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대구에 있는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은행에 입사한 아버지는 20살에 취업을 했고 60세 정년까지 한 회사를 무려 40년 동안 다니셨다. 40년을 한 회사에만 충성한 것은 아니었다. 퇴근 후나 주말에는 언제나 집 근처 고등학교에 위치한 테니스장에 가면 아빠를 발견할 수 있었다. 빨간 벽돌로 둘러 쌓인 2층 주택의 1층에 한 작은 방에는 젊은 시절 아빠가 받아온 테니스 대회 트로피가 가득했다. 현재는 종목이 바뀌어 파크골프 트로피를 수집하고 있다.
은행권은 특정 나이가 되기 전에 진급을 해야 한다. 초등학생 저학년이었을까, 그 해 아빠는 과장 진급 마지막 해 시험을 남겨 두고 있었다. 그동안 매 주말마다 아들들과 놀아주느라, 테니스장에 출근하느라 진급 시험에 모두 떨어졌다. 엄마는 마지막 해 특단의 대책을 마련했다. 시험 6개월 전 아빠와 같은 처지의 직장 동료 한 명과 집 근처에 방을 빌린 것이다. 아빠는 그렇게 집과 공부방을 오가면서 진급 시험을 준비했고 그 당시 테니스장의 출근 빈도도 많이 줄었었다.
다행히 아버지는 마지막 해 과장 진급 시험에 합격했고, 물론 아빠 직장 동료도 같이 통과했다. 그런 스포츠를 좋아하는 피와 마음을 물려받은 둘째 아들인 내가 운동을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지 않나.
정년퇴직 후에도 은행권 노인 일자리에서 무려 4년이나 일을 더하신 아빠는 현재는 파크골프 지도자 자격증을 가지고 계신다. 테니스의 사랑이 골프에서 다시 파크골프로 넘어간 것이다. 이제는 운동 유전자가 없는 엄마까지 파크골프에 중독(?)되셔서 부부 파크골프 지도자로 고향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신다.
매 어린이날마다 그리고 설날, 추석 연휴에 야구장을 갔던 기억이 있다. 물론 대구시민야구장 바로 앞에 큰집이 있어서 명절 때 개구쟁이 아들들을 가장 쉽게 케어할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가 야구장으로 보내 버리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릴 적 기억이 현재의 파란피를 만들었고 나의 아들 두알이도 파란피일 것이다. 두알이의 두알이도 아마?
어릴 적 골목을 배경으로 축구, 야구를 즐겨했고,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형을 따라서 농구를 열심히 했었다.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갔는데 논산훈련소에서 우연히 특전사에 차출되었다. 물론 면접에서 “꼭 가고 싶습니다”를 스스로 외치긴 했다. 그 당시에는 이왕 하는 군 생활 빡세게 해야지라는 상남자스러운 면모가 있었다.
서울 김포공항 근처의 자대 배치를 받고 경비소대를 거쳐 군수병이 되었다. 특전사 군생활 중 좋았던 점은 여럿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매일 아침 주어지는 2시간의 체력 단련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축구나 농구를 주로 하다가 상병이 되고부터는 그 당시 띠동갑 누나를 만나던 헬스보이 동기와 함께 헬스장에서 운동을 많이 했다. 매일 3km 구보는 필수였다. 정말 뛰는 거 싫어했었는데 고혈압이라는 절친을 만들고 나서 유산소 운동은 나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회사에 출근해서 저녁 시간을 이용해서 시청, 광화문 근처에서 러닝을 하고 사무실 책상에서 도시락 냄새를 훌훌 풍기면서 민폐를 지기고 있다. (아무도 보지 않을 글이지만 회사 사람들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 회사 취직 후에는 클라이밍을 2년 반동안 꾸준히 했었고 헬스, 러닝 등은 지금도 유지 중이다.
아빠로부터 온 운동의 유전자와 신나게 놀기 좋았던 시골의 환경 덕분에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다만 아버지와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아빠는 운동할 때마다 트로피를 가져오셨는데, 나는 운동할 때마다 부상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발목, 손가락, 허리, 무릎, 어깨… 이제는 다치지 않은 부위를 세는 게 쉬울 정도다.
아내는 매번 운동 좀 적당히 하라고 말하지만. 안 된다. 난 이미 중독되어 버렸다. 비엔나소시지로 만들어진 약한 몸뚱이지만, 아빠에게서 물려받은 운동 유전자는 건재하니. 물론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이 부서졌는지는...앞으로 차차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