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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보람 Feb 28. 2023

마음은 같지만, 표현이 다를 뿐

서로에게 다다를 수 있다면

   피자는 한 판에 6조각 또는 8조각으로 나눠지고 각각의 조각 또한 크기가 비슷하다. 하지만 마음은 피자처럼 균일하게 조각낼 수 없어서 항상 엉망진창이다. 내 마음은 수없이 조각나있지만 모두 크기가 다르다. 늘 거절당하기만 하니 누군가에게 눈길이 가도 큰 조각을 쉽게 내주지 않는다. 상처받을 걸 알면서 눈 딱 감고 큰 조각을 내주었지만 닿지 않으면 파사삭 부서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마음이 회복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관심 없는 사람들은 나를 좋은 사람으로 생각한다. 내가 관심이 없으니 간섭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돌려받지 못하더라도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의 호의만 보여준다. 나는 나름 계산적인데 이게 다른 사람보다는 호의가 과한 편인 것 같긴 하다. 반면 호감이 있는 사람에게는 같은 수준(또는 아주 약간 더)의 배려를 하지만 돌아오는 건 지나간 사람이 제일 좋았다는 말 뿐이다. 그리고 나는 이 말에 부상을 입고 내가 해 준 배려를 세어보기 시작한다. 내가 당신한테 해 준 게 얼만데...



   호감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에게 하는 배려가 서로 다른 건 아니다. 호감이 있든 없든 인간관계는 어느 정도 지속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전자는 그게 배려인 줄 모르고 (내가 무슨 짓을 하든) 받기만 하며, 후자는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면서 어떻게든 돌려주려고 한다. 아, 이건 내가 사람을 보는 눈이 모자라서 그런 거네. 알아봐 주는 사람에게 더 마음을 써야 하는 건데. 쓰다 보니 결론이 명쾌해졌다.



   그런데 호의를 돌려주는 방식도 '내가 원하는' 것이어야 내 호의에 보답받는다고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물론 나도 호의를 베풀 땐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일까 생각해보곤 한다. 하지만 내가 모든 사람이 어떤 걸 호의로 느끼는지 알 수 없으니 가장 보편적인 방법을 택하게 된다. 고양이가 자신을 구해준 사람에게 쥐를 잡아다 주었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고양이에게 쥐를 잡는 건 자신의 먹이를 자기가 먹지 않고 사람에게 선물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 그 사람이 고마움을 표현하는 방법이 나와 같지 않더라도 내가 알아볼 수 있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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