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드디어 3년 남짓 대기한 세브란스 천근아 교수님 진료를 봤다.
이미 중증자폐로 장애등록까지 했지만, 이 분야 최고 명의 중인 한분께 진료를 받는 거다 보니 이래저래 생각도 많았고, 여기서 이야기가 나오면 약을 먹여야지 했는데... 의견도 묻지 않고 약을 먹이라고 하는 상황이 되었다.
평소 정신과 진료는 잘 보는 편이라 걱정 없이 갔는데, 거의 2시간에 가까운 대기 시간과 소아과 병동 특유의 분위기에 압도당한 여름이가 시름시름하더니 결국 진료실 들어가자마자 울기 시작해서 진료 마칠 때까지 울었다.
서로 대화 나누기도 어려울 만큼 울었고, 말도 마지막 인사 말고는 하지 않았다. 우리가 백번 말해봐야 아이가 보여주는 행동은 나가고 싶어서 악쓰며 우는 텐트럼뿐이니 결국 전형적인 자폐라는 말을 듣고 리스페돈 처방을 받았다.
진료실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다는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씁쓸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마지막에 나가라는 말을 듣자 딱 울음 그치고 또박또박 "안녕히 계세요" 인사를 하는데 어찌나 기가차던지... 의사 선생님 말이 틀린 게 없네.
양부대와 다른 병원에서 의사들은 ADHD로 진단을 내렸었고, 처음으로 전형적인 자폐라는 말을 들었지만, 보여준 모습이 그러하니 부정할 수도 없고, 처방받은 대로 약을 먹이기 시작했다.
투약 초기에 용량 맞추느라 살짝 각성이 더 오르기도 했고, 소변을 지리는 부작용도 잠시 있었지만, 드디어 잠을 잘 자기 시작했다.
저녁식사 후 약을 먹으면 8시쯤 되면 잠이 드는데, 무슨 마술 같은 기분이 들었다. 최소 10시 그전에 잠들면 새벽에 깨고 못 자기를 반복했던 아이가 8시에 자서 7시면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입면에 걸리는 시간은 10분도 안 되는... 매일 한두 시간 이상을 재우는데 보냈던 날들이 스쳐갔다. 용량을 올리면서 조금씩 변동은 있었지만, 약 복용 후 1년가량 지난 지금까지 8시 반 전후 자서 7시 전후 기상으로 유지되고 있다. 물론 계절이 바뀌거나 환경이 바뀌면 기가 막히게 몸이 반응해서 새벽에 깨지만, 예전처럼 완전 기상이 아닌 잠시 깼다 자는 편이라 정말 다행이다,
늘 약을 주면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잠이 잘 오는 약"이라고 말해주었는데, 늦게 주면 본인이 찾기도 하는 걸 보면 도움이 되는 걸 스스로 아는 거 같다.
치료제의 개념보다는 가지고 있는 증상 중 일부를 완화한다고 생각하면, 약을 먹이는데 두려움은 좀 거둬들여도 될 것 같다.
여름이는 불안을 줄이고 수면문제를 우선에 두고 처방을 받았는데, 이 두 가지가 개선되니 음식 먹는 것이 좀 확장되고, 언어출력도 좀 빨라진 것 같다. 큰 부작용 없이 한 번에 적합한 약을 찾아서 감사하다.
이렇게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잠과의 싸움이 약으로 종결되었다. 다행이면서도 아쉬운 전쟁의 마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