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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보람 Feb 27. 2023

약속이 취소되면 좋은데 좋다고 말도 못 하고

그래도 전화나 카톡보단 마주보는 게 좋아요


   나는 배터리가 일체형인 스마트폰이다. 내 전용 충전기는 휴대가 불가능하며 단 한 곳에만 설치 가능하다. 바로 내가 사는 집이다. 일상에서 열을 내뿜으며 여러 가지 기능을 돌리다가 현관을 열고 집으로 들어서면 액정이 까맣게 변하고 충전을 알리는 아이콘이 뜬다. 집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더라도 계속 충전 중인 상태가 유지된다. 집에서 하는 일들은 밥을 먹거나, 빨래나 청소를 하는 등 나를 돌보고 에너지를 채울 수 있는 일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최근 1인가구의 삶에 대한 인터뷰를 요청받았다. 연구 목적의 인터뷰로, 꽤나 어려운 주제였다. 인터뷰 일자는 지난주 일요일로 정해졌고 시일이 다가올수록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을 준비하면서도 연구자들이 원하는 게 이게 맞는지 고민했다. 그러다 인터뷰 전일 늦은 밤, 인터뷰에 참여하기로 한 다른 사람들이 일자 변경을 요청했고 그렇게 나의 인터뷰 일정도 미뤄지게 되었다. 사실 일이 미뤄질수록 부담은 더 커진다. 특히나 사례비가 적지 않은 일은 더 완벽하게 하려고 신경 쓰게 되면서 자꾸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된다. 잘하든 못하든 일단 시작해야지,라고 생각해도 내 답변이 내가 원하는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 땐 좌절하고 미루다가 시일이 다가오면 또 괴로워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아무튼 불안을 유예했다는 생각에 잠시나마 안정을 되찾는다. 하지만 약속이 취소되는 경우는 또 다르다. 개인과의 약속은 종종 취소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사실... 좋을 때가 더 많다. 뭐 취소하는 방식은 전화든 카톡이든 뭐든 상관없다. 그냥 약속이 취소되었고 그 시간을 내 방식으로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는 게 즐거운 것이다. 물론 자주 만나기 힘든 사람과의 약속은 또 언제를 기약해야 할지 답답하기도 하다. 그래도 나는 전화나 문자보다는 직접 만나는 게 좋다. 만나면 만나는 대로 그 사람과의 시간이 즐겁기도 하지만 약속이 취소되더라도 저엉~말 괜찮다. 정말, 진짜, 찐!



   나는 밖에 있다가도 집에 들어갈 때면 설레기 시작한다. 내 전용 충전기가 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수 있으며, 어떤 것을 선택하든 나를 위한 결론으로 이어지는 곳에서 포근하게 안겨 있다 완충 후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한다. 그래도 때로는 충전 효율을 높이기 위한 외출도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다. 지금 나의 충전 상태는 80%다. 내일은 100%로 채워진 하루를 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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