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삼 형제

by 겨울늑대

덜컹거리는 경차 뒷좌석에 앉아 멍하니 앞을 바라본다. 이것 말고는 딱히 할 것도 없다.

경차의 덜컹거림에 약간의 속 쓰림이 느껴진다. 순간 운전기사에게 한소리 하고 싶은 충동이 들지만 일단 참는다.

그래, 덜컹거림의 원인이 꼭 기사에게 있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도로 사정이 안 좋을 수도 있고, 차량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

그렇게 침묵의 주행을 다시 멍하니 받아들인다. 흔한 라디오 소리 따위도 들리지 않는다. 나를 포함한 경차 속 3인 모두 청각적 공허함에 익숙한 듯하다.

"거참, 더럽게 천천히 가네."

긴 침묵을 깬 건 기사의 짧은 불평이었다. 기사는 곁눈질로 오른쪽 백미러를 잠시 바라보더니 차선을 변경한다.

"깜빡이를 키셔야죠." 조수석에 앉은 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의 지적에 심기가 불편했는지 기사는 곁눈질로 형을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그리곤 다시 불평을 늘어놓았다.

"2차선으로 옮기니까 이번엔 앞차가 버러지같이 운전을 하는군."

운전기사가 꽤나 독특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차를 몰며 스포츠카 행세를 하는군.

이번에는 기사의 곁눈질이 왼쪽 백미러를 향했다. 경차는 다시 국도의 1차선 위를 주행했다.

"기사님, 깜빡이 좀 키시라니까요. 이러다 사고 나면 다 우리 과실이라고요." 형이 말했다.

순간 두 사람의 고개가 돌아가더니 서로를 마주 보는 형태가 되었다. 전방 주시는 뒷좌석에 탄 나의 몫이 되었다.

그렇기에 나는 서둘러 말했다. "기사님, 천천히 가셔도 돼요. 진정하시죠."

기사의 목이 다시 한번 움직였다. 후방 주시를 하는 경차 운전자를 눈앞에서 보게 될 줄이야. 기사의 눈에 붉은 핏줄이 올라와 있었다.

"이 새끼가 보자 보자 하니까." 형의 왼쪽 팔이 바람 가르는 소리를 내며 기사를 향했다. 형의 손끝에 기사의 셔츠 깃이 잡혀 있었다.

나는 전방 주시를 하며, 두 사람을 진정시킬 말을 고민하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를 생각했다. 동시에 여러 가지를 처리하려니 머리가 뜨거워지며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했다.

그때, 눈앞 차량의 후미등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차 세워! 브레이크 밟으라고." 내가 외쳤다.

그러자 기사와 형은 동시에 전방을 주시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경차가 앞 화물트럭과 충돌하며 큰 마찰음을 냈다. 경차의 앞부분에서 희뿌연 연기가 올라왔다. 기사와 형은 부푼 에어백과 차량 좌석 사이에 짓눌려 있었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어 보였다.

나는 천천히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차량 앞 유리창 너머로 계속해서 올라오는 연기의 원인이 앞의 화물인지 우리의 경차인지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연기 사이로 시야를 비집어 넣자, 희미하게 바닥에 놓인 하얀 번호판 두 개가 보였다. 화물과 경차 사이에는 30cm 정도의 간격이 벌어져 있었다. 이 정도 충격이라면 화물에 탄 사람들 또한 큰 부상을 입지는 않았을 것이다. 30cm 정도의 간격 사이로 검은 액체가 일정한 주기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 검은 액체가 어디서 흘러내리는지 정확히 판별하기는 힘들었다. 더 이상 앞 유리창을 통해 얻을 정보는 없을 것 같아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정도 접촉 사고는 흔한 것이라는 듯 주위 차량들이 평소처럼 바람을 가르며 주행하고 있었다. 저 멀리 인도를 오가는 사람들 또한 고개를 살짝 우리 쪽으로 향했을 뿐, 자기 갈 길을 가고 있었다.

