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복습 ②] 삶의 의미-불안
불안에서 도망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없을 듯하다. 불안은 정신적인 것이고 그 정신인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을 테니까. 자기를 사랑한다면 불안도 사랑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런데도 그 불안에서 도망치려 하는 내가 있기에 사랑도 힘들다는 거겠지.
삶의 의미는 생존하기 위한 소유를 바탕으로 생겨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생존의 위기에서 삶의 의미 따위는 별로 관심이 가지 않는다. 먹고살기도 힘든데 의미가 있건 없건 일을 해야 돈을 벌고 그래야 생존이 가능할 수 있다면 삶의 의미 따위가 무엇이 문제일까 싶은 거지. 생존할 수 없을 때 느끼는 감정은 불안이 아니라 공포다.
공포 앞에서 삶은 본능적으로 움직이게 되겠지. 우선 살아야 하니까. 그렇기에 생존에 문제가 없을 때 오히려 불안에 시달리고 벗어나기 위한 움직임을 하기도 한다. 결국, 삶의 의미는 불안과 함께 찾아드는 삶의 질과 연결되는 문제였다.
나의 일상에서 가장 불안할 때를 생각해 본다. 남들은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나는 커피 원두가 바닥을 보일 때 급격히 불안해진다. 깜박 잊고 미리 주문하지 않아서 이틀을 버틸 수 없을 것이라는 데서부터 불안은 시작된다. 평소에 미리 준비하는데 이런 경우 찾아드는 불안이다.
물론 커피 원두가 없어도 생존하는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생존을 위한 소유가 전제되었을 때야 의미 있는 삶에 대해 고민도 한다는 거지.
주거가 불확실하고 생활할 수 있는 돈이 없을 때 삶의 의미를 고민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본의 노예처럼 불리기도 하고 돈이 있어야 행복하다는 의식이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거겠지. 그런데 이상한 것은 생존의 위기에 직면하지 않았다 해도 찾아드는 불안은 많았다.
그 근거를 찾아보면 결국, 이 사회에서 뿜어내는 외부적인 상황이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나의 불안이 늘어가는 이유가 혼자 힘으로 벗어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거다.
존 매드 감독의 영화 <베스트 엑조틱 메리 골드 호텔 2>에서 개인이 갖고 있는 불안을 어떻게 삶의 의미로 바꿀 수 있는지 공감하게 된다.
메리 골드 호텔의 확장 자금을 투자받기 위해 두 사람이 미국을 찾는다. 인도 전체를 아우르는 호텔 체인을 이루기 위한 메리 골드 호텔의 인도 청년 소니의 꿈을 위한 여행이다. 영국에서 평생 가정부 일을 하다 은퇴하고 남은 시간을 보내려 메리골드 호텔을 찾아왔지만 이제 도넬리 부인은 소니의 호텔 사업을 돕는 동료로서 동참한다.
메리골드 호텔의 주요 고객은 이분처럼 멋진 사람들이죠. 얼굴은 세계지도와 같고 정신 속엔 우주의 비밀이 담겨있어요.
도넬리 부인이 투자를 받기 위해 한 메리골드 호텔의 설명을 들어보자. 그녀는
정식으로 영업 시작한 지 8개월쯤 되었고 2단계 공사도 웬만큼 끝났어요. 거북이처럼 느린 게 이기는 거라지만 때론 무모하게 덤벼서 뭔가를 이뤄내죠. 뜨내기손님도 많지만 처음부터 함께 해 온 단골들이 있어요. 매달 정기적으로 건강 검진을 받고 소니가 아침마다 출석을 불러요. 간밤에 누가 죽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차원이죠. 투숙객 대부분이 인도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자신이 잘 아는 분야의 일을 하기도 하고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을 하기도 합니다.
투자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동료로서 참석한 도넬리 부인이 소니에게서 찾은 삶의 의미에서 온 결과였다. 노년은 삶의 가치를 타인에게 전할 기회이기도 하다는 점을 투자가가 공감할 수 있게 해 준 점이다. 돈으로 만들어지는 호텔의 환경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노년에 함께 할 젊은이의 패기, 그들 사이에 흐르는 따뜻한 걱정과 배려가 느껴질 때 삶에 의미가 부여되는 것은 아닐지. 노년의 불안과 젊은이의 불안이 상쇄된다. '혼자'가 아니라 '우리'일 수 있기에.
메리 골드 호텔에서는 노년의 삶이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젊은이가 그저 직업적으로 도움을 주며 돈의 힘으로 운영하는 것과 사람의 힘으로 함께 살아가는 것과의 차이이다. 그들 사이에 있는 것은 정신적 교류이다.
한 개인과 어느 한 세대만으로 삶의 의미는 지속 가능성 없는 일회성의 자기만족으로 끝날 경우가 많다는 것이기도 하다. 이럴 경우 삶은 공허해지겠지.
메리 골드 호텔에서 황혼을 맞는 그들은 삶의 불안을 끌어안고 어떤 식으로든 그것을 벗어나려 일을 벌이는 것이 아니다. 삶의 불안을 끌어안고서라도 일을 찾아 하는 것이다.
돈으로 노후 대책을 하는 접근방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거겠지. 돈을 쌓아두기 위해 젊음을 다 바쳐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해왔던 일을 노후 대책으로 이어지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
노년은 삶의 가치를 축적할 수 있는 현재에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내가 관심을 두는 만큼 대상이 나에게 관심 두기를 바라는 마음에 기대하게 될 때 불안해지기도 한다. 혹시나 하다가 역시나 하는 마음을 느끼게 되면 그 불안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도 한다. 그때 그저 함께 지낸 시간만으로도 의미를 둘 수 있다면 좋은 시간이었던 거다.
그렇다면 나의 경우에 삶의 의미는 어떤 일을 하든 누구를 만나든 나의 애정이 담긴 시간이었을 때 삶의 의미는 멈추지 않았던 것 같다. 거기에 불안이라는 감정까지 늘 공존해야만 했던 정신적인 가치, 내가 사는 이곳에서 더 많은 사람이 웃을 수 있는 세상을 바라는 소망이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