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안에 독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나는 요즘 집을 구하기 위해 부동산을 알아보고 있다. 집을 돌아보며 가장 많이 든 생각은 생각보다 알아볼게 너무 많다는 것이다. 매물마다 확인해야하는 요소도 많고, 주변 동네나 인프라는 어떤지도 확인해야하고, 육안으로는 알 수 없는 실거주자들의 이야기도 구글링해서 찾아봐야한다.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집인지 등기부등본도 미리 확인해야하고, 나에게 유리한 이율은 어떤 대출인지, 그 자격 조건에 내가 충족이 되는지 원천징수도 떼어봐야하고. 집을 구한다는게 이렇게 많은 일을 동반하는 일인줄 몰랐다. 대출까지 받아 구하는 귀하디 귀한 전셋집인데 얼렁뚱땅 계약했다가 사기당하고 경매 넘어가는 일도 많다고 하니, 내가 발로 뛰고 직접 방문해서 물어보며 확실히 알고 가야한다는 것을 느끼는 요즘이다.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새삼 내가 그동안 부모님에게 얼마나 의지하고 있었는지 깨닫고 있다. 생활지혜에 있어서는 언제나 그렇듯 엄마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 내가 전화해서 알아보거나 인터넷을 찾아보는 것 보다 엄마에게 물어보는 것이 더 빨랐기 때문이다. 흰 운동화의 얼룩때는 어떻게 지울 수 있는지 네이버보다 엄마가 빨랐고, 병원 검진비가 보험처리가 되는지 된다면 얼마나 되는지도 엄마에게 물어보는 것이 더 빨랐다. 세상을 살아가며 부딪히고 알아봐야하는 일이 참 많았지만, 나에게는 늘 엄마라는 생활지혜의 신이 있었다. 그래서 몰랐을 것이다. 독립이라는 하나의 일을 이루는데에 수반되는 것들이 이렇게 많을 줄은.
‘부동산 같이 가줄까? 한번도 안해봐서 뭘 봐야할지도 모를텐데. 엄마랑 같이 보자.’
처음 집을 보러가는 날 엄마가 내게 했던 이야기다. 괜찮다며 혼자 집을 나서는데, 그토록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느껴진 적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엄마 눈에 나는 여전히 애기라는 것, 그러니까 더욱 빨리 정서적인 독립을 해야겠다는 생각, 그런데 이토록 안정적인 울타리를 내가 꼭 내 발로 벗어나야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고민, 쉽사리 넘어지지 않는 울타리를 보며 내가 산 세계가 얼마나 따스하고 평온했는지 새삼 느끼는 감사함.
머리가 클만큼 컸다며 치기어린 반항심으로 시작한 ‘독립’ 에 가까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예상 외의 감정들이 나를 일렁이게 만든다. 독립하는 삶이란 무엇일까. 원가족과 분리되어 내 삶을 스스로 헤쳐나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부모님의 그늘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삶을 살고 싶어서 시작한 것은 맞지만, 평생을 의지해온 부모님과 나와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예상보다 큰 파도이다. 이 또한 하나의 과정임을 나도 알지만, 이는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일렁임인걸.
아직 독립을 한 것은 아니지만 독립을 준비하며 드는 여러 생각들을 통해, 나는 역으로 함께하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고 있다. 지금 나는 물리적으로 정서적으로 원가족과 분리를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이제부터 혼자 고고하게 산다는 것은 아님을 그래서는 안됨을 깨닫고 있다. 사람은 모름지기 연대할 때 더 단단해지는 법이니까. 그게 친구든 평생을 함께하는 동반자이든 간에 말이다.
근래 며칠동안 몸이 안좋아서 병원을 다녔었다. 임파선이 자꾸 이유 없이 붓길래 초음파 검사를 했는데 갑상선쪽에 결절이 발견된 것이다. 모양이 좋지 않아 조직검사가 필요하다고 하여 대학병원에 가서 세침검사를 진행했다. 아직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긴하지만, 의사들 특유의 화법 - 최악의 경우를 염두하며 이야기하기로는 암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나와봐야 알겠지만 그 한마디가 어찌나 아찔하던지. 아직 20대인데 갑상선 암일 수도 있다니, 그 1% 가능성이 근래 몇 주간 나를 얼마나 괴롭혔는지 모른다.
불안하고 무서운 마음에 집에 가서 엄마 아빠에게 이야기했다. 만약에 암이면 어떡하냐며 한 껏 쫄보력을 뽐내고 있었는데, 역시나 이런 나를 잘 아는 부모님은 절대 그럴일 없다며 까짓거 나쁜 종양이라고 하면 떼내면 그만이고 지금 발견된것에 감사해야한다고 위로해주시는데, 그 몇 마디에 금새 마음이 단단해지고 걱정이 잦아들었다.
부모님이 해주는 한마디 한마디는 왜 이토록 강력한 것일까. 같은 말이라도 친구들이 건네는 위로보다 부모님이 건네는 위로가 더 강력한 이유는 내가 그만큼 깊은 애착 관계 혹은 의지를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나 정말 머리만 큰 애기같다…)
솔직히 말하면 언제나 내 편이 되주는 든든한 가족들과 함께 감정을 공유하며 사는 것이 훨씬 안정적인 삶이다. 만약 위와 같은 상황에서 혼자였다면 나는 쫄보력을 맘껏 발산하며 불안만 산더미처럼 키웠을 것이다. 물론 가족들은 언제나 내 편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매일을 함께하며 미주알 고주알 공유하는 것과 몸이 떨어져 있는 것은 확실히 다른 상황이니까.
어쩌면 독립하는 삶이란 가장 강력했던 유대관계를 벗어나, 스스로 적립할 수 있는 관계를 찾아나가는 과정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세상에서 가장 거대했던 우산을 뒤로한 채, 혼자 우산을 쓰고 뚜벅뚜벅 나아가는 것, 때로는 모르는 이와 우산을 함께 쓰기도하고 합치기도 하며 안정지대를 조금씩 넓혀가는 것이 아닐까. 독립하는 삶은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연대를 필요로 하는 것 같다. 혼자일 줄 알아야 함께일 줄 안다는 말이 새삼 새롭게 다가온다.