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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verflowToU Jan 12. 2020

7번 환자 인계드리겠습니다.

[06] 인수인계 시간 단축을 위한 바람

"7번 환자 인계드리겠습니다. OOO님 56세 남자분이시고, Dyspnea(호흡곤란) 때문에 응급실 통해서 내원한 뒤 Work-up한 Echo(초음파 검사)상에서 AS(Aortic valve Stenosis, 대동맥판막 협착증)가 발견되어 AVR(Aortic Valve Replacement, 대동맥판 막치 환술)과 MVP(Mitral Valve Plasty, 승모판막성형술)를 하고 금일 오후 2시경에 ICU(중환자실)로 나오셨습니다."
"MVP는 왜 하고 나온 거야?"
"아.. 음.. 어.. 찾아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초음파상에서 뭐가 발견됐거나 수술 중에 문제가 발견됐으니깐 성형술을 하고 나왔을 거 아니야. 그럼 왜 했는지 찾아서 히스토리에 같이 적어놔야죠 선생님. 찾아서 적어 놓고 퇴근하기 전에 확인받고 가세요."
"네.. 알겠습니다.."


  위 대화는 신규 간호사와 선배 간호사 사이의 인수인계 각색한 대화이다. 신규 간호사에게 인수인계는 매우 떨리는 순간이다. 사소한 것 하나 하나가 혼날거리기 때문이다. 원을 가기 싫어서 울고 떼쓰는 어린아이들의 마음이 이런 마음이었을까. 인수인계 시간은 무엇보다도 힘들고 무서운 시간이었다. 그래서 인수인계를 하는 시간보 차라리 밥을 못 먹을 정도로 바쁘게 일하는 시간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어디서 어떤 내용을 빼먹고 말할지 몰라 계속 연습하고 되뇌지만, 머릿속은 '오늘은 또 어떤 내용으로 혼날까'에 대한 걱정이 가득했다. '환자가 일반병동으로 전동 가서 인수인계를 안 하고 교대가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지만 야속하게도 항상 그 시간은 어김없이 찾아와 나의 숨통을 조여왔다.




  인수인계는 병원마다 방식이 다르지만 크게는 구두(혹은 녹음)로만 전달하는 방식, 기록으로 인계하되 궁금한 것에 대해서만 문답을 하는 방식, 인수자와 인계자가 함께 기록을 보면서 구두로 인계하는 방식 등이 있다. 대부분의 병원은 기록들을 함께 체크하면서 말로 전달하는 세 번째 방식을 이용하곤 한다.


  내가 근무했던 중환자실도 세 번째 방식을 쓰고 있었는데, 훌륭한 인수인계를 위해서는 2가지 능력이 필요했다. 한 가지는 일하면서 발생한 일들을 꼼꼼하면서도 간결하게 정리해두는 능력이고, 다른 한 가지는 각 환자의 입원부터 현재까지 일어난 일들과 현재 환자의 상황을 정확하고 빠르게 브리핑하는 능력이다.



신규 간호사인 나에겐 두 가지 능력이 다 없었다.


  간호학과에서는 이런 능력을 길러주거나 교육시켜주지 않았다.  나뿐 아니라 동기나 선후배들 중에도 인수인계가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한 동기는 인수인계를 하다가 선배 간호사의 후배를 아끼는 마음(?)이 담긴 '등짝 스매싱'을 맞고 자존감이 떨어져 한동안 많이 힘들어하기도 했다.


  아직 일처리가 미숙한 탓에 기록을 해야 한다고 혼잣말하면서도 컴퓨터에 적을 여유가 없어서 못 적다가 잊어버리는 일이 꽤나 있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첩에라도 급하게 적어뒀다가 시간이 될 때 기록하기도 했는데, 급하게 쓴 글씨를 잘 못 옮겨 적는 바람에 부정확한 인계를 해 혼나는 일들도 있었다. 또한 스토리텔링을 잘하는 여자 동기들에 비해 부족한 말솜씨로 인해 스스로 좌절감에 빠지기도 했다. 그래서 일을 시작하기 전에 EMR(전자의무기록) 접근이 허가된 기숙사 공용 피씨에서 인수인계하는 연습을 여러 번 반복하여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했었다.


인수인계는 무엇보다 힘들고 무서운 시간이었다.


