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대학 시절 기억은 어렴풋하다. 술 마신 날은 더욱. 하지만 2008년 명덕역 앞에서의 한 장면은 유독 선명하다. 모두가 걸어가는 큰길에서 나 혼자 좀비처럼 멈춰 있었던 바로 그 순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의 한 대학교에 입학했다.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아서 건축학과를 고민했었는데 우연찮게 외삼촌의 조언으로 당시 유망했던 중국어를 전공하게 되었다. 학교 입학과 동시에 치아 교정을 하게 되었고 2년이면 끝날 교정이 지연되면서 2학년을 마치고 1년 휴학 후 추운 겨울날 친구들의 제대와 함께 입대했다. 그렇게 2년이 지나고 복학을 한 어느 날이었다.
대구 시내 반월당에서 약속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버스를 탔었는데 갑자기 버스의 진동이 너무나 선명하게 느껴졌다. 대구 시내버스는 원래 과격하기로 유명했지만 이날의 기분은 완전 달랐다. 버스 타이어가 작은 자갈을 밟는 미세한 움직임까지 모두 나의 허리에 느껴지는 듯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버스의 모든 밀당이 나에게 더 큰 부하를 줬고 미처 세 정거장이 되기도 전에 벨을 누르고 말았다. 벨을 누르는 것도 쉽지만은 않았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균형을 잡고 일어서서 자유분방한 손잡이는 차마 잡지 못하고(원래는 버스 손잡이를 가볍게 잡고 마치 서핑하듯이 흔들림을 즐기던 나였지만) 중간중간 위치해 있는 기둥을 꼭 잡고 일어서서 겨우 벨을 눌렀다.
그날의 장면은 아직도 나에게 마치 어제 촬영한 아들 사진처럼 생생히 남아 있다. 처음 내리는 낯선 동네의 길 한복판이었다. 대구 향교 근처인 명덕역의 큰 길가였다. 인도의 한복판에서 나는 마치 좀비 마냥 천천히 한 발 한 발을 겨우 내디디고 있었고 내 옆을 사람들은 원래 자기 속도로 지나갔다. 유튜브 설정창의 재생속도로 보자면 나의 속도는 0.25배 수준이랄까. 한참을 그렇게 천천히 걷다가 서다가를 반복했고 증상이 조금 나아지자마자 바로 근처의 정형외과를 방문했다. 허리 부근에 X-ray를 찍고 직전 상황을 다 설명하고 나온 최종 진단은 허리디스크는 아닌 단순 허리 염좌. 약국에서 약을 타고 어찌어찌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기억은 아예 나질 않는다. 아마도 식은땀을 흘리면서 돌아왔겠지? 집에 도착 후 약을 먹으면서 이틀을 내리 누워 지내니 조금 걸을만해졌다.
며칠 누우면서 허리가 아픈 원인을 생각해 봤다. 평소 자세는 나쁘지 않았고, 과격한 운동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럼 뭐였을까?(원래 원인 분석하는 행위를 좋아한다. 아니면 이때부터 원인을 밖에서 찾으며 마음의 평화를 얻기를 원했었나?)
40년 평생을 60kg대 마른 몸으로 살아왔다. 대학교 4학년 때 산 첫 취업 정장이 20년이 지난 지금도 옷장에 걸려 있다. (자랑일까 슬픔일까) 고등학교 때는 왜소한 체격이 콤플렉스여서 매일 밤 라면을 먹고 잤지만 체중은 안 늘고 아랫배만 나왔다. 전형적인 ET체형, 마른 비만이었다.
구기 운동을 좋아했지만 헬스나 코어 운동은 싫어했다. 팔굽혀펴기는 몸이 가벼워서 잘한 것 같고, 그래서 더 자주 했다. 코어, 복근 운동? 지루하고 힘들어서 그만.
지금 돌이켜보면 가장 중요한 건 코어였다. 복근과 허리 근육만 제대로 단련했어도 명덕역에서 좀비가 되는 일은 겪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는 미처 몰랐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고 나는 건강한 줄 알았다.
아찔했던 버스 사고 이후로도 허리는 주기적으로 크게 아팠다. 클라이밍, 풋살, 요가 등 뭘 해도 최종 종착지는 허리였다. 그리고 2025년 나는 마침내 그 이유를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