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은 깊은 생각이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무엇이라 답할까. 이름에 모든 나를 담기에는 불가능하지만 이름 닮아가는 나를 보면 그 이름도 버릴 수 없다. 매 시간 나이가 들고 조금씩 늘어간다. 우아했던 나를 버려도 좋지만 우아했던 마음은 버릴 수 없다. 마음은 늙지 않는 법이니까.
날마다 조금씩 미쳐간다. 그것은 분명 '몰두'라는 긍정의 말과 중독이라는 부정의 말을 동반한다. 우리가 단 한 번이라도 미치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그 무엇이든 누군가를 위해서 그게 아니라면 자기자신을 위해서, 지루함과 염증을 어떤 식으로든 피하기 위해서 손으로 무엇인가를 집었고, 다리를 떨다가 복나간다는 핀잔을 들었고, 너 그렇게 하는게 정상이 아니라는 수치와 모욕의 굴레 속에 살았다.
로테는 릴케와 괴테중에 낭만적인 릴케를 선택한 매력적인 여인이었다. 모든 영웅들의 이면에는 그 사람을 영웅이게 하는 조력자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의 삶에서 우울과 깊은 생각은 철학과 사색의 조력자였다.
사람은 그 무엇이든 몰두할 때 그 사람은 몰아의 경지에 도달한다. 누군가를 미친듯이 사랑하면 그 사람은 정상의 범주를 벗어나서 유치함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깨어나면 모든 것이 꿈에 지나지 않은 삶을 그린 서초 김만중의 구운몽 또한 그런 점을 반영한다. 무엇이든 우리는 구름처럼 밀려드는 지루함을 제껴내고 몰두할만한 소재와 내용을 찾는다. 그것을 닭꼬치 처럼 몇 개 걸치고 있는 것이 단촐한 우리의 밥상같은 삶이다.
얼마나 더 행복하자고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는가. 얼마나 의미로운 삶이고자 누구를 짓밟고 야유하고 구타하는가. 잔인함은 그 무엇으로도 합리화 될 수 없다. 입이란 먹는데만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전달하는 매개체이고 수단이다. 입술은 때로는 키스를 하는 애정의 발현방법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의사소통이다. 우리는 침묵에 늘 무게를 실었고 그 침묵은 금이고 말이 은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작 말을 해야할 때 말도 못하는 비굴함이 금일까. 상대방에게 상처만 내고 위로 한마디 하지 않는 것이 금일까. 진정으로 사과 한마디도 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은 폭력이고 위선이다. 우리는 그것을 죽은자를 통해서 안다.
죽음은 어떤 변명도 해명도 없이 영원히 잠들어 버린다. 살아있는 사람이 침묵하는 것은 살아있음을 알리지도 않을 뿐더러 소식을 묻는 그 어떤 이에게 침묵하는 것은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모욕감을 주는 위선이다.
진실은 늘 침묵의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이제는 침묵해야 할 때가 아니라 말해야 하고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인류는 수만년을 언어 없이 살았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답답함을 우리는 견디지 못한다. 문명과 삶은 언어와 직결되고 그 언어가 문명의 최대의 발명이었다. 우주는 늘 침묵했고 우리는 늘 별들이 속삭이는 의미들을 듣고 싶어했다. 이제 그 우울과 깊은 생각을 말해야 할 때 이다. 괜찮아 뭐든 말해도, 그럴 수 있는 화자와 청자가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왜냐하면 마음은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인간은 평생을 거쳐서 언어를 배운다. 그런데 표현하지 못하고 침묵하는 것은 삶을 헛 산 것이다.
글 김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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