형과 기사는 부푼 에어백을 젖히고 천장에 달린 블랙박스를 매만지고 있었다. 이때까지는 형과 기사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형과 기사를 놔둔 채 조심스럽게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묘한 의구심을 가진 채 천천히 발걸음을 앞으로 옮겼다.

왜 화물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이지. 분명 이건 전방 주시를 하지 않은 우리의 잘못이다. 혹시 화물 안에 탄 사람들이 크게 다치기라도 한 것인가.

불안한 마음에 발걸음을 재촉해 서둘러 화물의 앞부분까지 나아갔다. 도중에 두어 번 넘어질 뻔했다. 아스팔트를 흥건하게 적신 검은 액체의 정체는 차량에서 흘러나온 기름이었다.

나는 헛기침을 두 번하고 오른손을 화물 창문에 두드렸다.

"계십니까? 뒤 차량의 승객입니다. 사고가 난 지 꽤 시간이 흘렀는데 아직 나오시지 않는 것이 걱정이 돼서요. 어디 다치신데라도 있으신가요?"

조용히 창문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짙게 선팅이 된 창문 틈새로 진한 맥주 누린내가 났다. 음주 운전을 한 것인가.

"아이고 죄송합니다. 요 앞에 마실 나온다는 것이 그만."

맥주 냄새를 풍기는 목소리는 낮고 갈라져 있었다. 그 목소리에는 짙은 세월의 무게가 감겨 있었다. 목소리의 주인은 늙은 남성이었다. 그 옆에 부인으로 추정되는 노인이 타 있었다. 이들의 얼굴 표면에 층층이 자리 잡은 주름 위로 붉은 취기가 돌고 있었다. 그들은 그저 평범한 노부부일 뿐이었다. 얼굴의 주름살 위를 죄책감의 그림자가 깊게 뒤덮고 있었다.

"다치신 데는 없으시지요? 저희는 멀쩡합니다." 내가 말했다.

"경찰 불러야겠죠?"

"그렇게 하시죠. 어르신 무리하지 마시고 차 안에 계시죠. 경찰 오면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노부부는 고개를 여러 차례 끄덕였다.

나는 발걸음을 다시 경차로 향했다. 형과 기사는 언제 싸웠냐는 듯이 진중히 사고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다.

"어때, 화물 안 사람들은?" 토론을 중단하고 형이 내게 물었다.

"두 분 다 멀쩡하셔. 연로한 노부부이셔. 경찰 부르자.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잠깐만. 트럭 앞뒤로 블랙박스는 확인했어?"

"아니 그건 왜?"

"가만히 있어봐. 아직 경찰은 부르지 말고. 나갔다 올게."

화물을 향하는 형의 뒷모습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기름칠이 잘 된 아스팔트 위에서 형은 두 팔을 펭귄처럼 허둥거렸으나 결코 넘어지지는 않았다. 그런 형의 뒷모습이 오늘따라 너무도 우스꽝스럽다고 느껴졌다.

"죄송해요. 제가 괜히 흥분해서."

기사의 목소리 톤이 차분해져 있었다. 이제 와서 죄책감이라도 느끼신다는 것인가.

"괜찮습니다. 다치신 분들은 없는 것 같으니 그걸로 됐습니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형이 웃음을 가득 머금은 채 천천히 경차로 돌아왔다.

"화물에 탄 노인네들 한잔했어. 경찰 안 부르고 뭐해?"

형의 말에 대꾸하고 싶지가 않아서 그저 시키는 대로 했다.

형의 앞주머니가 불룩했다. 그리고 차량 천장의 블랙박스는 자취를 감춘 뒤였다. 순간 나는 토할 듯이 강렬한 메스꺼움을 느끼며 온 근육의 힘이 풀렸다. 그리곤 식은땀이 내 온몸을 뒤덮기 시작했다. 경차 내부에 돼지 잡내가 났다. 그 잡내에 메스꺼움은 더욱 강해졌고, 그럴수록 잡내의 농도가 더욱 짙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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