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원결의
“야옹~ 야옹~ 야옹~”
남편이 자고 있는 방 앞에서 시스코가 울었다. 다행히 어제보다 소리는 작았다. 남편은 괜찮다고 했지만, 내가 새벽에 일어나면서 혹시 남편의 숙면을 방해하는 것은 아닐까 마음이 쓰였다.
언젠가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새벽이나 밤늦은 시간을 활용해 보라는 조언을 들은 적이 있다. 밤의 동물 아울(부엉이/올빼미)을 사랑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나는 새벽을 택했다. 하루를 나 자신과 그림에 집중하며 시작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설레었다.
캐리커처 레졸루션에 참여하며 매일 그림을 그리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보름쯤 지났을까, 종이 위에서 홀로 움직이는 내 손이 외로워 보였다. 고양이 아들 시스코와 고양이 딸 데이지가 곁에 있었지만, 그림을 그리는 건 나 혼자였다. 온전한 내 시간을 누리면서도, 다른 사람과 연결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작년쯤이었나, 새벽에 온라인으로 접속해 매일 글 쓰는 사람들의 모임이 있다고 들었다. '정해진 일과를 시작하기 전 글쓰기를 하니, 얼마나 생산적인 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란 생각이 스쳤다. 내겐 그림이 더 관심사고, 미국과 한국의 시차 때문에 진작 마음을 접었지만, 언젠가 그림으로 새벽 모임에 참여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을 품게 됐다. 혼자지만 서로 연결될 수 있는 모임, 그런 모임의 일원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조건의 온라인 새벽 그림 모임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결국 내가 직접 만들기로 했다.
"새벽에 같이 그림 그리실 분?"
몇몇은 새벽에 일어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댓글을 남겼다. 새벽은 온전히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고, 하루를 그림으로 연다는 데 의의를 두고 싶었다. 그래서 새벽 시간을 고수했다. 대신 오래 지속하려면 쉬는 시간도 필요하다고 판단해, 주말에는 모이지 않기로 했다.
이러다 한 명도 모이지 않는 건 아닐까 걱정하며, 스스로를 달래던 순간, 두 명의 지원자가 나타났다. 말로 꺼내진 않았지만, 마음속엔 유비와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가 떠올랐다.
나중에 한 분이 더 참여하게 되어, 총 네 명이 온라인 그림 모임을 시작했다. 숫자 4는 탁자와 의자 다리처럼 안정적인 느낌이다. 출발이 좋다며 혼자 헤벌쭉했다. 새벽 6시 15분, 한국보다 한 시간 느린 싱가포르 시간으로는 새벽 5시 15분. 꽤 이른 시간이지만, 그만큼 나만의 시간이 늘어난다는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였다.
고양이들이 깨어있는 나를 마주하면 아침식사를 요구할 테니, 최소한 5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잠들기 전 루틴도 바꿨다. 예전에는 11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지만, 새벽 모임을 시작한 뒤엔 10시 이전에 침대에 누우려고 노력한다. 일어나자마자 갈아입을 옷을 의자에 가지런히 놓고, 핸드폰에 노트북까지 충전한다. 책상을 깔끔히 정리하고, 다음 날 새벽에 사용할 그림 도구들을 미리 챙긴다.
화면 속에서 서로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각자 자리에 펼쳐진 그림 도구와 움직이는 손만 보일 뿐이다. 그럼에도 사람들과 연결돼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이, 혼자일 때 느끼던 외로움을 달래주었다.
처음 새벽 그림 모임을 마친 아침, 7시 전에 거실 커튼을 열었다. 저 멀리 떠오르는 태양이 보였다. 그때의 희열이란… 우리 집 거실에서 일출을 볼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일어나자마자 그림을 그린다는 건, 스스로가 꽤 괜찮아 보이는 일이었다. 눈을 비비고 나오는 남편에게 그날 새벽에 그린 그림을 보여주며 은근히 으쓱하기도 했다. 내 변화의 영향인지, 남편도 새벽 운동을 시작했다. 작심삼일을 넘기고 처음 약속한 2주를 채웠다. 그리고 우리는 2월 한 달도 함께하기로 하고 모임을 이어갔다. 하지만 2월 둘째 주, 참여자 4명 중 한 명이 거의 나오지 않고, 한 명은 거의 격일로 참여하신다. 끝까지 모임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참가자들의 참여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 앉아 그림을 그리다, 문득 궁금해졌다.
‘이렇게 매일 그림을 그리면 실력이 늘까? 내 색을 찾을 수 있을까?’
프로젝트나 시간 약속 없이 매일 그림을 그린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긴 공백이 있었던 나 같은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날도 허다하다. 그때 캐리커처 레졸루션 프로젝트를 만났고, 서로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함께 그릴 수 있는 사람들과의 연대를 이루었다. 답은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매일 새벽 그림을 그리며 작은 성취와 설렘, 그리고 익명의 사람도 서로에게 의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새벽 온라인 그림 모임은 새벽빛 같다. 소리 없이 천천히 떠오르지만, 온전한 하루를 밝히는 빛.
<두 번째 그림 실험 보고서>
제목: 새벽 온라인 그림 모임
도전 과제: 평일 새벽 정해진 시간에 온라인으로 접속해 한 시간 동안 함께 그림 그리기
목적: 혼자서는 지속하기 어려운 그림 습관을 ‘연결’을 통해 유지하기
방법 및 시도: 카메라로 작업 공간만 공유
같은 시간에 접속하되 대화 없이 각자 작업에 집중
주말은 쉬어 지속 가능성을 우선함
성과: 규칙적인 기상과 작업 루틴 형성
작업 지속 시간 증가
느낀 점: 하루를 내가 원하는 활동으로 시작하는 것이 큰 만족감을 줌.
쉬는 날을 확보함으로써 장기적 실천력을 높임.
익명의 사람들이라도 서로에게 믿음이 있다면 함께 하는 시간이 큰 지속력을 만듦.
참여자가 줄어들 수 있는 현실을 감안해야 함.
모임의 지속은 참여자의 의지가 중요하단 점을 깨달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