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탐구] 『제2의 성』/ 시몬느 드 보부아르
페미니즘은 건강한 사상이다. 논쟁으로 승부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앎을 서로 나누는 재미있는 수다이다. 젠더만큼 뜨겁고 달콤한 논쟁은 없다. 뒤끝으로 공부의 동기를 주는 괜찮은 학문이기도 하다. 온라인에서는 논쟁이라기보다는 일방적인 독백으로 뒤죽박죽으로 표출된 경우가 더 많다. 읽어 보면 공론장과 같은 역할의 커뮤니티에서 정제되지 않은 말들의 풍경은 가히 가학적으로 보인다.
내가 원하는 부분만을 발췌해서 전체를 오독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는 중인데 쉽지 않다. 나름 페미니즘을 거론하는 책들을 접하면서 만나는 것은 이거 어디서 읽은 건대‥였다. 페미니즘은 수많은 문학과 책들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 작은 부분들로 이루어진 페미니즘은 전체를 돋보이게 할 수 있는 기제로 서로를 감싸 안아준다. 어느 작은 한 가지로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기도 하다. 내게 참고 서적으로 늘어난 다양한 사상 중의 한 가지이다.
시몬느 보봐르의 <제2의 성>은 섹슈얼리티에 관한 편견을 벗어나게 해 준 책이었다. 내 기억에 남은 것은 남성과 여성으로만 구분되던 성을 다양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된 책이었다는 점이다. 그때만 해도 페미니즘에 관한 호기심은 일어나지 않았다. 시본느 보봐르는 여성이기보다 그저 한 인간으로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동서문화사에서 발간된 책에선 만날 수 없었던 오래된 기억들을 살림에서 출간된 『여성학 백과사전 제2의 성 』변광배의 해설서에서 다시 정리하고 재생할 수 있었다. 페미니즘 공부를 해야겠다 싶으면 이 해설서가 수월하고 다양하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다.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어느 정도는 일상에서 느끼며 알고 있다. 다만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과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과는 다름을 지나칠 뿐이다. 내가 생활하면서 만나는 부당함이 뼈저리게 파고들지 않으면 별 저항이 안 든다는 것도 말이다. 남성 중심의 사회가 그렇다. 워낙 별 일 없는 듯이 오래도록 이어지며 공고하게 굳어진 남자 중심의 생각들이 자리를 내어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스스로 알아차리고 깨닫지 않으면 페미니즘은 수많은 사회운동처럼 부분에서 정체되어 더 나아가지 못한다. 페미니즘은 더 나은 삶을 위한 과정의 한 의식화이고 그 너머에서 진정한 휴머니즘의 세계가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남자, 여자가 아니라 사람으로 살아나기 위해서라도 페미니즘은 보편성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보부아르는 「제2의 성」을 쓸 무렵 자신은 페미니스트가 아니었다고 말하고 있다. 게다가 "거의 우연하게" 이 책을 쓸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그저 여자인 자기 자신을 좀 더 깊이 알아가는 과정에서 우연히 여성 문제에 대해 글을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성학 백과사전 제2의 성 』변광배 / 본문 78쪽
청소년기와 청년의 시간에 책을 가까이하지 않거나 못해온 한국사회의 경쟁주의라는 강박. 페미니즘 공부를 해오면서 자주 만나는 감정이다. 일부러 찾아 펼치지 않아도 문학에서 느낄 수 있는 대부분의 감정 밑에는 페미니즘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책을 읽는 것이 생활화되었다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받는 차별과 몰이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성이기에 받아온 부당한 현실을 토로한 문학은 서구 유럽 중심 사고가 거칠게 몰려와 받은 한국이기에 꽤 이른 시기에 세계문학을 접할 기회가 주어졌다. 고전이라 불리는 세계문학 안에는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인간으로 살아가려는 수많은 목소리가 있으니까. 적어도 주체의 나를 보살피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회에서 만들어진 여성의 모습과 다른 나를 인정하는 일부터 시작해 사회에서 학습한 지식이 얼마나 남성 중심으로 치우쳤는지도 알아낼 수 있다. 문제는 서구 유럽에 내가 태어나지 않았으니 그 의식에서 벗어나는 일부터 시작해야 가능하긴 하다. 그 일을 가능하도록 도움이 되는 책은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이다.
나를 인간으로 살아가게 해 준 십 대의 우상은 전혜린이었다. 오죽하면 그녀의 삶을 따라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을 고대하고 알약을 모았을까. 물론 그 알약 덕분에 나는 꿈틀거리는 삶을 쥐게 되었다. 스르르 흘러내릴 것만 같던 그 청춘의 휘청거리는 오후를 잘 지나왔긴 하지만 여전히 나는 비틀거린다. 1970년대의 한국이라는 독특한 상황에서 전혜린이 갈망한 자유와 인간으로 살기 위한 몸부림들은 그녀의 책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이른 죽음의 선택이 여성으로 엄마로 누군가의 아내로 살아가면서 잃고 싶지 않은 그러나 이미 잃은 자기를 지키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나는 그녀의 삶에서 받은 영향으로 여자가 아닌 인간으로 살아가는 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 여성이기에 제대로 해 낸 것이 있다면 아이를 낳은 일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 아이들의 자유로운 삶을 응원하고 있을 때 주변에서 심심찮게 듣던 말은 방임이었다.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게 이 나라에선 방임이 되어 어미라는 제 역할을 못한 여자가 되기도 한다.
되돌아보면 문학과 함께 굳이 꺼낼 이름들이 페미니즘과 이어지곤 한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배우는 것은 이 세계가 얼마나 편향성을 주류로 생각해왔는 가이다. 인간으로서 존엄이 거의 모든 영역에서 강자에게 치우친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적어도 나의 세계만큼은 변화가 온다.
계속 탐구 진행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