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 월요일 퇴근길 광화문 근처의 병원을 방문했다.
나의 증상은 오른손 검지, 중지 손가락 마디 부분이 부어 있었고 손가락을 손바닥 쪽으로 꺾으려고 하면 통증이 느껴졌다. 우연히 블로그를 통해서 병원을 찾게 되었다. 연세세브란스 병원 류마티스 내과 전공의 출신 선생님이 새로 이전한 곳이라서 해당 블로거는 담당 선생님을 계속 따라다닌다는 글을 봤다. 그 정도로 신뢰한다면 나도 한 번 믿어볼 만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병원에 도착해 접수를 하고 담당 선생님 이름을 보니 휴~ 나도 같은 선생님이었다! 왠지 모를 친근감과 안도감이 들었다. 그냥 동네 내과인 줄 알았는데 광화문에 위치한 병원답게 직장인 대상의 건강 검진 센터를 겸하고 있는 공간이었다. 수납을 하고 내과 1 진료실 앞에서 기다렸다. 애매한 오후 시간대라 대기 손님이 없었고 바로 호명됐다. 나는 준비해 온 아이폰 메모장을 꺼내서 그동안의 증상들, 사건의 타임라인, 현재의 상태를 최대한 자세히 설명했다.
“1월에 아기가 태어났고요, 집안일을 많이 하면서 손가락이 아프기 시작했어요. 통증은 거의 3월부터 계속 있어요. 간헐적으로 심해졌다가 괜찮아졌다가. 그리고 최근 건강검진 결과에 류마티스 인자 수치가 상승되어서요.”
선생님은 가장 증상이 심한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먼저 전체적으로 만져보셨다. 간헐적 다한증이 있어 살짝 촉촉해진 손바닥이 괜히 신경이 쓰였다. 직업 정신이 투철한 선생님은 아무렇지 않게 이리저리 자세히 만지셨다. 이어서 왼손 검지와 중지를 만지셨다.
“손가락 마디 부분이 많이 부었네요. 양손 형태 차이도 꽤 있고요.”
그 말을 듣고 나도 비교해서 만져보니 정말 달랐다. 그동안 고생한 손가락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래층에 위치한 X-Ray실로 향했다. 양손을 촬영하고 다시 진료실로 올라왔다.
의사 : “과사용이에요, 다행히 류마티스 관절염 증상은 아니고 그냥 과하게 사용해서 아픈 거예요.”
나 : “아, 다행이네요…”
의사 : “근데 골반이랑 허리도 아프시죠?”
나 : “네, 예전부터 자주 다쳤어요. 최근에도 불편했고”
의사 : “강직성 척추염이 의심되니깐 피검사를 해볼게요.”
피를 뽑고 1주일 후 재방문 예약을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머릿속이 복잡했다.
강직성 척추염. 이미 알고 있는 병이었다. 처제 때문에 몇 년 전부터 익숙한 이름. 생물학적 제재 주사를 정기적으로 맞는다는 그 병. 천장관절에 염증이 생기고 점차 움직임이 둔해지는 불치병. 아니 난치병이 정확하다.
나는 손가락 통증 외에는 큰 증상이 없었다. 허리는 예전부터 자주 다쳤었지만, 그건 클라이밍이나 풋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에이 설마 나도??
1주일이 지나고 병원에 도착하니 담당 간호사가 검사 결과지를 프린트해 주셨다. 미리 관련 질환을 검색했던 터라 한눈에 결과를 알아봤다.
HLA-B27: Positive
마치 불합격 통지서를 받은 기분이었다. 선생님이 결과지를 보며 말했다.
"유전자가 있네요. 하지만 유전자가 있다고 다 강직성 척추염은 아니에요. 동반 증상이 있어야 하거든요. 포도막염, 건선, 아킬레스건염, 말초관절염 같은 거요. 선생님 경우에는 손가락 외에는 큰 증상이 없으니까..."
잠깐의 희망이 보였다.
"골반 X-Ray 한 번 더 찍어볼게요."
