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시들다

위선조차 사랑했던 살구꽃

by 올빼미

살구꽃이었다.

내가 벚꽃이라 착각한 그 꽃은.


색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른데,

그냥 그렇게 믿었다.

그게 더 예뻐 보였으니까.


살구꽃이었다.

내가 벚꽃처럼 사랑한 그 꽃은.


내가 멋대로 재단하고,

내 맘대로 계절을 강요했다.

그 꽃은,

나를 위해 다른 꽃의 봄을 피워냈다.


살구의 살갗에서

벚꽃을 흉내 냈을 때에도,

자신의 피로 색을 덧칠했을 때에도

나는 그녀에게 암실을 선물했다.


그녀는

내 눈빛과 혀로

희롱당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름다운 꽃잎을 흘려주었다.


나는,

살구꽃이 아닌

벚꽃을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벚꽃을 심어주었다.


살구꽃인 줄 알면서도,

벚꽃을 연기해 주길 바랐고

착각이라는 색안경을 씌운 채,

나는 그녀를 감상했다.


그렇게

침묵으로 거래했다.


살구꽃을 사랑한 게 아니었다.

나는 ‘벚꽃’이라는

이상과 환상을

사랑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위선 속에서

그녀는 더 이상

꽃을 피우지 못했다.


나의 검은 태양은

그녀를 태우기에 충분했다.


살구꽃이 있었다.

그을려,

재만 남은 그 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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