  인수인계를 계속 반복하고 일이 익숙해지면서 인수인계를 자연스럽게 하는 수준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인수인계에 소요되는 시간은 길기만 했다. 물론 신규 간호사주거나 받는 시간보다는 짧았지만 여전히 인수인계는 오래 걸렸고, 그로 인한 초과근무는 계속 존재했다. 인수인계를 주고 나서 다음 근무자가 환자 이중 확인을 하는 과정이 끝나지 않는 이상 밀린 업무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빠른 퇴근은 어려웠다.



간호사들은 현재 인수인계 방식에 대해서 불만족스러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300 병상 이상의 병원 중 일반병동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를 대상으로 서술적 조사 및 분석을 한 『임상간호사의 인수인계 방식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간호사들 현재의 인수인계 방식에 대해서 불만족스러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 대부분의 병원 간호사 스테이션에 앉아 구두로 인수인계를 한다고 조사되었는데 이는 간호사 스테이션에 있는 전산 혹은 종이 기록을 보면서 말로 인수인계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의 인수인계는 최신 정보에 대해서 전달받을 수 있고, 이해하지 못한 정보에 대해 즉각적으로 질문하기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간호사 스테이션에서 인수인계를 하다 보니 환자나 보호자들이 스테이션으로 와서 요청하는 요구사항을 들어주기 위해 인수인계가 중단되는 경우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오픈된 스테이션에서의 인계는 집중력을 떨어트리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또한 구두로 내용을 전달하다 보면 환자의 진료나 간호에 전혀 쓸모없는 정보들을 주고받기도 하면서 길어지는 일도 있다. 이러한 사유들이 조금씩 누적되어 인수인계 시간이 길어지면서, 소요되는 시간이 평균적으로 40분가량 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렇다 보니 인수인계 후 퇴근시간을 훌쩍 넘은 시간에도 뒷정리를 하면서 일을 하고 있는 간호사를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근무자의 인식 변화와

인계 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인수인계로 인한 초과근무를 줄이기 위해서는 근무자의 인식 변화와 인계 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먼저 인수인계를 받 근무자는 이전 근무자의 잔여 업무 처리와 빠른 퇴근을 위해 환자 기록을 근무 전에 자세하게 파악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미리 파악할수록 구두로 전달받아야 하는 내용이 줄어들 것이고, 궁금한 부분만 간략하게 질문하고 답변을 받음으로써 인수인계 시간을 짧고 알차게 보낼 수 있게 된다. 위와 같은 마인드로 준비 후 인수인계에 임한다면 보다 효율적으로 변할 것이다.


  또한 히스토리와 환자 상태를 일일이 읽으면서 중요한 내용을 첨언해서 전달하는 방식이 아닌, 좀 더 자세한 기록 위주의 전달 방법을 이용한다면 인수인계 시간을 줄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생소한 약어나 특이사항 같이 궁금해 할 수 있는 부분은 자세히 적고, 병동 특성상 반복되는 내용은 간략하게 적음으로써 기록만 봐도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하는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다음 근무자가 미리 출근하여 읽어보고 궁금증이 해결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만 질의 시간을 갖는다면 빠르게 인수인계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다. 


불가능하지 않다.


  실제로, 환자를 충분히 파악하고 인수인계를 받으러 들어가고, 다음 근무자도 충분한 파악 후 나에게 왔을 때 큰 단축 효과를 다. 지만 시간 단축을 위해서는 호사 전체의 인식 변화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나는 미리 파악해서 빨리 인수인계를 받았는데 다음 근무자는 파악을 안 하고 와서 기록에 있는 내용임에도 계속해서 질문을 한다거나 히스토리를 읽어줄 것을 요구한다면 인수인계 시간의 단축은 이루어질 수 없다. 나보다 이전 근무자를 빨리 보내주는 것이 나 또한 빨리 퇴근할 수 있는 길임을 인지하고 인수인계에 임한다면 보다 나은 인수인계 환경이 조성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빠른 퇴근이 가져다주는 기쁨을 마음껏 누리는 간호사들이 늘어나길 바라본다.



  인식 변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인수인계를 줄 때는 대충 주고, 받을 때는 세상 누구보다도 꼼꼼히 받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디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는 문화들이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1) 김은만, 김선호, 이향열. 『임상간호사의 인수인계 인식에 관한 연구』. 대한보건연구 41-49page.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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