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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순만 Apr 08. 2020

중국인의 영혼관

Chinese people's Soul Concept

  한 사람은 태어나서 죽는다. 태어남에 근원은 사랑이다. 사랑하는 마음이 한 사람을 만나고 마음의 감동이 있어 육체적인 사랑을 실현하고 싶어한다. 아브라함 메슬로(A. Maslow)가 말하는 욕구의 5단계 중 1단계의 생리적인 욕구에 해당한다. 플라톤은 '향연'이라는 책 에로스 편에는 남여간의 사랑은 원래 하나의 몸을 가지고 네개의 다리를 지니고 네 팔을 가지고 두개의 머리가 붙어있는 형상에서 분리되어 하나의 몸이 되고 싶은 욕구를 지녔다고 한다. 

  곡식에도 씨앗이 밭에 뿌려져야 그 씨앗은 자라고 성장한다.  대지의 신이 하늘의 기운을 얻어 씨앗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남여간의 사랑에서도 중요한 것이 바로 분위기라고 할 수 있다. 분위기란 즉 하늘의 기운이며, 환경적인 요인을 뜻한다. 

  한 사람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바로 공자의 인(仁)의 사상이다. 대지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바로 덕(德)에서 근원한다.  동중서의 춘추번로에서도 '덕은 하늘과 대지와 함께 신명(神明)이 아름답게 몰려들고 하는 일이 나란히 진행되며 그 효과가 멈추지 않으므로, 그 혜택이 온 세상에 가득 차니 사람들이 예찬하고 노력한다.'라고 말한다.(춘추번로, p.261, 신정근)


 1.  아무리 한 사람이 성공을 한다 하여도 자신의 시신을 치울 수 없다. 


  고대 중국인들은 하늘의 기운을 얻은 혼과 땅의 기운을 얻는 백이 만나 혼백이 된다는 관념이다. 원기가 모여 기운이 되고, 그 기운이 모여 한 사람의 혼백을 이룬다. 예기(禮記)의 교특생(郊特牲)에서는 "혼과 가는 하늘에서 오고, 형과 백은 땅에서 온다. 그러므로 제사는 음양의 뜻에서 구한다."(魂氣歸於天, 形魄歸於地, 故諸,求諸陽陰之義)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살펴보면, 사람의 생명(人之生命)은 영혼(靈魂)과 육체(肉體)로 나누어지는데 사람이 죽게 되면 영혼은 하늘로 올라가고(靈魂出竅), 육체는 땅으로 떨어져 백(넋, 魄)이 되는 것이다.


<표 1. 중국인의 영혼관, 하효은, 중국풍수사, 이은석 역, 논형,2014, p.37 >


  살아 있는 동안 그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은 근본적인 권리이다. 하지만 죽어서도 그 사람이 잘 보존되는가 아닌가도 현재의 처신과 처지에 있다. 단순히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야 하지만 또 다른 각도에서 사후세계에 대한 생각을 안할 수 없는 것이 또한 인간이다. 


2. 생명은 죽음의 강물에 떠 있는 한 척의 배


   인간의 생각에는 생이 있는 동안에 죽음은 공존된다. '죽음의 강물에 떠 있는 한 척의 배'와 같은 것이 인간의 삶이며, 그 배는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  강물이 죽음을 상징한다면 떠 있는 배는 죽음의 출렁거리는 물결이 있기 때문에 배는 그 죽음을 버티고 현존한다. 생이 영원하지 않고 한 정된 수명을 사는 까닭에 그 생명은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저승의 뱃사공 카론:    [역사 속의 인물] 저승의 뱃사공 '카론' - 매일신문 

이미지 출처: http://news.imaeil.com/Culture/2012062207375968233                                                                       

'고대 그리스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저승으로 가기 전 여러 강을 건너야 한다고 믿었다. '비통의 강' 아케론과 '시름의 강' 코키토스, '불의 강' 플레게톤, '망각의 강' 레테, '증오의 강' 스틱스를 거쳐 저승의 지배자가 있는 하데스의 궁전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했다. 저승 가는 강나루엔 뱃사공 카론(Charon)이 있었다. 어둠의 신 에레보스와 밤의 여신 닉스 사이에서 태어난 카론은 긴 수염을 늘어뜨린, 성미 까다로운 노인으로 묘사된다. 간혹 금전에 매수돼 산 자를 저승으로 데려갔다가 하데스로부터 고초를 치르는 캐릭터이다.'(매일신문 김해용의 글을 인용함)-




3. 살아 있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여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우호적이지 않는 사람을 적대적으로 매도하는 경향이 있다.  우방과 적, 그리고 모르는 사람과 아는 사람 등이 있다. 아는 사람을 지인(知人)이라고 한다면 그거 인사만 나누는 사람은 안명있는 사람(acquintance)정도가 될 것이다. 세상살이는 거의 만남과 이별의 연속이라 봐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인연은 좋은 인연이 되고 좋은 인연 중에서도 귀중한 사람은 귀인(貴人)이 될 것이다. 인연은 맺기 마련이지만 악연(惡緣)도 피할 수 없는 길이기도 하다. 유연대면부상봉, 무연천리래상회(無緣對面不相逢,有緣千里來相會)라는 말은 '인연이 없으면 얼굴을 봐도 만나지 못하며, 인연이 있으면 천리 먼길도 찾아와 만난다'는 뜻이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보고 싶으면 찾아갈 수 있는 것이고, 날마다 얼굴을 마주 보면서도 헤어질 사람은 헤어지는 것이다.  이런 점을 살펴 볼 때 보고 싶은 사람은 아무리 멀리 있어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안보면 멀어지는 것이(out of sight, out of mind) 세상의 이치이다. 

  함께 할 때 소중함을 잘 알지 못하니 자꾸 다투는 것이고, 다투고 떠나고 나서야 그 사람이 소중함을 그제야 알게 된다면,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비단 살아 있는 동안의 문제가 아니라 죽어서도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 한 사람의 일생이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것이 미덕이고 자신을 힘들게 했던 사람 또한 그 사람에게 관심을 지닌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관심이 간다고 무작정 상대방에게 다가가면 상대를 두려움에 떨게 되고, 그것은 괴롭힘이 된다. 자기 좋다고 상대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은 벌(罰)을 받아야 마땅한 일이다. 

  한 인간의 속성중에 가장 패악의 경우를 우리는 배신(背信)이라고 한다. 고마움을 모르고 그 사람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패륜(悖倫)에 준하는 일이다. 키워준 부모의 은덕을 모르고 부모를 힘들게 하고, 가르쳐준 은덕을 모르기에 스승을 해하고, 자신을 돌봐준 사람을 살인하는 경우가 있다.  아무리 잘해주어도 잘 해주는 고마움을 모르는 것이 얼마나 배움망덕인가. 

  인의를 실천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사회가 아름다운 사회인 까닭에 유가사상은 동양사상에 뿌리를 내렸다. 서양의 성경과 하나님 또한 사랑을 가르친다. 사랑을 실천하자면 사랑하는 방법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글 김순만 


all copyright reserved by Sunman Kim :owlpoet@naver.com-April 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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