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남고가 원했던진학 코스는 아니었다. 다만, 부모님과 담임선생님의 말을 잘 따른 결과물이었다. 초등학교까지 운동부 생활을 하였고, 평소 운동하는 것을 좋아했다. 담임선생님께서는 공부와 좋아하는 운동을 병행하기엔 남자 중학교, 남자 고등학교가 좋다고 추천하셨다.
그렇게 진학한 남학교 생활은 별다른 어려움이 없이 흘러갔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마다 공을 가지고 나가서 땀을 흘리며 운동하였고, 공부할 때는 승부욕을 가지고 공부를 하였다. 운동, 공부, 게임 등 항상 친구들과 함께하니 즐거운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남중, 남고 진학이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대학교 진로를 정하기 전까지는.간호학과로 진로를 정한 뒤남녀공학이 아닌 남학교를 선택했던 과거를 후회했다.
초등학교 운동부 생활을 시작으로 여자들과 섞여서 뭔가를 해본 적이 없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이후 여자와 이야기 나눈 기억이라곤 엄마와의 대화 말곤 거의 없었다. 때문에 여자가 가득한 곳으로 진학하여 4년간의 학업 생활한다는 것이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간호학과 생활의 시작
처음 입학했던 대학교의 간호학과는 신설된 지 얼마 안 된 상태였다. 선배 중에는 남자가 1명도 없었으며, 신인생 총원 25명 중에도 남자가 2명밖에 없었다. 대학교 첫 수업 날 남자가 딱 2명인 것을 서로 확인하곤 한숨을 쉬며 인사했던 기억이 아직 남아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어떻게든 적응해보고자 초록색 포털사이트에 '여자와 대화하는 법'을 검색해보기도 했다. 그때 봤던 지식 답변에는 너무나 쉽다는 듯이 간결하게 적혀있었다.
Q: 여자와 어떻게 대화해야 하나요? A: 남자와 대화하듯이 이야기하시면 됩니다.
남자와 대화하는 것은 남중, 남고 출신인 나로서 누워서 뜨거운 죽 먹기보다 쉬웠다. 그래서 지식 답변에 힘을 얻어 동기들과 자신 있게 대화를 시도했지만, 너무 가벼운 대화 시도와 잘못된 주제 선정으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입히고 말았다. 이러한 과정들을 하나씩 겪으면서 남자와 여자가 대화하는 주제나 스타일이 다르다는 것을 조금씩 깨달아갔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몇 명의 동기들과 친해지게 되었고, 학교생활을 조금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어느새 1년이 흘러 1학년 과정이 끝났고, 바로 군 입대를하기로 결정했다. 덕분에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재학 중이었던 대학교는 간호학과가 이제 막 신설된 탓에 교육이나 실습 환경 등이 미흡하다는 것이 학교 생황 내내 마음에 걸렸고, 본가와의 거리로 인해 1년 생활이 벅차게 돌아갔던 기억이 강렬히 남아있었다. 군 생활을 하면서 오랜 시간 고민을 했고, 결국 휴학 상태인 대학교는 자퇴를 하고 재수를 하기로 결심하였다.
많은 남학생과의 새로운 학교 생활의 시작
군 전역 후 바로 자퇴 신청을 하였고, 예비군 정신(?)으로 1년 동안 다시 수능 공부를 시작하였다. 재수를 하던 중간 다른 학과로의 진학도 잠시 고민하였으나, 결국 한 번 더 도전해보자는 마음을 먹고 다시 간호학과로 방향을 잡았다. 다행인 것은 1년을 고생하며 공부한 덕에 오랜 역사를 가지고 큰 병원을 소유하고 있는 대학교로 입학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두 번째 경험하는 대학교 입학이고, 여자가 많은 환경이 조금 익숙해졌기에 큰 부담이 없이 학교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특히나 힘이 되었던 것은 1학년 100명 중 남자가 10명이나 된다는 것이었다.
사실 첫 대학교 때 25명 중 2명이니 8%이고, 두 번째 대학교 때 100명 중 10명이면 10%이니까 비율로 보면 별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비율이 아닌 실제 머릿수가 주는 의미는 더 컸다. 남자가 딱 두 명이 있는데 성격이 안 맞는다면 상상한 해도 외로운 학교 생활이 펼쳐질 것이다. 혹은 잘 맞더라도 둘 중에 한 명이 먼저 군대를 간다면 홀로 생활을 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하지만 10명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10명 중 서로 잘 맞는 사람이 아예 없을 확률도 낮고, 서로 의지하기가 좋았다. 그래서 첫 번째 학교보다 잘 적응했던 것 같다.
해가 갈수록 간호학과 남자 입학생의 숫자가 늘어났는데, 많아진 남학생들을 보면서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기도 했다. 간호학과 남학생들의 개성이 모두 뚜렷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사람이라는 게 똑같을 수는 없지만 특징을 표현하기 죻은 개성들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만의 4차원 세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 누구보다 섬세한 사람, 말수가 정말 없는 내성적인 사람, 과하게 터프한 사람, 애니메이션에 푹 빠져있는 사람, 종교 활동을 학업보다 열심히 하는 사람, 동굴 같은 목소리를 가진 사람, 웨이트 트레이닝에 중독된 사람, 기린처럼 키가 크고 말라서 톡 하면 뼈가 부러질 것 같은 사람 등등. 간호학과라는 특색 있는 길을 선택한 남자들이어서 그런 건지, 우연인 건지 모르겠다.(물론 필자 또한 남들에게는 평범해보이지 않았을 수 있다.) 이런 개성들 때문에 함께 생활한 시간들이 재미있었던 것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축구동아리는 학교 생활의 단비 같은 존재였다.
늘어난 숫자 덕분에 예전에는 꿈도 못 꾸던 것을 이루기도 했다. 바로 간호학과 축구동아리의 창단이었다. 그 전에는 남자가 축구를 할 수 있는 숫자도 안될뿐더러 모든 남자가 축구에 관심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동아리는커녕 같이 운동을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남학생이 1년에 10~15명씩 늘어나다 보니 충분한 숫자가 확보되었고 동아리를 창단할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 창단 후 주기적으로 운동을 했으며, 다른 대학교 간호학과 축구동아리와 친선경기는 물론이고 대한남자간호사회에서 주최하는 축구 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이러한 분위기를 통해 졸업한 선배가 학교로 찾아와 후배들과 소통을 하는 남학생 홈커밍 행사도 좀 더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적응하는데 도움이 된 것은 남학생 숫자의 증가뿐만이 아니었다. 교수님들이 여학생들의 이름은 다 못 외워도 남학생 이름은 소수이기 때문에 대부분 기억해주시고, 잘 적응하라고 이따금씩 밥을 사주시기도 했다. 이런 많은 배려들도 간호학과에 적응하고 학업에 집중하는데 큰 도움이 됐던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소수의 남자이기에 힘든 점들이 존재했다. 다음 글에서는 간호학과 남학생으로서 힘들었던 일들에 대해 나눠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