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좀 못 잤어도 괜찮아. 드디어 간다.
디스코(고양이 아들 시스코와 고양이 딸 데이지)와 남편, 그리고 나,
우리 네 가족이 시조부모님 댁에 머문 지 이틀째 되던 밤이었다.
여느 때처럼 남편은 침대 왼쪽, 나는 오른쪽에 누웠고,
디스코는 우리 발치에서 잠들어가고 있었다.
막 잠이 들려던 찰나, 남편이 내 왼팔을 톡톡 치며 속삭였다.
"무슨 소리 안 들려?”
“응? 무슨 소리?”
“잘 들어봐.”
어둠 속에서 남편이 천장을 주시하고 있었다.
나도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는 순간,
‘다다다 다다~’
뭔가가 천장 위를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쥐야?”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속삭였다.
“아무래도 그런 거 같아.”
발밑을 보니 시스코와 데이지도 귀를 쫑긋 세우고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스코: “뭐지? 저 소리는?”
데이지: (호기심에 찬 목소리로) “뭐지? 뭐지?”
당장 어쩔 도리가 없어 천장을 잠시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눈을 떠보니 어느새 아침이었다.
아침 식사 자리에서 남편과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께 간밤에 들은 소리에 대해 말씀드렸다.
할아버지께서 웃으며 말씀하셨다.
“지난번에 아다카스가 아래층 창고 근처에서 쥐 한 마리를 입에 물고 있더라고.
얼마나 대견하던지!”
할머니도 “아다카스가 잠만 자는 줄 알았는데, 제 역할을 톡톡히 하네.” 하시며 칭찬하셨다.
남편과 나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한 채 아침 식사를 마쳤고,
남편의 출국 전 자동차를 팔기 위해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그날 밤, 다시 ‘다다다다~’하는 소리가 천장에서 들려왔다.
쥐들이 찍찍거리는 소리까지 선명했다.
“설마 천장을 뚫고 내려오진 않겠지?”
내가 묻자 남편은 “설마~”라며 웃었지만,
그의 목소리에서도 불안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밤새 잠을 설쳤다.
다음날 아침, 남편이 총대를 메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어젯밤에도 쥐 소리 때문에 잠을 설쳤어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는 한 달에 한 번씩 해충 방제 업체에서 점검을 나온다며,
이 달엔 일정을 앞당길 수 있는지 확인해 보겠다고 하셨다.
다행히 다음 날, 남편이 싱가포르로 출국하는 아침에 업체 직원이 방문했다.
직원은 우리가 머무는 방 주변을 살피고, 쥐약을 몇 군데 두고 갔다.
다음 날 아침, 할머니가 물으셨다.
“잘 잤니?
“네, 쥐 소리도 안 들렸어요.”
나는 그렇게 대답했지만, 그날 밤에도 잠을 설쳤다.
아마 옆자리의 허전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해충 방제 업체 직원이 두고 간 쥐약은 하루용이었던 모양이다.
그날 밤에도 천장에서 달리고 찍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생각해 보니 우리가 지내는 방 바로 위가 주방이었다.
‘쥐들이 음식 냄새를 맡고 오는 걸까?’
시스코와 데이지는 원래부터 숨바꼭질을 즐겼다.
보통 데이지가 숨고, 시스코가 찾는 역할이었다.
처음엔 데이지가 붙박이장에 자주 들어가는 게 숨바꼭질 때문이라 여겼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니 생각이 바뀌었다.
‘혹시 데이지가 쥐를 보는 건 아닐까?’
‘며칠만 더 지내면 되니까 조금만 참자. 낮에 잠깐 자면 되지.’
스스로를 달래며,
‘게다가 나에겐 든든한 천적이 둘이나 있잖아.’
근거 없이 안심을 했다.
하지만, 시조부모님 댁에 머무는 날이 열흘에서 열여덟 날로 늘어나자,
이제는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할 것 같았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매일 저녁 정성껏 식사를 준비하셨다.
음식의 질은 물론 양도 넉넉해서, 다음 날 먹을 음식이 늘 남곤 했다.
가까운 시일 내에 남은 음식을 드시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잊어버리시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냉장고는 남은 음식들로 가득했고,
실온에 둔 음식에는 곰팡이가 피기도 했다.
나도 여든을 넘기면 그럴 수 있으니,
그분들을 나무랄 수는 없었다.
“이건 버려야겠어요.”
라고 조심스레 말씀드리면,
“밖에 동물들 주면 되지!” 하시면서 가지고 나가셨다.
어디에 두시나 봤더니, 주방 바로 앞마당이었다.
나는 주방 정리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저, 시간 좀 빨리 가게,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싶은데요.
괜찮으시면 냉장고 정리를 제가 좀 해도 될까요?”
할머니께서는 흔쾌히 “그럼, 되고말고!”라고 답하셨다.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과 상한 음식을 모으니 커다란 봉투 한가득이었다.
실온 식재료들도 ‘밖의 동물들’에게 준다며 집에서 조금 떨어진 숲 속에 가져다 두었다.
그 후로도 천장의 쥐소리는 계속됐지만,
이상하게도 전처럼 불안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내가 할 일을 하고 있다는’ 묘한 자부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반갑지 않은 손님은, 내 할 일에 집중하며 무시하는 게 최고!
며칠 뒤,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디스코의 건강증명서가 드디어 USDA (미국 농무부)에서 승인되어
퀵으로 오고 있다는 것이다.
시어머니와 이모님도 다음날 싱가포르행 비행에 함께하기 위해 도착하셨다.
출국 전날 저녁식사 자리.
며칠째 이어진 잠 부족에 와인을 마셔서인지,
정신이 몽롱해졌다.
아니, 어쩌면 내일 출발한다는 사실이
꿈인지 생시인지 믿기지 않아서였을지도.
'잠 좀 못 잤어도 괜찮아.
드디어 간다.'
곧 이어질 디스코 싱여행기 9화,
드디어 디스코가 싱가포르로 떠납니다.
디스코의 비행 이야기, 함께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