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염좌와 함께한 청춘

by 보문목화씨

연년생인 형과 함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나란히 다녔다. 4월 생인 형은 나완 다르게 편식 없이 잘 먹는 체질이었고 어릴 적부터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팔방미남 모범생이었다. (아니 정확히 미남까진 아니다) 아무튼 20개월 차이로 태어난 1월 생인 나는 한 살 어리게 학교에 들어간 만큼 초등학교 시절부터 덩치와 키가 작은 축에 속했다.


형은 학교에서 빨간 머리로 유명했었는데 엄마의 갈색 머리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잘 먹고 잘 뛰어논 친형은 농구를 잘했는데 나도 형의 영향을 받았는지 자연스럽게 농구를 따라서 시작했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도 편식 습관을 버리지 못했지만 다행스럽게 유전의 영향이었던지, 아님 자랄 시기가 된 건지 한 해 10cm가 넘게 키가 자랐고 신장의 스포츠인 농구도 자연스럽게 즐기게 되었다. 체중은 별로 늘지 않고 키만 갑자기 커지니깐 몸은 더 마르고 약한 편이었고 달리는 능력은 평범했다. 그래서 축구보다는 농구를 좋아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나의 중학교 시절에는 또래끼리 팀을 구성해서 지역 길거리 농구 대회에 나가는 게 유행이었다. 나와 친구들의 실력은 학교 체육시간에서 그저 즐길 정도여서 엄두를 못 냈었는데, 형은 친구들과 함께 농구 대회에 나가서 입상도 여러 번 했다. 'B. SKY'라는 이름의 교내 농구 동아리에 가입하고 농구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손가락 염좌와 발목 부상은 반복됐다. 손가락 테이핑을 감고 체육시간에 나가고, 발목을 절뚝거리며 교실로 돌아오는 날이 많았다. 양호 선생님은 나만 보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친구들은 "또야?"라며 웃었다.


그때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운동을 못하는구나. 몸이 약한가 봐.'

맞았다. 정확히 맞았다.


하지만 그걸 확실히 알게 되기까지는 20년이 걸렸다. 2025년, 광화문의 한 류마티스 내과에서 "강직성 척추염" 진단을 받고 나서야, 중, 고등학교 때 자주 다쳤던 손가락들이 무슨 의미였는지 알게 됐다. 손가락 마디가 자주 붓고 아팠던 건 우연이 아니었다. 내 몸은 그때부터 나에게 알람을 계속 줬던 것이다.


그래도 나는 농구를 좋아했다. 다쳐도, 또 다쳐도, 체육시간만큼은 코트로 나갔다. 지금도 그렇다. 부상을 안고도, 질병을 안고도, 나는 여전히 운동화 끈을 묶고 밖으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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