다시 X-Ray실로 내려가서 골반 부위를 촬영했다. 선생님이 골반 사진을 모니터에 띄우셨다.
"음... (잠시 침묵) 오른쪽 골반에 염증이 보이네요."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심한 정도는 아니에요. 가장 초기 단계 정도로 볼 수 있는 염증이에요."
말을 듣자마자 괜히 오른쪽 골반이 갑자기 불편해졌다. 신경 쓰니까 정말 아픈 것 같기도 하고.
"정확한 진단은 영상의학과 담당 선생님이 하셔야 해서, 일단 예방 차원의 소염제 1주일치 드릴게요. 다음 주에 다시 오세요."
소염제를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휴 왠지 모르게 드는 그 느낌. 그 느낌이 맞을 것 같았다.
다시 1주일이 지났다. 병원 가는 길이 무거웠다. 괜히 결과를 듣기 싫었다. 하지만 피할 수는 없었다.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강직성 척추염 맞네요."
축하합니다. 강직성 척추염에 당첨되셨습니다. 그렇게 나는 난치병 환자가 되어버렸다.
"진짜 위중한 병은 아니에요. 하지만 살아가는 데 있어서 보통 사람들보다 더 아플 수 있어요. 같은 병을 앓더라도 증상이 더 심할 수도 있고요."
선생님은 차분히 설명하셨다.
의사 : “강직성 척추염 초기 단계라서 현재로서는 특별히 취할 수 있는 치료는 없어요. 꾸준한 스트레칭이 최선이에요."
나 : "스트레칭이요?"
의사 : "네. 손가락 통증은 테니스 엘보 증상이랑 비슷해서, 팔 부분을 자주 스트레칭해 주시면 돼요. 허리랑 골반도 자주 풀어주시고요. 수준이 경미하니까 아마 평생 이 정도의 아픔, 통증으로 유지될 수도 있어요. 악화 안 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다행히 당근도 주셨다.
진료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생각했다. 강직성 척추염을 검색했을 때는 1%의 확률이라고 했다. 우리 가족은? 장인어른, 장모님, 아내, 처제, 나, 두알이. 여기에 친정 부모님, 형네 가족까지 총 12명. 그중 강직성 척추염 환자는 처제와 나 2명. 로또 1등 당첨 확률이 대략 0.00001%, 우리 집의 강직성 척추염 당첨 확률이 16.6%. 나는 로또보다 (질병에 있어서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 창밖을 보며 생각했다. 이미 보유하고 있는 고혈압처럼, 평생을 친구처럼 같이 지내야 하는 난치병이다. 고혈압과 절친이 되기까지도 3 ~ 4년 걸렸다. 매일 혈압 재고, 술 끊고, 식단 관리하고... 그렇게 겨우 받아들였다. 이번에도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하지만 이왕 평생을 같이 보내야 한다면, 친구 1명보다 2명이 더 낫지 않을까? 고혈압과 강직성 척추염. 둘 다 나를 아프게 하지만 둘 다 나를 더 부지런하게, 건강하게 만들어 주는 좋은 친구다. 웃픈 건, 올해 회사 동료 말고 실제 사람 친구를 만난 적은 산후조리원 기간에 본 대학 후배 1명뿐이라는 사실이다. 질병 친구는 2명인데 실제 친구는 1명이라.
집에 도착해서 아내에게 말했다.
나 : "강직성 척추염이래. 초기 단계고, 관리 잘하면 괜찮대."
아내 : "... 어떡해."
나 : "괜찮아. 이미 고혈압도 있는데, 하나 더 있으면 뭐 어때."
농담처럼 말했지만, 속으로는 복잡했다. 명덕역에서 0.25배속 좀비였던 나. K2 C&F에서 허리 다쳤던 나. 풋살장에서 쓰러졌던 나. 중학교 때 손가락 자주 삐었던 나. 내 몸은 언제나 나를 가장 잘 알았고 언제나 가장 먼저 신호를 보내줬었다. 늦게 알았지만, 늦은 건 아니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고맙다 나의 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