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면 클라이밍 선수(였으면 좋겠지만)

by 보문목화씨
누군가 다시 태어난다면 혹은 어릴 적으로 돌아간다면 뭐가 되고 싶어?


물어본다면 난 확실히 클라이밍 선수라고 말할 것이다. 불과 6개월 전까지 내 병을 알기 전까지는 그랬다.


클라이밍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미국으로 교환학생 가는 친구를 보고 나도 유럽으로 가고 싶었다. 세 번의 시도 끝에 대학교 마지막 학기를 유럽에서 보냈다.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라는 도시인데, 기숙사 창문을 열면 알프스 산등성이가 보이는 정말 평화롭고 아름다운 동네였다. 기숙사 맞은편에 인스브루크 대학교가 위치해 있고, 오스트리아 룸메이트 형님의 안내로 교환학생도 해당 학교의 수업을 참관할 수 있다는 정보를 들었다. 뭐가 있나 과목들을 자세히 살펴보다가 눈에 띈 것은 단연 스포츠 클라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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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관심이 생겼지는 모르겠지만 매일 알프스 산맥이 보이는 풍광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욕구가 샘솟았을까? 스포츠 클라이밍 수업을 듣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수강 신청기간이 지나버려 그저 마음에만 담아두고 말았다.


그렇게 한국에 돌아오고 취업을 준비하고 한 회사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 회사의 위치가 청담동에 있어 서울 본사로 몇 달 전에 발령을 받고 관악구 봉천동에서 자취하고 있는 형네 자취방에서 출근을 했다. 회사 생활이 익숙해지고 나서 자취방을 구하려 했는데 좁은 형네 자취방과 환승을 2번이나 해야 하는 불편함을 참지 못하고 1주일이 지나고 맞은 첫 번째 주말에 건대입구역 주변에서 방을 구했다. 건대입구역에서 4212번 버스를 타고 영동대교를 지나 청담동까지 넓은 대로를 통해서 녹색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하루는 성수역 방향으로 가는 출근길에서 K2의류 브랜드의 건물을 보게 되었다. 건물에는 K2, 아이더 브랜드 의류를 판매하는 매장이 있었고 그 위층에 실내 클라이밍장이 있었다. 회사에 도착해서 검색해 보니 서울에서 가장 큰 리드 클라이밍장과 볼더링장이 있는 공간이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당시에는 리드, 볼더링이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집 근처에 클라이밍장이 있다는 소식은 정말 기뻤다.


클라이밍장 등록은 그로부터 1년이 지나고 나의 생일날부터였다. 당시 썸을 타던 여성과 잘 되지 않아 혼자 쓸쓸히 연말을 보내고 있었고 마침 회사에 다닌 지 2년이 지난 후라 지갑에도 여유가 생겼던 시기였다. 암장 소개와 간단한 상담 후 바로 3개월 등록을 했다.


클라이밍은 현재 젊은 MZ세대들에게 각광받는 운동이지만 내가 시작했었던 2010년대 초에는 정말 소수의 인원들만 즐기고 있었다. 운동을 했던 K2 C&F라는 공간은 K2소속의 선수들이 연습하는 장소라서 국가대표 선수들과도 운동을 같이 하였다. 소수가 즐기는 운동이다 보니 이용료도 꽤 비싼 편이었다. 한 달에 10만 원 중반대의 이용료와 처음에 회원 가입비도 따로 있었다. 클라이밍 필수 장비인 암벽화도 10만 원대, 손이 미끄러지지 않게 도와주는 초크와 초크주머니 그리고 리드 클라이밍을 할 때는 로프와 빌레이 도구들이 필수였다. 로프는 20~30만 원, 빌레이 도구도 그 정도. 다른 어떤 운동보다 진입장벽이 높은 스포츠였는데 요즘에는 어떻게 이 정도로 대중적인 스포츠가 되었을까? 반가우면서도 참 아이러니한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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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클라이밍 선수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키가 크지 않고 상당히 마른 편이다. ‘클라이밍 = 마르면 장땡’으로 생각할 수 있다. 나의 경우에는 60kg 초반의 체중을 자랑하고 있었고, 클라이밍에 있어서는 최적의 몸무게였다. 처음 수업을 하던 날부터 왠지 클라이밍이 쉽게 느껴졌고, 하면 할수록 재미있고 성취감을 느꼈다. 주 3회 이상 클라이밍장에 출근했고, 한 번 운동을 하면 최소 3시간은 기본이었다.


