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심리적으로는 존재하는 통증의 환상통은 의학용어로 보면 ‘가상의 통증’입니다. 내 몸은 분명 멀쩡한데 한동안 머리 한 부분이 감각 없이 내 몸에 붙어있다는 걸 의식합니다. 이것은 ‘결핍’이었습니다. 무엇의 결핍인지 모르는 채 얼얼해지는 상황에서 오는 환상통이 최근 몇 년째 가을이면 어김없이 나를 찾아왔습니다.
어릴 적 겨울, 만국기가 휘날리는 스케이트장에서 하키 스틱을 휘두르며 나를 에워싸고 호위해 주곤 했던, 온 집안에 가득 온갖 이름 모를 새들의 알록달록 지저귐으로 채워준 그대였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집안은 온통 바닷속 열대어들이 떠다니는 아름다운 방으로 변하곤 했습니다. 스틱을 휘두르며 노래 못하는 나를 가수라고 치켜세우고 '어제 내린 비'를 부르게 하며 드럼 연습을 하던 그대였습니다. 자유의 표상으로 있었지요.
5.18 광주 사태였습니다. 그땐 그렇게 왜곡 보도되었고 서울의 가족들은 고립된 광주에서 그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저, 특전사령부에 착출 되어 대한민국의 남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멋지게 해내고 있는 것이라 알고 있었습니다. 검은 베레모와 선글라스, 얼룩덜룩한 군복과 번쩍이는 군화가 마당으로 들어오면, 마구 설레는 너무 멋진 거인의 그대였습니다. 내 이름을 부르며 저 문으로 걸어 들어올 것만 같습니다.
그런 십 대를 지난 그대가 선택한 군 입대는 제대 말년의 5.18을 겪어야만 했던, 평생 외상 후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했음을 우린 몰랐지요. '광주사태'가 '광주 민주화운동'으로 평가받게 될 때에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은 그저,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자유분방한 기질로 그리도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도는 것쯤으로 알 뿐이었죠. 그대가 홀로 간직한 그대만의 진실이 아니었음에도, 홀로 진실을 끌어안고 있어야만 했던 그 분노와 절망은 이제 그대만의 것이 아닙니다.
입장의 차이는 있지만 이 나라에 살고 있는 그때 이십 대의 고뇌는 혼자 짊어질 것은 아니었어요. 5.18을 품고 살아가야 했던 그대를 쉽게 떠나보내지 못하는 이 마음도 그리 다르진 않은 것 같습니다. 그대가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영원으로 떠난 10주기를 앞두고 있습니다. 역사의 중심에서 그대의 삶은 국가에 의해 난도질당했습니다. 그 날의 기억에 울부짖던 그대를 나 또한 쉽게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가폭력의 아픈 역사, 그 시간들은 현재에도 광장에서 답습되고 있답니다.
아직도 갑작스레 떠난 그대의 그 모습이 홀로 검은 밤길을 지나올 때면 불쑥 내 앞으로 찾아옵니다. 그리곤 차오르는 눈물을 훔치는 내게 씩, 개구쟁이처럼 웃어줍니다. 그대는 내겐 참으로 당당한 모습의 자유로운 거인처럼 있었습니다. 언제이고 부르면 내게로 달려와 잘했건 못했건 내 편을 들어주며 나를 응원해주던 든든한 존재였습니다. 가슴이 자꾸만 그댈 찾습니다. 그대, 생을 저버리고 먼저 떠난 그곳에서 어찌 지내나요. 그대가 그립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내 오빠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마치, 내 어느 날의 죽음 같기도 한 너무 이른 이별을 기억하며, 아픈 영혼에게 건넨 넋두리입니다. 그리고 또 해가 지나고 국가의 야만을 마주하는 두려움들이 떠돌아다닙니다. 그때 그곳에 있었던 23살의 특전사는 죽을 때까지 나그네로 떠돌아 다녔습니다. 두 아이의 아빠이고, 앳된 새색시의 여린 아내와 한 집안의 장남이기도 했습니다. 결국엔 그 역사의 현장에서 멀쩡하게 돌아온 청년은 이 나라와 결별을 선언하고 타국으로 날아갔던 거지요.
내가 지프를 운전하면서 널브러진 붉은 시체 위를 달리는 거야. 길이 핏빛이었어.
5.18 민주 항쟁의 현장에서 얻은 트라우마는 그를 평생 괴롭히는 환상통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병은 대한민국을 벗어나지 않고는 이겨낼 수 없는 거였나 봅니다. 오빠는 가족을 등지고라도 이 땅이 아니 다른 공간을 배회하며 환상통을 이겨내야만 했나 봅니다. 그의 영혼은 그 건장한 몸과 상관없이 너덜너덜합니다
그는 스스로를 부정하느라 정착할 수 없었고, 자신을 겨우 추슬러 국적을 바꾸겠다고 가족을 찾은 그때 우즈베키스탄으로 출국을 일주일 남기고 교통사고로 별로 길지 않은 삶을 마감했습니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한 개인을 파괴해 놓고서 그게 애국하는 거라고 말할 수 있는 자가 도대체 누구란 말인지요. 국민의 의무에 충성한 이유로 얻은 환상통. 한 개인의 불행은 여전히 이 사회의 불행으로 남아있습니다.
합리적인 이성이 작동될 때와 감정으로 휘몰아갈 때를 구분조차 할 수 없는 개인도 문제입니다. 공공의 선이 핵무장이고 핵발전소이고 대륙과의 고립일까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이성이 제 기능을 하는 것은 돈 문제에만 국한되는 것 같진 않나요? 나라 전체가 비틀거려서일까요. 지진때문일까요. 내 몸도 마음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 가을도 여전히 환상통에 시달리고 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