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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verflowToU Jan 03. 2020

남중,남고...간호학과?! 2편

[03] 꿀벌일까? 일벌일까?

이전 글, 《남중,남고...간호학과?! 1편》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수많은 여자들 사이에서 생활하는 남자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아름다운 꽃 사이로 날아다니며 꿀을 빨고 다니는 꿀벌이 생각나는가? 아니면 벌집을 짓고, 먹이를 모아 오는 등 열심히 일하는 일벌이 생각나는가?



  간호학과로 진학하게 되자 남고 친구들은 "모래밭에서 꽃밭으로 가게 돼서 좋겠다~", "꽃밭의 꿀벌이라니. 부럽다~", "나중에 소개팅 시켜주지 않으면 지구 끝까지 쫓아간다!"는 등 부러움 섞인 말들을 내뱉었다. 친구들 중에는 남자 중학교 - 남자 고등학교 - 공대 - 군대로 이어지는 테스토스테론(남성 호르몬)이 넘치는 진학과정을 밟는 친구들이 많이 있었다. 그 때문에 위의 말들이 농담이 아님을 마음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친구들의 이야기는 간호학과 생활을 더욱 기대하게 만들었다. 외모에 자신이 있다거나 언변이 뛰어나서 기대한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이후 대화 한 번 제대로 나눠보지 못한 '여자' 사람과 대화하고, 캠퍼스 생활을 하는 것에 대한 환상이 생긴 것이다. 다수의 남자와 적은 수의 여자가 있는 공학대학에서 소수의 여자들이 좋은 대접을 받는다고 들었기에 아름다운 미래를 꿈꿨던 것 같기도 하다.


일벌의 운명

  부푼 꿈을 품고 갔던 20살 첫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 저녁 시간에 술자리가 마련되었고, 너나 할 것 없이 서로의 신상을 물어보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간은 자정을 향해 달려갔고, 분위기는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하지만 술을 거의 마시지 않은 나는 이미 슬픈 결말을 맞이하고 있었다. 과하게 술을 마신 동기들이 만들어준 토 부침개를 치워야 했고, 지진이 났다며 손을 뻗고 기마자세를 하고 있는 만취된 친구를 진정시켜야 했다. 적당히 도와주고 내 방으로 갈 수도 있었겠지만 성격상 그러지 못하고 끝까지 남아서 정리를 했다. 그렇게 여러 동기들의 뒷정리를 도와주면서 일벌이 된 자신을 발견하였고, 앞으로의 간호학과 생활이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일벌이 된 간호학과 남학생의 임무


  수많은 여학생들과 간호학과 생활을 하면서 남학생으로써 해야 했던 일들이 있다. 어떨 땐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먼저 나서서 했던 일도 있지만, 반 강제로 하게 되는 일들이 많이 있었다. 남학생으로써 경험했던 일벌의 임무(?)를 몇 가지만 나눠보려고 한다.


  많이 해야 했던 일들 중에 하나는 강의와 연관되어있는 음향 및 영상, 컴퓨터 문제 해결이었다. 교수님이나 강사님이 수업을 하시러 오셨는데 스피커에서 마이크 소리가 안 나오거나 컴퓨터에 문제가 생겨 부팅이 안 되는 일들이 생기면 주어지는 임무이다. 일반적으로 여학생들보단 남학생들이 기계와 컴퓨터에 익숙하기 때문에 남학생을 찾곤 한다. 마이크 상태, 음향 믹서 등을 확인하여 해결하고, 컴퓨터 시스템 오류를 바로잡기도 한다. 해결을 못하면 수업 진행이 되지 않기 때문에 지연될수록 모든 학생들의 시선이 집중되므로 빠르게 해결해야 한다. 전문가처럼 빠르고 간결한 움직임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 학생들의 갈채를 받는 경우도 종종 있다. 저학년 시절 몇십 명의 여학생들이 쳐다보는 너무 부담스러워서 그랬는지 초인적인 속도로 문제를 해결곤 했다.


  대학교에서는 수많은 조별과제들을 해내야 된다. 조에서 리더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한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조장을 선출해야 했다. 누군가 지원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추천을 받거나 서로 지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지목하는 방법을 통해 조장을 뽑자고 하면 매우 높은 확률로 남학생이 선택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때문에 각 조의 조장들을 일으켜 세우면 남학생들이 우르르 일어나는 상황들을 많이 보았다. 조장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잡다한 일들이 있고 과제 발표도 해야 하는 경우들이 많아 귀찮긴 하지만, 교수님께 깊은 인상을 주기도 좋아 장점이 있는 임무이기도 했다.

바쁘다 바빠.

  무거운 짐을 나르는 일들말할 필요도 없다. 가장 기본 중의 기본 임무였다. 무거운 짐을 옮겨야 하는 일이 생기면 남학생들에게 연락이 오는데, 자신의 학년과 관련된 짐뿐 아니라 간호대학 전체와 관련된 짐을 옮기는 일에도 많이 소환되었다. 간혹 외부업체 직원처럼 힘들게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일을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노동이 힘들었을 때에는 교수님이 꿀 같은 밥을 사주시기도 하였다.


  다른 학생을 대표하여 교수님과 소통하는 임무도 있었다. 학사 일정이나 조별과제, 졸업 논문 등과 관련하여 교수님과 소통하는 임무였다. 언제나 그렇듯 높은 분과의 의사소통은 조심스럽고 어렵기 때문에 난이도가 매우 높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학생회에 속하게 되거나 과대단에 들어가 있는 경우 많이 수행하게 된다.

  필자는 군대와 재수로 인해 동기들과 4살 차이 나는 '오빠'였지만, 친근한 이미지 때문인지 평소에 오빠라는 단어를 좀처럼 듣기 힘들었다. 하지만 해당 임무를 해야 할 때는 일벌이 아닌 '오빠'로 불리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어떤 경험이든 경험은 사람을 성장시킨다


  공부를 잘하고, 학업에 열중하는 여자 동기들 사이에서 학과 생활을 하는 것만으로도 벅찼지만, 남학생으로서 해야 하는 일들도 스트레스를 받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런 과정들을 통해 여자가 많은 환경에서도 잘 적응할 수 있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특히나 학교보다 냉철한 '병원'이라는 곳에서 소수의 남자로 생활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지금, 필자가 과거에 남중, 남고를 나와서 여자들과 말도 잘 못했었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잘 믿지 못한다. 그만큼 그 사이에 성격이 많이 변화되었고, 의사소통 능력도 크게 성장했다. 간호학과 남학생으로 학과 생활을 한 것이 큰 역할을 했으리라 생각된다. 어떤 경험이든 사람을 성장시킨다는 사실을 머릿속에 리마인드 시킬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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