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립일기

01.서울에 살지만 독립하고 싶습니다.

by 부엉부엉

내가 독립을 이야기할때면

우리집은 교통의 요지라 불리는 왕십리에 있다. 2호선, 5호선, 분당선, 경의중앙선 무려 4개의 노선이 지나는 덕에 서울 어디든지 30분 이내에 갈 수 있다는 어마어마한 혜택이 있는 동네이다. 덕분에 통근시간도 도어 투 도어 30분 컷이 가능한 곳이다.

이런 내가 집을 나와 독립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면 10명 중 9명은 도대체 나올 이유가 뭐가 있냐고 반응한다. 서울에 있지, 회사랑 가깝지, 교통도 좋지 대체 왜? 혼자 살면 돈만 나가지 낭비야 낭비- 라는 일관된 반응에, 나 또한 그렇긴 하지- 라며 고개를 끄덕인지가 벌써 3년째이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 바뀐 것이 있다. 독립하고 싶다는 열망과 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여전히 똑같지만, 나는 더 이상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다. 그렇긴하지만- 이라는 단어가 먼저 튀어나오는 덕에 고개보다는 주절주절 항변하는 입이 바빠지고 있다.


첫번째 항변, 나만의 루틴이 필요해.

한 사람의 진정한 라이프스타일은 바깥이 아닌 집안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취향은 집안에 쌓인 물건을 어떻게 정리하는지, 정해진 예산내에서 어떻게 살림을 꾸리는지, 어떤 식재료로 어떻게 요리를 하며 어떤 입맛을 가지고 있는지 등 가장 원초적인 생활 습관에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결국 한 개인의 삶이 어떤 루틴으로 이뤄져있는가가 좌우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원가족과 산다는 것은 어찌보면 나만의 루틴, 나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찾아가기가 힘든 생활이다. 나를 길러준, 그리고 살림의 주인인 부모님의 만들어놓은 결을 따라갈 수 밖에 없으니말이다.

머리가 클 만큼 커서 그런지, 내가 살고싶은 대로 살지 못한다는 것은 아주 불편하다. 그것이 비록 아주 사소한 일상일지라도.

예를 들면 이런거다. 주말에 늦게까지 자고 싶은데 일찍 일어나시는 부모님때문에 잠이 깨버린다. 밥하는 소리, 숟가락이 밥그릇에 부딪히는 소리, TV소리, 양치하는 소리… 가 뜻밖의 모닝콜이 되어버릴때면, 그리고 그 순간 시침이 7을 가르킬때면 정말 울적하다.

가끔 너무 지치는 날에는 퇴근 후 저녁밥도 패쓰하고 그냥 혼자 조용히 있고 싶을때도 있다. 하지만 막상 귀가하면 엄마가 차려주신 밥상을 내 기분이 구리다는 이유로 외면할 수 없다. 얼른 먹고 방에 들어가고 싶지만, 거실에서 엄마와 뭐라도 이야기해야할 것 같은 그 기분은 정말 복잡 미묘하다.

사춘기 마냥 내 마음대로 살고싶은 욕구가 이런 사소한 일상에서 솟구칠 때면, 내가 예민한가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이제 따로 살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 눈에는 아직도 밥 걱정되는 꼬맹이일지라도, 나는 이제 기분에 따라 리듬에 따라 밥을 먹고싶은 머리 큰 어른이 되어버렸는걸.

사랑하는 원가족과 생활을 분리하고 나만의 루틴을 갖는다는 것. 지금껏 누군가가 해주던 영역을 스스로 해나가야하지만, 그게 두려움보다는 설렘으로 느껴진다. 내가 내 삶을 가꾼다는 일은 얼마나 멋지고 즐거운 일일까. 마치 현실에서 심시티를 하는 기분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기분은 교통의 요지 따위와 절대 맞바꿀 수 없기에, 나는 정말로 독립을 하고 싶다.


두번째 항변, 진짜 어른이 되고 싶어.

