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두가 자신은 떳떳하다고 말하지만, 누구도 '그것' 앞에서 끝까지 기개를 떨치지는 못한다.
그것은 대상의 죄악을 비추는 거울이다. 우리는 '그것'을 단죄의 석상이라고 부른다.
단죄의 석상을 마주한 자, 즉 '대상'은 즉시 자신의 얼굴에 드러난 평온을 빼앗긴다.
인간이라면 필히 자신의 비참한 인간성이 표면 위로 오르지 못하도록 온갖 장치를 고안해 낸다. 사회적 가면이라고도 불리는 표정이 인간이 손쉽게 구현해 내는 단순하고도 극악무도한 장치이자, 인간이 가장 먼저 습득하게 되는 자기 방어기제이다.
단죄의 석상은 손쉽게 대상의 사회적 가면을 쥐어뜯음으로써 그 기능을 잃게 한다. 대상은 곧장 태엽이 끊긴 시계의 초침이 되어 온몸을 바들바들 떨게 된다. 대상을 제외한 모두가 대상의 온전치 못함을 쉽사리 파악할 수 있다. 대상을 제외한 모두가 불규칙한 떨림의 원인 또한 쉽게 알 수 있다. 대상은 방어기제가 작동하지 않는 원초적인 공포를 처음 경험한 것이 분명하다. 대상은 단죄의 석상에 비친 자신의 추악함을 대상에서 벗어난 제3의 객체로써 받아들이는 것이 분명하다.
2.
독실한 신자인 C는 매일같이 눈을 감고 기도한다. 하지만 그의 기도는 결코 신에게 닿지 못한다.
무신론자인 A는 때때로 기도한다. 주로 자신을 불행의 골목으로 내몬 누군가를 저주하는 내용이다. 그의 기도 또한 결코 신에게 닿지 못한다.
신은 인간의 기도를 쉽게 들어주지 않는다. 대신에 모든 인간에게 몇 가지 공통된 저주를 선사했다.
첫째, 모든 인간은 죽는다.
둘째, 모든 인간은 죄를 짓는다.
이 이상의 저주는 생략한다. 알려하지 마라. 이것은 이미 우리에게 깃들어 있으니.
아아, 정정하겠다. 이들을 저주라고 단정할 수 없다. 이들은 저주와 축복 그 어딘가에서 은밀하게 삶을 노리고 있다.
3.
그녀의 앞에 '그것'이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저 하늘 위로 치켜들고 온갖 날짐승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그녀가 자신의 옷을 길고 가느다란 손톱으로 찢어대기 시작한다.
그녀의 온몸이 산들바람을 맞이한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한다.
그녀의 성대가 서서히 기능을 상실한다.
그녀의 갈라진 목소리가 서서히 돼지 멱따는 소리로 수렴한다.
그녀는 망가져가는 성대로 소리를 내기 위해 처절하게 투쟁한다.
그녀의 주위에 하얀 의복이 부산스럽게 놓여있다.
살짝 접힌 의복이 만든 굴곡으로 진홍빛 물결이 넘실대듯 춤을 춘다.
진홍빛 물결 위에 분홍빛 살점이 떠다닌다.
수면 아래로 부러진 손톱이 살포시 가라앉는다.
그녀의 손이 끝없이 하행한다.
그녀의 발이 끝없이 상행한다.
그녀의 얼굴이 못난 팽이가 되어 민낯을 드러낸 육체 위에서 빙글빙글 돈다.
'그것'이 그녀를 찾았던가.
그녀가 '그것'을 찾았던가.
아무렴 상관없다. 둘의 관계성은 서서히 이승을 벗어나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