처음의 2달 동안은 초보자 수업을 등록했다. 초보자의 경우에는 처음 삼각점 자세부터 시작을 해서 홀드 그립을 잡는 방법, 리드에서 로프를 거는 방법, 빌레이 보는 방법 등 스포츠 클라이밍에 필요한 기초적인 내용을 배운다. 2달 정도 배운 이후에 첫 달에 같이 운동을 했던 동갑내기 친구가 가입한 크루를 소개받았다. 그때부터 2년 반 동안 한 크루에서 같이 운동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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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2 C&F 암장의 상주 멤버가 되면서 같은 크루 멤버들과도 운동을 하지만 다른 크루원들과도 자주 교류를 한다. 볼더링 문제를 내고 풀고를 반복하는데, 개인적으로 참신한 문제 내는 것을 좋아해서 어떻게 하면 신선하게, 새로운 자세로, 새로운 동작으로 문제를 풀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다이노’라는 클라이밍 동작이 있다. 멀리 위치한 홀드를 잡기 위해서 두 손과 두발을 이용해서 반동을 주고 점프를 해서 잡는 동작이다. 다이노 동작이 섞인 볼더링 문제를 풀다가 첫 번째 부상을 당했다. 그동안 작은 부상, 예를 들면 손가락이 붓고 어깨가 아프고 손바닥이 까지고 무릎이 까지고 등등, 은 수차례 온몸에 달고 있었지만 허리가 아팠던 적은 처음이었다. 대학교 때의 강렬했던 버스의 기억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찌릿함’이 강력하게 허리 부위에서 느껴졌다. 그대로 바닥 매트에 떨어졌고 한참을 누워있었다. 겨우 부축을 받고 구석 요가 매트로 가서 누워 허리 부분을 조심스럽게 스트레칭했다. 처음의 찌릿함은 조금 덜해졌지만 확실한 통증이 느껴졌고 ‘최소 2주일은 운동을 못하겠네’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왜 다쳤을까? 누워서 되새겨 보니, 코어가 중요한 전신운동인 클라이밍을 하면서 도파민 빵빵 터지는 재미만 추구했었다. 평소 기본적인 지구력 트레이닝, 보강 운동을 등한시한 책임이 느껴졌다. 병원에서 처방해 준 소염제를 2주 동안 먹으면서 복귀 후에 루틴을 구상했다. 운동 전후로 스트레칭을 넣고 난이도가 낮은 구간으로 웜업코스를 하고, 그렇게 다시 6개월이 지났다.


어느 날 리드 클라이밍을 하다가 허리가 또 왔다. 이번엔 다이노도 아니었다. 그냥 홀드를 잡으려고 팔을 뻗는 순간, 허리가 "뚝" 소리를 내며 굳어버렸다.

'또야?'

이번에도 2주를 쉬었다. 그리고 또 복귀하고, 또 다쳤다. 허리 말고도 어깨가 아프고, 손가락이 붓고, 손목이 저렸다.

"너 요즘 많이 다치네?" 크루원이 물었다.

"응... 나이 들어서 그런가 봐." 농담처럼 말했지만, 속으로는 걱정됐다.

당시 나는 겨우 30대 초반이었다. 나이 탓을 하기엔 너무 젊었다.


2025년, 강직성 척추염 진단을 받고 광화문 류마티스 내과에 갔을 때였다.


"운동 뭐 하세요?" 의사 선생님이 물었다.

"러닝이랑... 예전에는 클라이밍을 2년 반 정도 했었어요."

"클라이밍이요?" 선생님이 고개를 들었다. "강직성 척추염에 최악의 운동 중 하나예요."

"... 네?"

"척추를 비트는 동작이 많잖아요. 관절에 무리가 심하게 가요. 특히 허리랑 어깨."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운동이, 내 병을 키운 운동이었다니.’


클라이밍장에서 허리 다치고, 어깨 아프고, 손가락 붓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그때 이미 내 몸은 또 다른 비명을 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클라이밍을 했을까?

답은 무조건 YES다!


결과적으론 최악의 선택이 되어버렸지만 클라이밍의 중독성과 재미는 쉽게 뿌리칠 수 없다. K2 C&F 암장에서 보낸 2년 반은 내 인생 최고의 순간 중 하나였다.


다만 이제는 안다. 열정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준비와 예방 그리고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알아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어쩌면 중고등학교 시절 클라이밍을 알았더라면 선수의 길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랬다면 이미 선수 생명이 끝났겠지? 유리몸과 클라이밍, 최악의 조합이었지만 최고의 추억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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