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거슬러
‘난장이 연작’이 씌어지던 시기의 이야기를 나는 정색을 하고 앉아 해 본 적이 없다. 그것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일 중의 하나이다. 어떤 식으로든 지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지금의 짐에 칠십 년대라는 과거의 짐을 겹쳐, 지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파괴와 거짓 희망, 모멸의 시대’의 제목을 달아 쓴 작가의 말 중 그 시작의 세 문장이다.
‘뫼비우스의 띠’로 시작되는 12편의 연작 소설은 한국사회에 여전히 던지고 있는 질문에서 시작되어 끊임없이 답을 찾아가야 하는 고행과 같다. 안과 겉이 따로 없는 곡면에서 되풀이되는 이 시대의 절망과도 같은 우울은 문학적 감성에 머물 수 없는 소설의 내부가 내 세계의 외부에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직사각형의 종이는 앞뒤 두 개의 평면을 갖지만, 이 종이를 한 번 꼬아 양 끝을 붙이면 안과 겉을 구분할 수 없게 된다.
“사법부도 등을 돌렸고, 정부와 의회도 등을 돌린 상황에서 공장 안의 동료들 말고는 기댈 곳도 갈 곳도 없었다.”
김정욱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사무국장은 이 말을 남기고 동료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과 함께 결국 12월 13일 새벽, 70m 높이의 굴뚝에 올라가 고공 농성을 시작했다. 대법원이 쌍용차의 노동자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단하고 파기환송해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낸 지 한 달 만이다. 2009년 정리해고 반대 투쟁으로 세 명의 쌍용차 노동자가 올라가 농성한 그곳에 5년이 지나 다시 오르는 그들의 심장은 어땠을까.
그날 또 하나의 죽음이 이어졌다. 26번째이다. 70m 굴뚝 위에 올라가 있는 쌍용차 해고 노동자 두 사람의 목소리가 불현듯이 내게로 전달되는 겨울비 내리는 밤의 기운은 너무 무거웠다. 그들의 투쟁은 이미 2,000일이 넘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사태처럼 너부러져 있는 부당한 해고 노동자들의 삶을 국가가 짓밟고 있는 현실이 이리도 멀쩡하게 돌아갈 수 있는 게 더 끔찍하게 다가온다. 중력이 가중된 느낌으로 존재의 무거움이다.
1970년대 한국사회를 지배했던 파시즘적, 독점 자본주의 담론은 더 악화하여 왔다. 이 책의 연작 중 마지막 작품인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의 화자는 자본가의 세계관을 완강하게 고수한다. 기존 질서를 흔들려고 하는 노동자들에게 적대감을 드러낸다. 자본가들이 공장을 지어 일을 주고 월급을 주었으니 자본가들의 노력으로 제일 많은 혜택을 입은 게 바로 노동자들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체제를 만든 이들이 자본가들이라는 점을 잊고 살도록 학습된 사회의 효과는 현대사회가 마주하는 일상들이다.
“우주인이나 비행접시의 목격 현상은 사회적인 스트레스의 순간에 나타나는 자기 방어의 결과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의 경우는 저희가 어떻게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이 책의 마지막은 에필로그로 ‘뫼비우스의 띠’에서 질문을 던진 수학선생에게 학생이 질문을 던진다. 수학선생의 대답은 이제 막 스물이 될 고등학교 3학년들에게 어려운 ‘선택’이다. 현실적이라는 말 앞에 당할 자가 없는 듯이 흘러가는 시간이지만 그 시간을 주시할 수 있는 눈빛은 날이 서야만 한다. 그의 말대로 지구에서 살든, 행성에 살든, 우리의 정신은 언제나 자유이니까 말이다.
“혁명이 필요할 때 우리는 혁명을 겪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자라지 못하고 있다. 제삼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경험한 그대로, 우리 땅에서도 혁명은 구체제의 작은 후퇴, 그리고 조그마한 개선들에 의해 저지되었다. 우리는 그것의 목격자이다.”
작가의 말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네 문장이다. 40년 가까이 흘러온 현재 그동안의 항쟁과 87 체제로의 변화를 지나서도 다시 되풀이되는 지배 블록을 깨부수기 위해, 한국 사회에서 사람을 지켜내기 위해서 이 책을 다시 읽어내어야만 하는 이유는 넘친다.
노동자로 만들지 않기 위해 노동자를 핍박하는 이가 되기를 원한 것은 아니었겠지. 다만 높은 벽을 넘어설 수 있는 아주 작은 희망도 보이지 않기에 노동자를 뛰어넘는 일이 오히려 더 가능하게 보였겠지. 슈퍼맨으로 만들고 싶은 사회, 미국의 상징이 되기도 한 슈퍼맨은 다수의 고통에는 관심이 있던가. 그럴싸한 ‘악’을 내세워 단지 악당 1인을 위해 무고한 수많은 이들이 예기치 않은 죽음을 맞아야 했던 것은 영화이기에 가능하다.
영화와 책에서나 가능한 일들이라고 여기던 것이 클라인의 병처럼 그 세계에서 나오니 바로 내가 숨 쉬고 있는 ‘여기’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어렵지 않다. 현대사회, 그 악당은 누구인가? 사람들을 거리에 내몰고도 멀쩡하게 아침을 맞을 당신과 나도 악당이 아니라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난장이가 달나라를 향해 쏘아 올린 작은 공, 그것이 희망이기를 바랐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희망고문이 되어 다시 내게로 달려든다.
2015. 01. 03.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