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by 이창우

내 가을은 ‘카페 펠리체’로 달려갑니다. 릴케의 시 '가을날'의 마음만큼 간절한 마음을 담아 봅니다. 그곳은 소박하게 손님을 맞는 곳입니다. 그리 넓지 않은 작은 공간에서 카페콘비라를 마십니다. 그곳에서 누렸던 두 가지 시선과 마음을 다시 바라는 가을입니다.


그곳을 찾으면 일상의 향기로 친근하게 열리는 마음과 일탈의 발칙한 상상력을 부추기는 바람의 마음이 있습니다. 펠리체 바로 곁에는 작은 창을 통해 또 다른 세상이 열려 있고 내 세상 밖은 화려합니다. 어둔 거리를 감추는 현란한 빛과 넘치는 그리움으로 카페콘비라를 마십니다. 작은 손바닥에 얼굴을 기대면 그리움들이 아프게 드러눕습니다.


내 가을은 시간의 조각들을 찾아 나서는 계절입니다. 카페콘비라는 두 가지 마음을 건네고 있습니다. 한 송이 장미에 담은 귀한 마음과 그 장미의 가시에 찔려 상처 입은 마음, 바로 앞에는 하얗게 웃는 소년을 통해 또 다른 세상을 마주 합니다. 내 세상 안에 그곳은 푸르렀습니다. 맑고 파아란 순수의 빛과 작은 손바닥에 얼굴을 담으면 작은 희망이 꿈을 꿉니다.


이제 그 시간은 그리움으로 내 마음에 담아있고 가을이면 다시 그 시간을 풀어놓습니다. 내 공간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책들이 말을 건네는 순간이 있습니다. 이런 시간, 깨고 싶지 않은 잠을 누군가에게 빼앗겨 아연실색하여 낯선 눈빛을 기다리는 침묵의 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나는 어디 멀리 여행 가고 또 다른 모습의 내가 이 공간에서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책의 이름을 중얼거립니다. 철학을 위한 선언, 죽음에 이르는 병,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최초의 아나키스트, 내면 작업,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 책들이 말을 겁니다.


내가 안 보려고 한다고 해서 보이지 않을 세상도 아니었습니다. 뻔뻔스러운 세상입니다. 하긴 뭐, 그다지 애써가면서 안 보려고 하지도 않았나 봅니다. 보이는 건 보이는 대로 할 수 있는 건 하는 대로 살고 있나 봅니다. 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제멋대로였던 것 같습니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해야만 했던 것들, 굳이 그 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었을 많은 시간이 너무 억울하게 아우성칩니다.


창을 여니 찬란한 하늘입니다. 눈이 시립니다. 어두운 동굴에서 나온 느낌입니다. 이 하늘이 내게도 손짓하는 것이었나? 그래, 이 하늘은 모두의 하늘이니까. 골목길을 돌아 두부 한모를 사 들고 오는 마음이 마치 세상을 다 누리는 것 같은 이 느낌은 뭐지? 살아가는 일에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벼운 발걸음에 질질 끌리는 슬리퍼와 아스팔트의 마찰음도 정겹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리 엄청난 것은 아니었지 싶습니다. 그냥 이렇게 살아가도 되는 거 아닐까. 내가 좋아하는 공간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게 음식을 만들어 먹고 게으름의 왕국을 게으름의 자유를 누리며 사는 것 말입니다. 삶은 매사에 논리를 원하나 봅니다. 삶에 논리가 필요한 것일까? 매사에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나는 그 어떤 답을 내놓을 수가 없습니다. 가을은 가을이면 충분했는데 오래전에 털어버린 가슴앓이가 다시 도졌나 봅니다.


다다. Dada. 아무것도 아닙니다. 허무라 표현되기 이전의 언어로 아무것도 아닙니다. 난 이 사회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시월의 광장에서 들리는 혼란에 서울의 우울함이 보들레르가 소리친 파리의 우울처럼 나를 먹어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신이시여, 릴케의 '가을날'처럼 당신의 위대함을 느낄 세상이었으면 합니다. 광장에서 죽음의 이유를 알고 싶어 하는 세월호 가족들과 온전하게 장례를 치를 백남기 농민의 유족들과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당신께 전달되길 간절하게 바랍니다. 조율 좀 해 주세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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