생화들 사이에 바람개비가 돌아가고 있다. 바람에 의해 움직임이 시각화되는 장면이다. 바람개비는 그걸 보기 위해 만들어진 오브제다. 바람을 맞으며 나란히 서서 같이 움직여볼까 상상을 해보다가 웃음이 나왔다.
바람을 즐기며 걷고 있는데 어딘가에서 경보음이 울려대고 있었다. 센서가 오작동한 것일까? 한참을 울려대고 있다. 센서가 작동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움직임이 포착되면 곧바로 소리로 알림이 울리는 원리다. 움직임을 쫓는 것이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니 왠지 센서에 감정이입이 된다.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보슬비로 바뀌었다. 작게 나온 처마 밑에 서서 기다리는데 방금 전에 보았던 풍경과 전혀 다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비’야말로 움직임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빗방울이 바닥에 튕기며 흙냄새가 공기 중에 섞였다.
움직임은 우리가 보고 듣고 냄새를 맡고 손으로 만져보는 감각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감지됐다.
광장 시장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서울역 버스 환승센터에 내렸다. 수많은 움직임이 교차하는 곳이다. 갈 때마다 늘 헤매게 되는데 버스 선택 장애가 일어나곤 한다. 사람들에게 편의를 주기 위해 버스를 한 곳에 모아 장소를 만들었는데 나는 이곳에만 오면 늘 정신이 없다. 유럽과 비교해 보면 버스도 사람도 너무 많다. 지금 이 순간 이곳에 함께 머물고 있는 사람과 자동차만 해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얼마나 거대한 지 움직임이 교차하는 환승 정거장에서 새삼 깨닫는다.
버스에서 내려 광장 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물건을 파는 자와 사는 자가 교차하는 곳이 시장이다. 동선이 명확한 마트와 비교해 보면 이곳은 그 둘의 움직임이 섞여있다. 입구에 들어서자 기름에 뭔가를 굽는 냄새와 매콤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냄새와 소리, 비주얼까지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종류의 움직임들이 포착된다. 음식을 만들고 서빙하는 주방과 좌석이 밀접하게 붙어있어 일시적인 관계지만 친밀감이 형성된다. 맛이 어떤지 재료가 무엇인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괜한 넋두리까지 주고받는다. 푸드코트 같은 곳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분위기가 이곳에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건 친밀한 거리감으로부터 나온다. 그래서일까? 혼자 있고 싶다가도 문득 재래시장에 오고 싶을 때가 있다. 그 시끌벅적함이 가끔 그립다.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문장이 떠올랐다.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인간을 이 두 가지 공간의 어느 한쪽에 가두어 버릴 때, 그는 살 수 없다.”
어쩌면 나는 그 균형점을 찾기 위해 집과 길, 하천을 거쳐 환승센터와 시장과 광장을 오가는 탐험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도 아니면 멈춰있던 세계에서 움직이는 세계로 탈출해 자유를 만끽하고 싶어 핑계 삼아 나왔을지도.
04. 움직임을 관찰하는 사람들
내가 주체가 되어 움직임을 경험할 수도 있지만 관찰자가 되어 움직임을 지켜볼 수도 있다. 그들은 사람들의 행동에 집중하고 패턴을 읽어낸다.
인류학자들은 인간을 이해하고 싶어 한다. 우리는 왜 이런 행동을 할까? 감옥의 중앙에서 죄수들을 감시하는 교도관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위험을 대비하고 있다. 중앙감시실에서 리더는 컨트롤타워가 되어 사건 전체를 보며 일을 해결하고자 한다. 통찰의 시선이 없다면 한 번의 결정이 일을 그르치고 만다. 새들의 이동경로와 서식지를 관찰하는 조류학자는 자연이 제대로 순환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 디자이너들은 좀 더 편한 의자를 만들고 싶고 쾌적한 도시를 만들고 싶다. 움직임 속에서 리듬을 찾아내 새로운 음악을 만들고 싶어 하는 뮤지션도 있다. 감각을 자극하는 움직임을 교차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싶어 하는 설치 미술가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관찰자들을 압도하는 사람이 안무가가 아닐까 싶다. 움직임을 관찰하고 몸을 연구해 포즈와 동작을 만들고 이야기에 맞춰 춤을 완성해 가는 그들이야말로 움직임의 언어를 창조하는 사람들이다.
움직임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분명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그 방향성은 각자의 생각에 따라 정해진다.
05. 보이지 않더라도
사람들을 관찰하며 길을 걸었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사람, 큰 목소리로 전화통화를 하는 사람, 문자를 보내는 사람, 메일을 확인하는 사람…… 눈앞에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 그곳에 있었다…… 발아래, 머리 위, 벽 너머, 도로 밑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빈 허공…… 공간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머릿속에 자리를 만들었다. 그곳에 감지되는 보이지 않는 움직임들이 눈에 보이는 것보다도 더 강하고 다이내믹할 지도 모르겠다.
우리를 둘러싸고
물이 흐른다.
전기가 흐른다.
가스가 흐른다.
전파 신호가 흐른다.
사람들의 은밀하고 사적인 대화와 기록들이 떠다닌다. 수많은 목소리가 담긴 전화 통화, 의미를 담은 문자와 이미지가 오고 간다. 라디오 디제이가 전하는 사연과 음악이 허공에서 서로 스쳐 지나간다. 얼굴을 맞대고 만나는 대신 우리의 목소리와 글, 마음과 생각이 전파와 전류를 타고 바람을 타고 서로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유리병 안에 종이를 접어 넣어 강물 위에 띄워 보내는 낭만은 없지만 우리는 보이지 않게 서로 연결되고 있다.
노란색 파이프 안에 가스가 흐른다. 집을 따뜻하게 데우고 요리를 위한 연료를 내어 준다. 가스 없는 세상도 있었겠지만, 없는 세상은 상상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전류가 땅 속과 허공을 가르며 전선을 타고 흐르다가 마침내 벽 속에 도착했다. 전기가 콘센트를 통해 쭉 뻗어나가 냉장고와 전자레인지를 돌아가게 하고, 전등의 불빛이 집구석구석을 밝힌다.
미로처럼 복잡하게 도시를 훑고 지나가는 전선과 케이블, 파이프. 서로 중첩되어 무질서해 보이는 그 네트워크가 도시 전체를 하나로 연결하고 있다. 일상을 지탱해 주는 동력이 모두 그곳에 달려있어 자칫 시스템이 붕괴되면 리스크가 커지게 된다. 아무것도 연결되지 않았던 때보다 비교도 안 될 만큼 편리해졌지만 그만큼 통제의 양면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더 이상 멀어질 수 없고 우리는 그 편리함을 누리며 오늘의 일상을 보낸다.
멀리 뒤로 물러나 바라보면 눈에 보이던 에너지의 근원들이 점점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변해 가상의 선으로 바뀐다. 그 선을 따라 흐르는 움직임으로 세상이 연결된다.
문득 잊고 있던 꿈이 떠올라 ‘꽃이 만개하는 꿈’을 검색했더니 운이 트이는 꿈이란다. 미래의 일은 알 수 없지만 그저 몇 단어를 입력해 얻어낸 글이 오늘 하루의 기분을 한층 더 끌어올렸다.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방금 피어나기 시작한 꽃처럼
새롭게 만들어지는 세계가
이곳에 있다.
바로
움직임이 이끄는 세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