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립일기

02.산다는 것, 그리고 혼자 산다는 것

by 부엉부엉

인생 어차피 혼자라지만

사는게 뜻대로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 않다는 걸 아는 우리는 뜻대로 되지 않아도 이제 크게 놀라지 않는다. 그래 그럴수도 있지- 그래 안 될 수도 있지- 하는 마음은 나를 유연하게 만들었다.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와는 별개로, 혼자 상황을 조용히 감내하고 혼자 조용히 상황을 타개하는 것. 언니들이 이야기하던 ‘인생 어차피 혼자’ 이론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맞다, 어차피 모든 것은 혼자 헤쳐나가야하는 일. 그것이 유일한 생의 룰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먹고 자고 생활하는 일에서도 혼자라면?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잠을 사고 혼자 청소를 한다는 것. 이건 ‘인생 어차피 혼자’ 이론의 최종 보스 버전같아서, 쉽사리 의연하게 받아들이기가 망설여진다.


적막 속 바스락 소리는 상상을 키우고

혼자 생활하는 것 중에 가장 두려운 게 있다면 바로 혼자 자는 것이다. 어둡고 고요한 공기 속에서 혼자 꿈나라로 떠나는 여정은 나에게 너무 고된 일이다. 나는 잠귀가 매우 밝은 편이라 작은 소리도 예민하게 듣는다. 이상하게도 혼자 있을 때면 쩌억- 하고 가구갈라지는 소리가 참 잘도 들린다. 마치 옷장에서 누구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원인 모를 소리에 나의 몹쓸 상상력은 극대화된다.

독립하고싶다는 열망이 한번씩 접히는 때가 있는데, 바로 혼자 여행을 다녀온 다음이면 늘 그랬었다. 낮에는 혼자 잘 돌아다니며 놀다가도, 저녁 때 잠을 잘 때면 제 아무리 좋은 호텔이어도 불안하다. 어김없이 쩌억- 과 같은 바스락 소리가 귀에 들리고, 그러고 나면 잠을 설치기 부지기수였다. 푹 자지 못하는 여행은 힐링의 마이너스 요소다. 혼자 여행을 하고 집에 돌아올 때마다 나는 정말 혼자는 못살겠다- 라고 (짧은) 다짐을 한다. 물론 금새 또 잊어버리지만 말이다.

하지만 진짜 독립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니 이 문제가 여간 걸리는 게 아니다. 하루 이틀 자고나면 극복이 될까. 불안에 잠을 설칠 때면, 인터넷에서 본 무수한 여성혐오 범죄기사가 떠오르는 이 약한 멘탈도 적응의 동물이 될 수 있을까. 아직도 고민이 되는 부분이다.


내가 모르는 외로움

나는 외로움을 잘 못느끼는 편이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즐겁고, 오히려 혼자라서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다는 생각에 혼자를 지향하기까지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가 외롭지않다고 느끼는 이유는 언제든지 함께일 수 때문이었던 것 같다. 방 안에 콕 박혀서 혼자 놀다가도, 방문을 열면 거실에 가족들이 있으니까. 혼자 맥주를 마시다가도, 방문을 열고 나가면 함께 마실 사람이 있으니까. 디폴트가 ‘함께’ 이고 ‘혼자’는 선택이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나는 외로움을 못느끼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나는 한번도 진짜 혼자였던 적이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서일까. 정말로 혼자가 되는 기분은 어떨지 잘 모르겠다. 식사를 준비하는 소리에 눈을 뜨는 것과 적막한 가운데 눈을 뜨는 기분은 다를 것이다. 귀가 후 정돈된 거실을 마주하는 것과 분주하게 준비하고 나간 아침의 흔적을 고스란히 다시 마주하는 기분은 다를 것이다. 저녁을 먹는 일과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일도 다르겠지.

혼자 사는 일의 사소한 일상은 내가 지금껏 알고 있던 혼자력과는 다른 차원의 레벨이다. 물론 감내해야할 부분이지만, 그런 순간들을 마주한 뒤에야 혼자가 싫다고 느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나에게 ‘혼자’ 혹은 ‘외로움’ 이란 그냥 하나의 옵션이다. 이 옵션이 루틴이 되는 삶은 어떨까. 외로움이 고독감으로 변하는 순간들이 종종 올텐데, 깊이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혹자는 기우라고 하겠지만, 유리멘탈에 감수성이 예민한 나에게 일상의 온기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혼자 사는 재미와 처음느껴보는 자유로움에 일상의 온기는 당분간 후끈하게 뎁혀지겠지만, 가끔씩 급감하는 냉기가 흐름을 방해하진 않을지 혹은 나도 모르게 냉기가 오래 지속될까 우려가 된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월급쟁이

지금 내가 열망하는 것은 자취가 아닌 독립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탓에 자취하는 것이 아니라, 성인이 되어 자립하는 일. 그래서일까. 잠시 현실을 접어두고 상상해보자면, 내가 꿈에 그리던 독립의 모습은 예컨대 이런 모습이었다.

넓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좁지도 않은 조그마한 오피스텔. 침실과 생활공간은 분리가 되야하니까 방이 1개쯤은 있었으면 좋겠고 거실과 부엌도 어느정도 공간 분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동네는 조용했으면 좋겠고 주변에 공원이 있거나 적어도 한강공원을 걸어갈 수 있는 거리면 좋겠다. 마트나 영화관이 있으면 삶이 더 윤택할 것 같고, 아! 주변에 카페도 많았으면 좋겠다. 주말 아침에는 카페에서 샌드위치를 사와야 하니까.

끝도 없이 나열할 수 있겠지만 아무튼 내가 꿈꾸는 독립 생활의 모습은 이리도 장미빛이다. 하지만 내가 가진 예산 안에서 투룸은 커녕 오피스텔도 들어가기 쉽지 않다. 이자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대출을 영혼까지 끌어모아 최대 보증금으로 설정 후 네이버 부동산을 탐색한지가 어언 두 달째. 음 일단 선택지 자체도 많지 않고, 내 자신과 열심히 타협하여 고른 매물들도 내가 그리던 장미빛과는 아주 아주 거리가 멀다.

조금 더 욕심을 내고 감당한다면 장미빛 근처에 갈 수는 있을 것 같으나, 계산기를 몇 번 두드려 보고는 포기한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월급쟁이인걸. 내 월급이 갑자기 오를리도 만무하고 꾸역꾸역 다른 영역에서 열심히 돈을 줄인다한들 고작 몇 푼 차이일 것이다. 차라리 몇 년 더 돈을 모아서 나가면 좀 더 좋은 조건에서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라는 새로운 타협안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하지만 일단 나간 후에 모아서 더 좋은 곳으로 옮겨가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라며 또 다른 타협안이 방어를 친다. 부동산을 둘러볼 때면 이렇게 내 안의 분열된 자아들이 자기주장하느라 바쁘다.

이 모든 것은 돈 때문. 이토록 현실적인 문제 속에서 변하지 않는 사실 하나는 나는 어쨌든 월급쟁이라는 것이다. 과연 나는 내 안의 수많은 나와 타협을 하고 집을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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