누군가 ‘언제 내가 어른이 되었다는것을 느끼냐’ 는 질문을 던진 적 있다. 대부분 울적한 기분을 잘 숨길 수 있을 때, 힘든 일이 와도 무던히 견딜 수 있을 때 등 내면이 성숙해진 순간을 이야기했는데, 조금 다른 순간을 이야기한 친구가 있었다. ‘주차하고 나오며 차 키로 딸깍 문을 잠글때요.’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어른의 향기다. 너무나 일상적인 상황이지만 아직 차도 집도 없는 나에겐 멀고도 가까운 일상. 어른의 일상은 이렇게 지극히 현실적인 생활에서 묻어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어찌보면 나이만 어른이지, 생활방식은 어린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늦은 퇴근길에도 저녁을 차려주는 사람이 있고, 청소할 때 내 방도 항상 같이 챙겨주는 사람도 있으며, 겨울코트를 세탁소에 맡길 때나 직접 수령해야하는 택배를 받아야할 때도 늘 대신해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으니 말이다. 일상생활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아주 많은 부분들을 나는 누군가의 보호막 아래서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이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독립을 하는 순간, 이런 사소한 일상들 또한 다 비용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비단 월세와 공과금 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빠져나가는 순간은 비용일지언정 사실 이는 내가 내 삶의 보호막을 한 겹 한 겹 만들어가는 것 아닐까?

어른이 된다는 것은 비단 내면의 성숙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쩔수 없는 현실을 잘 헤쳐나가는 것, 말하자면 생활의 지혜가 쌓여가는 상태가 아닐까.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리딩하고 외부업체와 계약을 조율하고 있지만, 집에 가면 누군가 차려준 밥과 옷을 입는다는게 나로서는 부끄러운 모습 중 하나이다. 어른이 되지 못한것 같은 이 기분, 더 이상의 케어는 받고싶지 않는 반항적인 이 기분을 누군가는 몰라서 하는 소리 어디한번 겪어봐라- 라고 이야기할테지만, 그렇다면 제가 진짜 한번 겪어보겠습니다. 그러니 독립을 응원해주세요.


세번째 항변, 혼자있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싶어.

스트레스를 받거나 짜증이 폭발하는 날이면, 나는 어김없이 떡볶이가 먹고싶다. 아주아주 맵고 칼칼한 떡볶이. 그리고 여기에 중요한 조건이 하나 붙는데, 바로 내가 직접 만들어먹고싶다는 것이다. 고추장을 세 스푼 크게 넣고 고춧가루가 팍팍 뿌리는데에서 이상한 희열을 느끼는 탓일까. 아무튼 가끔씩 찾아오는 이런 날, 나만의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데에는 3가지의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떡볶이가 있어야하고, 둘째 직접 요리할 수 있어야하고, 셋째 맥주와 함께 혼자 조용히 먹을 공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가족들과 함께 집에 있다보면 이는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엄마의 공간인 부엌과 냉장고를 헤집다보니, 자꾸 참견을 하신다. 잠깐만 새 거따지말고 어디보자 지난번에 먹다 남은 떡이 여기 어디있을텐데- 부터 시작한 잔소리는 끝이없다. 또한 내가 요리를 시작할 때 쯤이면 어김없이 아빠와 동생도 퇴근후 귀가할 시간이 된다. 숟가락을 얹으려는 이들을 내 기분상의 이유로 내칠 수는 없기에, 나는 결국 1인분이 아닌 4인분을 요리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혼자 맥주와 들이키는 스트레스 해소용 떡볶이가 아닌, 가족들과 식탁에 둘러앉아 먹는 특식 떡볶이가 되어 버린다.

중요한건 떡볶이를 먹고싶다는 게 아니다. 혼자있고 싶지만 떡볶이가 먹고싶다는 것이다. 가족들과 둘러앉는 떡볶이도 물론 맛있지만, 떡볶이의 맛에도 TPO가 있다. 함께 산다는 것은 떡볶이의 맛을 일원화하는 일이다. 으레 그래야하는 상황들이 지배적으로 다가와서 매번 동일한 상황을 연출해버리기 때문이다.

너무 사소하고 치기어린 이야기지만, 내가 독립하고 싶은 이유중 하나는 ‘혼자있고싶지만 떡볶이도 먹고싶기’ 때문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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