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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순만 Mar 19. 2016

치명적인 사랑

사랑할수록 가슴 아프다

 가장 치명적인 사랑은 내가 아무리 그 사람을 사랑해도 그 사람은 나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짝사랑(one side love)라고 한다. 사랑은 지독히 상대적인 것이어서 내가 아무리 사랑한데도 그 사람이 나에게 관심을 갖지 않거나 무시해 버리면 그 모든 노력은 허사이거나 물거품이 되고만다.

  인간은 어쩌면 자신을 사랑하는 이에게 가혹한 형벌인 이별을 통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벌한다. 마음에 없고 또한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사람을 버리는 것이다. 버림받은 이는 모욕감과 수치스러움, 그리고 그 무엇으로도 감당이 되지 않는 절망에서 당분간 헤어나지 못한다.

  사랑할수록 우리는 미쳐가고 미치지 않으면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다. 팜므 파탈 이아손의 이야기 처럼 치명적인 사랑은 사랑하는 이에게 가혹한 저주가 뒷따르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랑은 그런 이유로 외면당하거나 버림 받았을 때 '죽음에 이르는 병'인냥 치명적이다.

 인간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치명적인 상처를 받는다.  죽도록 사랑하는 것은 사랑 속에 죽음이 내재되어 있다. 그것은 사랑 안에는 생명이라는 고귀함이 있기 때문이다.

  

  아가페적인 사랑은 일방적인 사랑일지도 모른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지만 그 희생을 자식이 아닌데는 시간과 성숙을 요청한다. 하지만 에로스는 철저히 상대성을 요청한다. 서로간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사랑하는 만큼 철저히 상처가 되기 때문이다. 에로스는 신화속에서도 프쉬케의 작은 실수를 용납하지도 않았다. 남편의 얼굴을 보고 싶은 프쉬게는 약속을 어기고 에로스의 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에 촛불을 켠다. 촛농이 떨어져 살에 닿는 순간 프쉬게의 사랑은 끝나고 곧 종말을 의미한 것이었다. 신화 속의 이야기 이지만 에로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프쉬케의 모든 것을 앗아간다. 이처럼 에로스적인 사랑은 너무도 가혹한 형벌이 뒤따른다.

    사랑하는 이의 얼굴 한 번 보다는 것이 모든 것을 잃을 만큼의 큰 죄일까. 에로스가 아내를 진정 사랑했다면 프쉬케를 그리도 벌 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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