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일간 가정 혈압 측정 이야기

by 보문목화씨

3년 동안 금주를 했지만 나는 여전히 고혈압이었다. 술을 끊어도, 유산소 운동을 해도, 식단을 관리해도 혈압은 높았다.


‘그럼 문제는 뭘까?’


2022년 봄, 나는 도전을 하기로 했다. 바로 매일 가정혈압을 재는 것.


의사 선생님이 항상 강조하던 내용. "집에서 매일 혈압을 재보세요."

이번 건강검진에서는 꼭 당당히 말하고 싶었다. "나는 진짜 고혈압이 아닙니다!"


대망의 건강검진날은 2022년 8월 25일 목요일. 대략 3달 전인 5월 11일부터 매일 밤 9시에서 12시 사이 대략 10시 전후에 가정 혈압을 측정했다. 매일매일, 그 한마디를 하고 싶어서!


매일 혈압을 재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점은 수면, 식사, 운동, 업무, 스트레스, 체중이었다. 수면은 갤럭시 스마트워치로 수면 시간과 점수를 기록했다. 식사는 아침, 점심, 저녁 식단을 사진 찍고, 나중에는 칼로리, 나트륨 정도, 영양 성분까지 체크했다. 운동은 유산소와 헬스, 요가 등으로 나눴고 세부적인 사항을 기록했다. 당일 업무 여부를 체크하고 밤에 당일 하루를 돌이켜 보면서 스트레스와 컨디션을 기록했다. 그리고 샤워, 대소변도 체크했었다. 혈압은 작은 요인 하나로 변동되기에 스트레스받지 않고 챙길 수 있는 부분은 모두 작성하려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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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압 일기를 작성하면서 생각지도 않게 배운 부분이 있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을 강제고 가짐으로써 마치 혈압을 측정하는 순간이 나 스스로를 위한 명상의 시간으로 느껴졌다. 고요하면서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문득 ‘지금까지 100일 동안 무언가를 꾸준히 했던 일이 있었던가?’ 생각해 보면 ‘혈압 일기’가 최초였다. 으레 하던 어릴 적 방학 일기는 마지막 1주일 몰아치기였고, 연초 목표는 언제나 다짐과 함께 1주일이 지나면 흐지부지해졌으니 말이다.


그럼 나는 무슨 힘으로 100일을 너머 218일 동안 매일 밤 혈압을 잴 수 있었을까?


첫째, 확실한 목표가 있었다. 건강검진 당일 “난 고혈압이 아니야!”라고 당당히 말하고 싶었다.

둘째, 정확한 나의 혈압 상태가 궁금했다.

셋째, 매일 나를 차분하게 돌아보는 시간이 좋았다.

넷째, 노력하고 있는 나에게 ‘쌍따봉’을 날려주고 싶었다.


그렇게 106일이 지나고 8월 25일 아침.


“뚜~뚜~뚜~ 측정하신 혈압은 142 / 91입니다”

이런 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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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의 마음은 분명 작년과 달랐다.


지난해에는 나의 혈압에 대한 의구심이 가득했지만 올해는 매일 측정했던 수치로 인해서 높은 혈압 기계의 숫자를 무시할 수 있었다. 마지막 의사 선생님과의 상담에서도 당당히 얘기했다.


“106일 동안 측정한 가정 혈압 수치는 120.9 / 86.8입니다!”

의사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백의 고혈압이 의심될 수 있네요. 정확하게 진단하고 싶으시면 24시간 혈압기계가 있는 심장 내과나 대학병원 방문하시면 됩니다. 가정 혈압 수치는 살짝 높긴 한데 그 정도는 괜찮은 것 같네요."


드디어 몇 년 동안 듣고 싶었던 답변을 들었다. 나도 모르게 살짝 미소가 지어졌다. 106일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안도감이었을까? 아니면 역시나 유전은 위대하다는 체념이었을까?


218일의 기록을 마치며 깨달았다.

고혈압을 받아들인다는 건, 숫자가 아니라 나 자체를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비엔나소시지로 자랐고, 운동과 함께 성장하고, 부모님에게 서 유전자를 받은, 그런 나를. 숫자는 여전히 높지만, 이제 나의 마음은 평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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